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법
어렵다. 균형 잡고 살아야 한다는 걸 뻔히 알면서도 적용하고 실천하는 게 말처럼 쉽지 않다. 글을 쓰고 싶은 순간에 아버지나 어머니가 무언가를 시키거나 아내와 아들이 부탁이나 요청을 하면 거절하기 힘들다.
매주 수요일은 오전과 야간 두 번에 걸쳐 책쓰기 정규수업 진행한다. 사무실에서 오롯이 글을 쓸 수 있는 시간이 다른 날보다 적다. 아버지는 치과에 가야 하니 차를 좀 태워달라 하시고, 어머니는 마트에 가서 무우를 좀 사오라 하신다.
아내는 모자와 장갑을 사야 하니 홈플러스에 가자 하고, 아들은 수업에 늦었으니 학교까지 좀 태워줄 수 있는지 묻는다. 이씨. 내가 집에서 놀고 먹는 사람도 아니고. 24시간이 부족할 지경인데.
가족보다 소중한 건 없다는 사실 누구보다 잘 안다. 생이별도 해 보았고, 가족 가슴에 대못도 박았었다. 죄스러운 마음 한 순간도 놓은 적 없다. 글쓰기도 못지않다는 게 문제다. 힘들고 어려운 순간에 나를 지탱해 준 것이 글쓰기다.
가족과 함께 하는 일상은 축복이며 기적이다. 잃어 본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진실. 하여, 나는 글쓰기와 일상 사이 균형을 잡고 살아가기 위해 노력한다. 가족을 챙기는 동안에는 글쓰기를 뒤로 할 수밖에 없고, 글을 쓰는 동안에는 가족을 챙기지 못한다.
이 둘 사이 균형을 잡기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 꽤 오랜 시간 고민하였다. 똑 부러지는 답을 찾지 못했다. 사람은 한 번에 한 가지 일만 할 수 있다는데, 나는 매 순간 글쓰기와 일상 사이에서 한 쪽으로 치우친 삶을 살아가는 건 아닐까.
아무리 글쓰기가 중요하다 하지만 가족과 비교할 수 있겠나 싶어 한 때 가족 챙기기에만 몰두한 적 있었다. 내가 불행했다. 불행한 상태로 가족 챙겨 봐야 아무 의미가 없었다.
내가 먼저 행복해야 가족도 행복할 수 있겠다 싶어 글쓰기에만 전념한 적도 있었다. 마음 한 구석에 가족에 대한 죄책감이 남아 그 또한 즐겁지 않았다.
책 많이 읽으면서도 책에 나오는 인생 진리를 잊고 살았다. 진정한 행복은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할 때 비로소 누릴 수 있다는 사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한다는 원칙과 기준을 세우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매 순간 주어지는 '지금'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 행복과 성공 모두에 가장 중요한 법칙이었다.
아버지와 함께 있을 때는 아버지에게 최선을 다한다. 어머니와 대화할 때는 오롯이 그 대화에만 몰입한다. 아내와 아들 챙길 때는 다른 생각 하지 않는다. 글을 쓸 때는 오직 글쓰기에만 전념한다.
길을 걸을 땐 길 걷는 데에만 집중하고, 강의할 때는 강의에 미친 사람처럼 빠져든다. 책 읽을 땐 옆에서 누가 업어 가도 모를 정도이고, 청소할 땐 마치 청소에 한 맺힌 사람처럼 쓸고 닦는다.
가족 챙겨야 한다, 글 써야 한다... "~ 해야 한다"는 강박을 품을수록 정작 그 일에 집중하기는 힘들다. 하지는 않으면서 해야 한다는 생각만으로 자신을 힘들게 하고, 때로 머릿속으로 생각만 하는 것을 실제로 자신이 하고 있다는 착각 일으키기까지 한다. 능률과 효율에 있어 최고는 지금 이 순간 내게 주어진 일에 오롯이 집중하여 최선을 다하는 태도이다.
'워라벨'이라는 말이 유행한 적 있다. 일과 삶의 균형을 유지해야 한다는 의미다. 현실적으로 일과 삶의 균형을 유지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돈 많이 벌기 위해서는 일에 빠져 살아야 하고, 삶을 누리고 즐기겠다 하면 일을 소홀히 할 수밖에 없는 현실.
이럴 때 가장 좋은 방법은, 일할 땐 일에 빠지고 삶을 누릴 땐 삶에 빠지는 거다. 첫째, 건강이 우선이다. 지치고 힘들면 균형이고 뭐고 다 무너진다. 둘째, 소중하지 않은 게 없다는 사고방식 필요하다. 가치가 한 쪽으로 기울면 균형은 깨진다. 셋째, 자신을 소중히 여겨야 한다. 모든 순간에 최선을 다하고 있는 자신을 챙기지 않으면 일과 삶보다 내가 먼저 무너진다.
일, 가족, 관계, 건강, 재정 등 무엇 하나 중요하지 않은 게 없다. 동시다발적으로 이 모든 걸 다 챙겨야 한다고 생각하면 공황상태에 빠질 게 뻔하다. 큰 목표와 계획을 세워 인생 뼈대나 줄기는 선명히 하되, 이후로는 매 순간 주어지는 '지금'에 빠져들어야 한다.
아버지 치과에 모셔다드리고, 어머니 무우 사다드리고, 아내와 홈플러스 다녀오고, 아들 학교 태워주었다. 그리고 글도 썼다. 도저히 시간이 역부족이었다면, 또한 그에 맞춰 몇 가지 양보하고 하루를 보냈을 터다. 완벽한 인간 말고 원숙한 인간이 되기 위해. 지금, 주어진 일을, 한다.
지금 행복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