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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장이 Jul 28. 2024

똑같은 글이 없어 다행이다

당신의 오늘은 어땠습니까


제 글은 투박하고 거칩니다. 직설적이고 저돌적입니다. 말랑말랑한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했던 적도 있습니다. 노력도 해 보았습니다. 비슷하게 흉내는 낼 수 있었지만, 그런 글을 쓰는 동안 하나도 즐겁지 않았습니다. 


저는 전과자입니다. 파산자이며 알코올 중독자였고, 막노동을 하면서 살았던 적도 있습니다. 암 환자로 등록 되기도 했고요. 이처럼 삶에 파도가 많았으니 글이 은은할 수 없는 것이지요. 


글은 머리로 쓰는 게 아니라 삶으로 씁니다. 누가 어떤 글을 썼다 하면, 그 글 속에는 쓴 사람의 인생이 녹아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자기 삶을 떠나 허구의 이야기를 쓰겠다고 작정한 사람도 막상 글을 써 보면 자신의 이야기를 쓰지 않을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될 겁니다.


어떤 글을 써야 하느냐고 묻는 사람 많습니다. 문체를 어떻게 정해야 하냐고 질문하는 사람도 적지 않습니다. 대전제를 잊고 있는 것이지요. 삶을 벗어난 글을 쓸 수는 없습니다. 삶을 벗어난 문체도 없습니다. 자신의 이야기를 있는 그대로 쓰다 보면, 주제도 문체도 저절로 정하게 됩니다. 


제가 자꾸 '삶'이나 '인생'을 쓰라고 하니까 거창하게 생각하는 사람들 있는데요. 글을 쓰기 위한 가장 막강한 질문이 있습니다. "어제 무엇을 했습니까?", "오늘 어떤 일이 있었습니까?" 바로 이 두 가지 질문이 글쓰기 기본이라고 생각합니다. 


어제가 내 삶입니다. 오늘이 내 인생이지요. 어제와 오늘을 쓸 수 있다면 글 쓰거나 책 쓰는 데 아무 문제가 없을 거라고 확신합니다. 바꿔 말하면, 어제와 오늘을 쓸 수 없는 사람은 과거와 현재를 소재로 다루기도 힘들다는 뜻입니다. 


초보 작가라면, 제가 하는 말에 또 하나의 반문을 가질 테지요. 어제도 특별한 일 없었고 오늘도 별다른 일 없었는데 대체 무엇을 쓰란 말입니까! 저는 강의 시간에 자주 질문합니다. "어제요? 오늘요? 뭐 별 거 없었는데요."라고 대답하는 사람 적지 않습니다. 


자다가 세상 떠나는 사람 얼마나 많은지 압니까? 하루에 교통사고 등 불의의 사고를 당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아나요? 이별, 질병, 돈 문제, 인간관계 등 온갖 시련과 고난으로 고통 당하는 사람이 매일 얼마나 많겠습니까!


'별 일 없었다'는 하루가 사실은 세상 둘도 없는 축복임을 알아야 합니다. 석 달 전, 그야말로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통증 때문에 제 삶의 질은 뚝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기가 막히고 어이가 없었지요. 무슨 이런 경우가 다 있나! 100일 가까운 날 동안 제가 가장 많이 했던 생각이 있습니다. "아프지 않은 날들이 기적이었구나!"


특별한 일이 있어 특별한 날이 되는 게 아닙니다. 내가 특별하다고 생각하는 날이 특별한 날 되는 거지요. 눈에 보이는 모든 사물들에 관심을 가지고 그것들이 살아 움직이는 생명체라고 여겨 보세요. 말을 걸고, 그것들이 하는 말을 귀 기울여 들어 봅니다. 


만나는 사람 모두를 애틋하고 귀하게 대해 보세요. 매일 마주하는 사람들이 자신에게 얼마나 소중한 존재들인지 느끼고 말하고 안아주어야 합니다. 사람과 사물을 이런 마음으로 대하면 쓰지 않을 수 없겠지요. 


하루가 인생입니다. 그 안에 모든 게 담겨 있습니다. 오늘을 별 것 아니라 여기면 인생도 별 볼 일 없게 됩니다. 제 주변에도 시한부 판정 받은 친구가 있습니다. 그는 매일이 소중하고 아깝다 합니다. 메멘토 모리! 우리 모두는 '끝'이 정해진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주제? 문체? 글감? 그냥 어제와 오늘을 쓰세요. 최고의 글이 나올 겁니다. 


똑같은 삶은 없습니다. 쌍둥이도 태어나는 시각이 다르고요. 둘이 길을 걸어도 서로 다른 풍경을 봅니다. 같은 책을 읽어도 밑줄 긋는 문장이 다르지요. 뷔페 식당 가도 서로 즐겨 먹는 음식 다릅니다. 좋아하는 계절이 다르고, 좋아하는 사람이 다르고, 환경 조건 다 다릅니다. 


그래서 다행입니다. 무슨 글을 써도 똑같은 글은 없을 테니까요. 비교 대상이 없다는 말은 유일하다는 뜻이고, 세상 하나뿐이란 뜻은 소중하고 가치 있다는 말이기도 하지요. 우리는 매일 소중하고 가치 있는 글을 쓰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당신의 어제는 어땠습니까? 당신의 오늘은 또 어떠했나요? 경험, 느낌, 감정, 그리고 메시지. 나의 오늘이 누군가를 도울 수 있다는 생각을 하면, 결코 허투루 보낼 수가 없는 것이지요. 


속상한 일 있었으면 속상한 사람들 위한 글을 쓰세요. 화가 나는 일 있었으면 화가 난 사람들 위한 글을 쓰면 됩니다. 기분 좋고 행복한 일 있었으면 그 기분 좀 나눠주세요. 고난과 역경 겪고 있다면 지금 힘든 이들을 위해 도움이 될 만한 한 마디를 전해주세요. 


글을 쓴다는 건, 나의 하루로 다른 사람 인생을 돕는 행위입니다. 그래서! '돈 되는 글쓰기' 따위의 말이 참으로 허섭하고 쪽팔리는 표현이란 말이지요. 


지금 행복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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