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상황에서도
내일부터 닷새 동안 일본에 다녀옵니다. 배낭에 가장 먼저 챙겨 넣는 물건은 맥북입니다. 이른 아침이나 늦은 밤, 숙소에서 글을 쓸 겁니다. 가족과 함께 보내는 시간에 글쓰기를 밀어넣지는 않겠지만, 아주 잠깐이라도 혼자만의 틈이 생기면 글을 쓸 작정입니다.
요즘에는 주로 사무실에서 글을 씁니다만, 집에서도 틈틈이 노트북을 펼칩니다. 생각이란 것이 훅 스치고 지나가버리면 여간해선 다시 돌아오지 않는단 사실을 잘 알기 때문입니다. 수첩에 메모하고 낙서한 후 나중에 써도 되지만, 가끔은 생각이 길게 이어질 때도 있어서 바로 쓰지 않으면 놓쳐버릴 때가 많습니다.
다른 지역으로 강의를 갈 때도 노트북이나 맥북은 꼭 챙깁니다. 강의장에 시스템이 다 갖춰져 있는 경우가 많아서 USB 하나만 달랑 들고 가도 됩니다만, 이동간 열차나 버스 안에서도 글을 쓸 수 있기 때문에 항상 채비하는 것이죠.
집이나 열차 안에서는 그렇다 치더라도, 굳이 가족 여행 가서까지 글을 써야 하느냐고 묻는 사람들 있습니다. 제가 무슨 노벨 문학상 받을 만한 사람도 아니고, 유모차에 아기 태우고 카페 전전하는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작가도 아닌데, 뭐 그렇게까지 글을 쓸 필요가 있느냐 라는 질문으로 들리기도 합니다.
글을 쓸 시간이 없을 만큼 바쁘다고 말하는 예비 작가에게 퇴근 후 집에서 잠깐씩이라도 쓰라고 권합니다. 그럴 때마다 그들은 입을 삐죽거립니다. "퇴근한다고 해서 일이 끝나는 게 아니에요. 집에 와서도 일 생각에 골치가 아프고, 주말에도 소파에 앉아 밀린 회사 업무를 처리할 때가 많습니다. 정말로 시간이 없다구요!"
여행지에 맥북 들고 가서 글 쓰는 건 마땅찮은 일이고, 주말에 집에서 회사 일을 하는 건 어쩔 수 없는 노릇인가요? 선을 그으려면 모든 분야에 선을 그어야 하고요. 선을 없애려면 예외없이 다 선을 없애야 합니다. 회사 일은 시도 때도 없이 하면서, 글 쓰는 건 딱 정해 놓고 해야 한다? 앞뒤가 맞지 않는 얘기지요.
어쩔 수 없이 해야만 하는 일이 있고, 자신이 좋아서 꿈을 품고 나아가는 일이 있습니다. 무엇이 더 중요한가 따지는 건 별 의미가 없고요. 둘 다 최선을 다 해야 한다는 사실이 중요하지요. 회사 일을 집에까지 가져와서 할 정도로 자기 일에 몰입하는 사람이라면, 글 쓰는 삶을 살기로 한 자신의 결정도 소홀히 여기지 않는 태도를 가져야 마땅하겠지요.
회사 업무에 대한 비중은 높고 글쓰기는 아예 뒷전이라면, 그것은 시간이 없는 게 아니라 우선순위의 문제입니다. 회사 일은 제대로 하지 않으면 상사한테 혼이 나거나 승진에 누락되는 등의 불이익이 있을 겁니다. 글을 쓰지 않으면 어떻게 되나요? 아무 일도 생기지 않지요? 그래서 쓰지 않는 겁니다.
어떤 일에 도전할 때, 절실하고 절박한 이유가 없으면 몰입하기 힘듭니다. 하면 좋고 안 해도 그만인 일을 '열심히' 하는 사람은 드물지요. 자신만의 뜻을 품고 반드시 이루겠다 간절한 목표를 세우는 사람만이 성과를 낼 수 있습니다.
똑같이 시작했는데도 누구는 책을 두 권 세 권 출간하고 또 다른 이는 한 권도 출간하지 못합니다. 책을 출간한 사람은 시간이 남아돌아서 집필한 걸까요? 지금껏 수많은 책을 읽었지만, 글 쓸 만한 시간이 충분하고 여건이 갖춰져서 썼다는 작가 본 적 없습니다. 다들 어렵고 힘든 가운데 어떻게든 기회를 만들어 집필한 것이죠.
책을 쓰고 싶지만 시간 내기가 힘들다고 말하는 사람들. 그 심정 충분히 이해하지만, 조금은 냉철하게 자신을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글과 책을 통해 세상과 타인에게 전하고자 하는 간절한 메시지가 없는 건 아닐까요.
11월말까지 초고를 완성하면 조건 없이 통장에 천만 원 들어온다 가정해 봅시다. 시간 없어서 못 쓴다는 말이 나올까요? 네, 맞습니다. 중요한 건 "Why"입니다. 그 일을 시작하고 지속하고 끝내야만 하는 강렬한 동기! 바로 그 절박한 동기가 모든 핑계와 변명을 사라지게 만듭니다.
수감중인 사람들에게 글 쓰라고 하면 저를 미친 사람 취급합니다. 인생 다 망해서 감옥에 앉아 있는 사람한테 무슨 글쓰기를 얘기하느냐고 말이죠. 밖에서 평범하게 살아가는 이들에게 책 쓰라고 권하면 저를 한심한 눈으로 쳐다봅니다. 감옥에 다녀올 정도의 인생 풍파도 없었는데 대체 무얼 쓰라고 하는 거냐고 말입니다.
쓰지 못하는 이유는 차고 넘칩니다. 감옥에 있는 사람은 감옥에 있어서 쓰지 못하고, 평범한 사람은 평범해서 쓸 게 없으니 쓰지 못한다 합니다. 세상에는 감옥에서 책을 쓰는 사람도 분명 존재하고 평범한 이야기로 책을 내는 사람도 많고 많습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글을 쓰는 사람 있는가 하면, 어떤 상황이 주어져도 글을 쓰지 못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환경과 상황과 조건이 중요하다고는 하지만, 과연 글을 쓰지 못할 만큼의 상황이 존재하는가 의문입니다.
쓰고 싶다면, '글쓰기'를 소명으로 여겨야 합니다. 자신의 정체성으로 삼아야 합니다. 스스로 '글 쓰는 존재'라고 정의하면, 어떤 환경이나 상황에서도 쓸 수 있습니다. 어딜 가나 '글쓰기'를 가지고 다니세요. 글쓰기는 언제든 숨을 고를 수 있는 안식처입니다.
지금 행복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