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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장이 Mar 15. 2024

글 한 편 쓰려면 엄두가 나질 않는다

창고부터 가득 채워야


블로그도 그렇고 습작도 마찬가지고 책쓰기도 똑같다. 어쨌든 한 편의 글을 써야 한다. 그렇게 쓴 한 편을 모으고 모아야 책이 될 수 있다. 내가 해야 할 일은 한 편의 글을 쓰는 것이다. 맨 처음 글을 쓰기 시작했을 때 이 사실을 알았다. 아! 결국 나는 한 편의 글만 쓰면 되는구나! 기뻤다. 책을 쓴다 하니 머리가 아득했는데, 글 한 편 쓴다 하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기 때문이다. 


착각이었다. 한 편의 글을 쓰는 것은 한 권의 책을 쓰는 것 못지않게 어렵고 힘든 일이었다. 어떤 주제로 써야 할지 막막했다. 내가 정한 주제를 뒷받침하기 위해 또 어떤 소재를 끌어와야 할지 고민이었다. 주제와 소재를 정한 후에는 어떤 식으로 글을 배열해야 할지 구성이 또 문제였다. 겨우 한 편을 완성한 후 읽어 보면 글이 등산을 하고 있었다. 


허탈했다. 노력을 기울여 작은 완성을 하고 나면 성취감이라는 게 있어야 하는데, 글쓰기에는 자괴감뿐이었다. 내가 글을 못 쓴다는 사실은 익히 알고 있었으나, 이렇게까지 못 쓸 줄은 정말이지 상상도 못했다. 그만 때려치워야 하나. 재능을 타고난 위대한 작가님들만의 고유 영역에 내가 괜히 발을 들인 것인가. 


책을 읽다가 마음에 드는 문장이 나오면 노트에 옮겨 적었다. 그 문장을 읽은 내 느낌이나 감상도 짧게 기록했다. 어차피 한 편의 글을 쓰기엔 실력이 형편 없으니, 그냥 책 베껴쓰고 메모 정도만 하자 라고 마음먹었던 거다. 재미가 쏠쏠했다. 달리 평가할 것도 없었다. 책에 있는 문장 그대로 옮겨 적고, 그 아래쪽에다 내 느낌 한 줄 적는다. 그게 다였다. 


노트 한 권이 다 채워질 무렵, 뭔가 열심히 했다는 뿌듯한 마음이 들었다. 학창 시절에도 노트 한 권 다 채운 적 없었다. 내가 제법 멋있게 느껴졌다. 그러고는, 그 동안 쓴 노트를 벅찬 마음으로 찬찬히 훑어 보았다.


주제가 거기 있었다. 소재도 거기 있었다. 구성도, 문장도 모두 그 안에 다 있었다. 빈 노트를 꺼내 글을 썼다. 한 편의 글을 쓰는 데 한 시간도 채 걸리지 않았다. 읽어 보니 그럴 듯했다. 같은 방을 쓰는 재소자들에게 읽어 보라고 권했다. 다들 잘 썼다고 했다. 기분이 날아갈 듯했다. 


'읽고 쓰는 삶'이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 그제야 뜻을 이해할 수 있었다. 나는 쓰기부터 먼저 했으니 앞뒤를 바꾸었다. '쓰고 읽는 삶' 이후로 내 인생 슬로건이 되었다. 매일 쓰고 매일 읽는다. 잘 쓰고 못 쓰고는 상관 없다. 완독이나 속독에 대한 강박도 없다. 그냥 쓰고 그냥 읽는다. 덕분에 10년 동안 멈추지 않을 수 있었다. 


글 쓰자 하면 엄두조차 내질 못하는 사람 많다. 책 쓰자 하면 말할 것도 없다. 그런 이들에게 권하고 싶다. 독서야말로 글쓰기 최고의 도구다. 남이 쓴 글을 읽고 내 생각을 보탠다. 다시 내 글을 쓴다. 세상과 공유한다. 이 모든 활동이 독서다. 


또 있다. 책에서만 문장을 찾을 필요는 없다. 친구의 한 마디, 드라마 대사, 영화 홍보 포스터 문구, 광고 카피, 내가 쓴 일기, 일상에서 보고 듣고 경험하는 모든 것들. 한 줄 쓰고 그 아래 느낌 적는다. 이것이 씨앗이다. 발화할 모든 준비를 마친 글쓰기 씨앗. 곳간에 씨앗 가득하면 시간도 머리도 다 아낄 수 있다.


글 쓰기 부담스럽다는 사람 많다. 쓰고 싶지만 자꾸만 미루게 된다는 이도 적지 않다. 한 번 쓰려면 갖은 준비를 하고 단단히 마음먹어야 한다는 사람도 있다. 글을 쓸 때만 글을 쓰려 하기 때문이다. 글을 쓰기 위해서는 글을 쓰지 않을 때에도 글을 쓰고 있어야 한다.


평소에 메모하고 낙서하고 기록하는 사람은 글 쓸 때마다 이전에 쓴 것들을 살피면 된다. 머리 쥐어짜지 않아도 된다. 시간도 오래 걸리지 않는다. 재미가 붙는다. 자주 쓰게 된다. 많이 쓸수록 실력이 는다. 잘하게 되면 더 재미 있다. 더 많이 쓴다. 책도 출간한다. 글쓰기가 더 이상 두렵지 않다. 


글 쓰는 건 어렵지만 메모는 쉽다. 책 쓰는 건 힘들지만 몇 줄 기록은 누구나 할 수 있다. 쉬운 것부터 차곡차곡 해나가면 어렵고 힘든 산도 결국 정상에 오를 수 있다. 성공하는 사람들의 공통점은 '오늘, 지금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고 있다'는 사실. 머리로만 써야 한다 생각지 말고, 지금 당장 몇 줄만 기록해 보자. 작은 시작이 거대한 성을 만들게 마련이다. 


총알이 많아야 싸울 수 있다. 가진 게 없으면 밑천 금방 드러난다. 읽은 것도 없고 미리 적어놓은 것도 없고 평소 생각해둔 것도 없는데, 그냥 빈 상태에서 원고지 열두 장 분량을 쓰면 당연히 겉도는 글만 쓰게 되지 않겠는가. 


책 내겠다는 사람이 책 말고는 아무것도 쓰지 않는 것은, 서울대 가겠다는 학생이 수능 시험 말고는 아무 학습도 하지 않는 것에 다름 아니다. 틈날 때마다 메모하고 낙서하고 뭐라도 끼적거려야 글쓰기 솜씨도 향상시킬 수가 있다. 책 읽으면서 적으면 더 없다.


새로운 도전은 언제나 막막하고 두렵게 마련이다. 그 벽을 넘을 수 있는 최고의 방법은 '쪼개기'다. 한꺼번에 다 하려고 들지 말고, 단계별로 쪼개어 최소 단위만 오늘 한다고 생각해야 부담을 줄일 수 있다. 어떻게든 초기 단계에서는 재미와 작은 성과를 낼 수 있어야 끝까지 갈 수가 있는 거다. 


매일 글 쓰고 있다. 10년 넘었다. 에세이도 쓰고, 자기계발식 글도 쓰고, 칼럼 쓸 때도 있다. 경어체로 쓸 때도 있고 평어체로 쓸 때도 있다. 일상을 적을 때도 있고, 독자를 염두에 두고 쓰는 때도 많다. 이렇게도 쓰고 저렇게도 쓴다. 평소에 온갖 글을 다 적어 보기 때문에, 막상 주제를 정하고 책을 쓰기 시작할 때면 한결 부담 적다. 


예전에는 글 한 편 쓰려면 엄두조차 나질 않았다. 지금은 원고지 12~15매 정도 한 편의 글을 쓰는 건 어렵지 않다. 주제나 소재 고민도 별로 없다. 만약 누가 불시에 소재를 던져주면서 글 써라 하면 막힘 없을 자신 있다. 이 모든 것이 매일 꾸준히 가리지 않고 쓴 덕분이다. 


어떤 새로운 일을 할 때 막막하고 두려움 생기는 건 누구나 마찬가지다. 극복하는 방법은 하나다. 그 일을 하는 것. 물리적 양을 확보하면 질적 수준도 좋아진다. 준비하고 재고 따지고 분석하는 대신, 일단 덤벼들어 해 보면서 그 일을 익숙하게 만드는 것이 먼저이다. 자전거를 잘 타기 위해서는 일단 자전거를 타야 한다. 


그냥이라는 말을 좋아한다. 계속이라는 말도 사랑한다. 이유, 핑계, 변명, 푸념, 하소연 혐오한다. 내 인생 더 낫게 만드는 과정에 무슨 말이 더 필요한가. 그냥 하는 거다. 


지금 행복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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