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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장이 1시간전

다른 사람 바꾸려 들지 말고 내 인생에 집중하기

내가 서 있는 자리가 바뀌면


도대체 왜 저러는 것일까.

사람이 양심이 있어야지.

뭐가 중요한지 깨닫게 해 주겠어.

근본부터 뜯어 고쳐야 해.

이번 기회에 버릇을 고쳐 놔야지.


몰지각한 행동을 하거나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태도를 보이는 사람들을 보면서, 우리는 "저 사람은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가까운 사람일 경우에는 '내'가 '그'를 바꿀 수 있다고 믿기도 하지요. 


상대를 더 좋은 길로 인도하겠다는 마음 자체는 나쁘지 않습니다. 선하고 아름다운 남을 위한 마음입니다. 그러나, 옳고 그름의 기준이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깊이 생각해 볼 문제입니다. "나는 옳고 상대는 틀렸다"는 생각이 전제가 되는데, 무엇을 기준으로 이런 생각이 정당화 되는가 스스로 질문해 보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강의 시간에 화면을 꼭 켜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예전에는 화면 끄고 강의 듣는 사람을 아주 몰상식하고 예의 없고 기본조차 갖추지 못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화면을 켜고 수업 듣는 것이 너무 당연하게 옳은 일이라고 믿었기 때문에 저와 생각이 다른 이들은 모조리 "틀렸다! 나쁘다!"고 몰아붙였던 거지요. 


지금은 다릅니다. 온라인 화상 수업의 특성상 개인 사정에 따라 화면을 끌 수도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였습니다. 다만, 화면을 끈 상태로 수업 들으면 아무래도 집중력이 흐트러지고 자세도 엉망이 되기 십상이라 그 만큼 교육 효과가 떨어지는 건 사실이지요. 


요즘에도 화면을 반드시 켜야 한다고 강조하고 화면 켜야만 제 수업을 들을 수 있도록 정해두고 있습니다. 하지만, 예전에는 "그래야만 바른 사람"이라고 생각했다면, 지금은 "가급적 그렇게 해주세요"로 바뀌었습니다. 


이 사소한 차이 하나가 제 마음을 지극히 평온하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저의 지식과 경험과 관념에 휩싸여 세상 모든 사람이 "반드시 ~해야 한다!"라고 생각하면서 사는 것은 강박과 고통과 불행을 자처하는 태도입니다. 


사람마다 성향이 다르고 환경이 다르고 상황이 다릅니다. 지하철에서 어린 아이들이 이리 뛰고 저리 뛰면서 난리를 친다면 그걸 보고 있는 당신의 생각은 어떨까요? 애들 아빠가 아이들을 통제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불쾌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엄마의 장례식을 치른 지 얼마 되지 않는 아이들이라면, 그런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되었다면, 그 상황을 지켜보는 마음이 전혀 달라질 테지요. 


물론, 모든 상황에 "그럴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는 것은 무리입니다. 우리가 무슨 위대한 성인도 아니고, 어떻게 매번 타인을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겠습니까. 다만, 무조건 내가 옳고 너는 틀렸다는 극단적인 사고방식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날 필요가 있다는 뜻입니다.


다른 사람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해서 그를 바꾸려고 노력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행위는 없습니다. 첫째, 사람은 여간해서는 바뀌지 않기 때문입니다. 둘째, 사람은 타인에 의해서는 더더욱 바뀌지 않기 때문입니다. 셋째, 나에게는 타인을 바꿀 만한 힘이 없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 바꾸려고 애쓰는 시간에 차라리 내 인생 더 낫게 만드는 데 에너지를 집중하는 편이 낫습니다. 내가 더 나아지고 더 높아지고 더 넓어지면 두 가지 측면에서 긍정적인 변화가 일어납니다. 먼저, 마음에 들지 않는 그 사람을 대수롭지 않게 보게 되고요. 다음으로, 전혀 다른 차원의 사람들과 함께 할 기회를 갖게 됩니다. 


더 나은 존재가 된다는 것이 만만한 일은 아닙니다. 그러나, 노력하고 연습하고 훈련하는 과정에서 타인에게 느꼈던 불편함이나 분노가 충분히 사그라들기 때문에 시작부터 효과를 누릴 수 있는 것이죠. 


저 같은 경우에는 사람 때문에 상처를 입거나 뒤통수 맞을 때마다 글을 씁니다. 신중하게 단어를 선택하고 한 편의 글을 숙고해서 쓰는 동안 제 글쓰기 실력도 좋아지고 마음도 편안해집니다. 누군가를 미워하고 증오하는 불편한 마음 대신, 제 글을 읽는 또 다른 누군가를 위하는 시간 갖는 것이죠. 


나와 다른 사람을 "틀렸다"라고 정의하고, 그를 바꾸려고 애쓰고, 그 사람을 미워하고 싫어하고 증오하면서 살았을 적에는 매 순간 저 자신이 너무 힘들었습니다. 그 미운 사람에 대한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거든요. 내가 왜 내 인생과 아무 상관도 없는 사람 때문에 소중한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해야 하는지 답답하고 원통하기만 했습니다. 


글쓰기는 그런 저의 불행을 낭만과 행복으로 바꾸는 좋은 도구가 되어 주었습니다. 어제만 해도 블로그 네 편에 열 번째 책 두 꼭지, 모두 여섯 편의 글을 썼습니다. A4용지 1.5매씩, 총 9매. 원고지로 환산하면 거의 70매에 이르는 글을 하루만에 쓴 것이죠. 아무리 마음 복잡하고 심란한 상태에 있는 사람이라도 글을 70장 쓰고 나면 전혀 다른 감정을 품게 됩니다.


다른 사람 바꾸는 게 애초부터 '안 되는' 일이란 걸 뻔히 알면서도 그것 때문에 속 태우며 사는 것이 바람직한 태도일까요? 아니면, 타인에 대한 마음 싹 접고 자기 성장과 발전을 위해 시간과 노력 투자하여 나 자신이 더 나은 존재가 되고 내 삶이 더 나아지도록 만드는 것이 마땅한 태도일까요!


누군가를 미워하는 사람 눈에서는 검은 색 레이저가 나옵니다. 자신은 인식하지 못하지만, 그 레이저는 미워하는 대상 외에 다른 모든 사람 눈에도 비치게 마련입니다. 뭔가 불편해 보이고, 어색해 보이고, 정신이 없어 보이고, 분주해 보이고, 차분하지 못하게 보이고, 심란해 보이고, 불행해 보입니다. 좋은 사람들과 함께 할 기회를 잃게 된다는 뜻입니다. 


내가 미워하는 사람 말고도 세상에는 사람이 많지요. 그래서 한두 명 정도 미워하면서도 얼마든지 다른 좋은 사람 만날 수 있다고 착각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순간적으로는 더 좋은 사람이 곁에 온 것처럼 느껴지지만, 조금만 지나면 결국 새로 만난 사람들에게서도 단점을 발견하게 됩니다. 사람 미워하는 감정도 습관이기 때문입니다. 


만나기만 하면 다른 사람 험담하길 좋아하는 사람 있습니다. 재미 있는 것은, 만날 때마다 그거 험담하는 대상이 달라진다는 사실이지요. 그 사람 주변에는 어쩜 그리 '나쁜 인간'들만 모여드는지 신기할 따름입니다. 


팩트는 무엇일까요? 그 사람 주변에 나쁜 사람만 모여드는 게 아니지요. 어떤 사람이 몰려오든 그 사람 눈에는 부족하고 모자라고 형편없는 점만 보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을 미워하고 싫어하는 감정이 습관이기 때문에 누굴 만나도 오래 가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누구도 완벽할 수 없습니다. 자신은 완벽하지 못하면서 다른 사람 뜯어고치려고만 하면 갈등과 다툼이 생길 수밖에 없겠지요. 애만 쓰면서 결과는 나빠지기만 하는 관계가 계속 악순환 되는 겁니다. 


자신의 인생을 더 낫게 만드는 데 몰입하세요. 내가 서 있는 자리가 달라지면 사람도 세상도 함께 달라집니다. 


지금 행복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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