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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장이 Nov 19. 2024

글쓰기로 훌훌 털고 일어나다

쓰는 사람이라서


쓰디 쓴 실패를 맛보았다. 그 시절, 나는 글을 쓰면서 이겨냈다. 나에게 일어난 일을 남 얘기하듯 글로 적었고, 내가 느끼는 고통과 좌절감이 사실 그대로인지 과장 된 것인지 쓰면서 판단했다. 사실과 견해를 분리하고, 내게 일어난 일에서 한 걸음 물러나 "내 글을 읽는 존재"로서 생각해 볼 수 있었던 덕분에 나는 참고 견딜 수가 있었던 거다. 


위대한 존재 따위 될 생각 없었고, 그저 아무 일 없이 평범하게 돈만 조금 많은 인생 바랐다. 사업 실패로 소박한 꿈마저 산산조각 났을 때 비통했다. 그때도 나는 글을 썼다. 망가진 꿈 대신 실오라기 같은 새로운 꿈이라도 하나 품을 수 있을까. 앞으로 내 인생이 어떻게 전개 될 것인가에 대해 쓰고 또 써 보았다. 


사람으로부터 상처를 받았을 때에도 글을 썼다. 이 사람 정도면 믿어도 되겠다 생각했을 때, 어김없이 그 사람은 나의 뒤통수를 쳤다. 나는 사람 보는 눈이 없다. 모두 내 책임이다. 이런 이야기를 글로 적다 보면 세상과 인생을 다소 냉소적으로 바라보게 되는데, 덕분에 상처와 아픔이 줄었으니 다행한 일 아니겠는가.


글쓰기가 치유와 직접적인 관계가 있는지 나는 잘 모른다. 극심한 트라우마에 시달리던 친구는 제법 많은 양의 글을 썼지만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별의 아픔을 호소하던 어느 여자는 2년 동안 매일 글을 쓰고 있지만 아직도 집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글을 쓰면서 상처와 아픔 씻어냈다는 사람들 이야기도 많이 들었고, 글을 썼지만 별 효과 없었다는 말도 적잖게 들었다. 내 경험으로 비추어보자면, 글쓰기가 불편하고 불행한 마음을 달래는 데에 분명한 효과가 있다. 다만, 각자가 경험하는 고통의 정도가 다르고, 글 쓰는 방식도 제각각이라서 딱히 이렇다 하고 정의를 내리기는 어려운 문제이다. 


그럼에도 나는 아플 때마다 글을 쓴다. 힘들고 어려운 문제에 부딪힐 때마다 글을 쓴다. 나와 타인을 도저히 용서하기 힘들 때도 글을 쓴다. 인간이란 존재의 바닥을 보게 되었을 때도 글을 쓴다. 사람 때문에, 내가 하는 일에 회의를 느낄 때도 글을 쓴다. 이제 그만 모든 걸 접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도 글을 쓴다. 


글을 쓰면서 나는 느낀다. 나는 쓰는 사람이라서 글 쓰는 걸 멈출 수 없다는 사실을. 내가 쓰는 사람이라서 다행이란 사실을. 글 쓰면서 많이 좋아진다는 사실을. 


최근 나는 더할 수 없을 만큼의 모욕과 분노를 느꼈다. 감정 잘 추스르면서 견디고 버틴다. 만약 글쓰기를 모르고 살았더라면 이럴 때 내가 어떤 말과 행동을 할지. 상상하면 끔찍하다. 그래서 지금 더 감사하다. 


글 쓰고 나면 속 시원하다. 그냥 감정을 마구 내뱉는 정도를 넘어서, 구성과 논리와 메시지까지 담아 한 편 분량을 다 채우기 때문에 더 뿌듯함 느낀다. 특정인을 겨냥한 분풀이 글을 쓰는 사람도 있지만, 그런 글은 자신에게도 아무 도움 되지 않는다. 


글쓰기는 세상을 크게 보는 힘을 키운다. 간장종지 얕은 심보로 인정과 칭찬만을 바라는 약해빠진 마음을 벗어날 수 있다. 글쓰기가 어려운 이유이기도 하다. 연습과 훈련이 필요하다. 생각하고 생각하고 또 생각해야 한다. 어렵고 힘든 쓰는 과정을 거치는 동안 나는 더 영글어간다. 


한  시간 정도 글을 쓰고 나면 등에 땀이 흥건하다. 쓰기 전과는 다른 존재가 된다. 훌훌 털고 다시 일어선다. 지금은 내가 만난 적 없는 새로운 시간이다. 삶은 언제나 지금부터이고, 지나간 시간이나 지나간 사람에 매달려 낭비할 수 없는 소중한 순간이 지금부터 펼쳐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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