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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장이 Apr 25. 2024

느린 인생의 맛, 독서

속도를 늦추고 나를 돌아보다


틱톡이나 릴스 창을 띄워놓고 "글 쓰는 방법"이라고 검색하면 다양하고 많은 영상이 쏟아집니다. 하나씩 클릭해서 열어 봅니다. 길게는 1~2분, 짧게는 30초짜리 동영상입니다. 핵심만 콕콕 집어 깔끔하게 정리했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문제는, 글 쓰는 방법에 대해서는 알 수 있지만 막상 글을 쓰는 데에는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독서에 관한 내용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떻게 하면 책을 제대로, 잘 읽을 수 있을까 많은 이들이 궁금해합니다. 숏츠 영상을 조회해 보면, 수많은 동영상을 확인할 수 있는데요. 독서법에 관한 정리는 잘 되어 있으나, 실제로 책을 읽는 데에는 별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기초부터 확실히 배우기 위해서는 두 가지가 필요합니다. 시간과 정성입니다. 문명이 발달할수록 사람들 마음이 조급해지는 듯합니다. 속도가 우선이 되는 사회로 변해가는 것이죠. 농경사회에서는 땅을 갈고 씨앗을 뿌리고 싹을 틔우고 잡초를 뽑아주고 거름과 비료를 주고 수확하는 모든 단계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였습니다. 지금은 오직 수확에만 관심을 가진 사람들이 많아지는 것 같아 염려가 됩니다.


감옥에서, 그리고 막노동 현장에서 고생을 했습니다. 육체적인 고통도 고통이지만 닥친 현실을 버텨내야만 한다는 생각에 정신적인 스트레스도 많이 받았습니다. 그런 과정에서 몸이 많이 망가졌습니다. 건강 관리 잘하고 있지만, 그래도 일 년에 몇 차례씩 쓰러지고 무너지곤 합니다. 


마음이 급해졌습니다. 이것도 해야 하고 저것도 해야 하는데, 몸이 말을 듣지 않으니 조바심이 생긴 거지요. 할 일은 태산인데, 몸에 힘이 하나도 없으니 책상 앞에 앉는 것조차 엄두가 나질 않았습니다. 가만히 누워 천장을 바라보다가, 장석주 작가가 쓴 <느림과 비움>을 펼쳐 누운 채로 몇 페이지를 읽었습니다.


『수졸재에 죽로지실은 없지만 초의선사의 시구를 빌려와 선객의 적적함을 흉내내는 것도 그리 흉하진 않을 거라 생각합니다. 설설 끓는 화로에 얹은 무쇠주전자를 급히 내려놓은 뒤 물소리 잠재우고 고요를 불러 제 곁에 앉히고 바깥에 분분하게 날리는 춘설에 눈길을 주는 선비의 눈과 귀가 누렸을 저 향락에 제 마음을 고요히 얹어봅니다. 이런 날은 제 마음에도 사특함이라곤 약에 쓰려고 찾아도 한 점 없을 것만 같아 기분이 좋아집니다.』


이 대목을 읽는 순간, 마음이 어찌나 편안해지고 느긋해지는지 찰나의 행복이 이런 거구나 싶었습니다. 비록 몸은 힘이 빠져 거죽만 남은 듯했지만, 마음에는 정갈한 기운이 솟는 것 같아 순식간에 걱정 따위가 싹 사라져 버리는 것 같았지요. 


틱톡이나 릴스 영상으로는 절대 얻을 수 없는 맑은 정기입니다. 오직 책을 통해서만 누리고 가질 수 있는 비밀스런 화원인 셈입니다. 잠시 잊었습니다. 급한 마음으로 질주하듯 살다가 모든 것을 잃었던 지난 날들을 말이죠. 숨을 크게 쉬었습니다. '고요를 불러 제 곁에 앉히'기로 했습니다. 


몸에서 신호가 왔을 때는 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죠. 이런 신호를 가볍게 여기는 사람은 몸을 망치게 되는 반면, 귀하게 여겨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으로 가지는 사람은 건강과 행복을 다시 찾을 수가 있습니다. 큰 실패를 겪거나 병을 앓고 나면 사람은 두 부류로 나뉜다고 합니다. 비관주의자가 되거나, 철학자가 되거나. 


따듯한 물에 국화차 한 잔 타서 입술 적십니다. 해야 할 일이 많다는 사실에 주눅들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 내가 살아 있다는 사실에 감사해야 함이 마땅합니다. 바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늘 입에 달고 있는 말이 "정신 없다"입니다. 자기 정신까지 내어주면서 얻는 물질적 풍요가 과연 무슨 의미가 있을지 생각해 봐야 할 문제겠지요.


마음에 상처를 입었을 때도 책을 읽습니다. 몸이 무너져 힘이 빠졌을 때도 책을 펼칩니다. 하는 일이 잘 풀리지 않아 답답할 때도 독서를 합니다. 책은 속도를 줄여줍니다. 나를 멈추게 합니다. 멈추고 나면 더 잘 보이고 더 잘 들립니다. 생각이란 걸 하게 되지요. 잃었던 정신을 다시 찾게 됩니다. 


누르기만 하면 톡톡 튀어나오는 톡 같은 세상입니다. 이렇게 빠르고, 결과만 보여주는 세상에서 살다 보면 그 뒤에 숨겨진 속사정이나 그럴 수밖에 없었던 이유나 그 사람의 진심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게 될 겁니다. 삭막하고 거칠고 투박한 세상이 될 거란 얘기입니다. 그런 세상을 우리 아이들이 살아가야 한다는 생각을 하면 절로 한숨이 나옵니다. 


미래는 다가오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만드는 겁니다. 읽는 세상을 만들어야 합니다. 누군가가 쓴 글을 읽으며 공감하거나 살을 붙이거나 반론을 제기하며 또 다른 글을 쓰는 세상이 되어야만 합니다. 손가락으로 소통하는 세상이 아니라,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마음과 생각으로 소통하는 세상이 되어야 합니다. 


온전한 정신을 갖추고 살아가는 미래를 만들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오늘 지금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것이죠. 삶의 속도를 늦추고, 자신을 돌아보며, 다른 사람의 인생에 도움을 주는 인생. 때로 우리는 명확한 진실을 외면하며 살아가고 있는 게 아닌가 반성하게 됩니다. 


책장에 가득 꽂힌 책을 바라보면서, 아직 우리 사회에는 저렇게 많은 이들이 생각을 깊이 하며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에 위로 받기도 합니다. 나 자신도 저들과 함께 사람과 세상을 깊이 들여다보는 길을 선택했다는 사실에 뿌듯하기도 하고요. 


종일 속을 비웠다가 저녁에 흰 죽을 조금 먹었습니다. 여전히 힘은 없지만 책 덕분에 맑은 정신 갖게 되었습니다. 이 힘으로 저는 오늘 밤에 또 강의를 합니다. 제 마음에서도 사특함이 사라진 것 같아 기쁩니다.


지금 행복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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