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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쓰기'만 보면 '글쓰기'를 놓친다

오늘, 그리고 지금

by 글장이 Feb 18.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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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옥에 들어간 지 며칠쯤 지났을 때, 벽에 붙은 달력을 멍하니 바라본 적 있다. 5월, 6월, 7월.... 한 장씩 넘기면서 출소 날짜까지 얼마나 남았나 더듬어 보았다. 하마터면 돌아버릴 뻔했다. 그 많은 날들. 달력에 적혀 있는 숫자가 그토록 많은지 처음 알았다. 


하루가 일 년 같은데 어찌 그 많은 날을 기다릴 것인가. 다리에 힘이 풀리고 머리는 쭈뼛 섰으며 한숨이 절로 나왔다. 울고 싶었다. 내 소중한 인생. 여기가 대체 어디란 말인가. 나는 어쩌다 이런 곳에 앉아 있게 된 것인가. 


죄를 짓고 감옥에 들어왔다는 사실보다 출소하는 그 날이 영원히 오지 않을 것 같은 두려움과 불안함이 나를 더 힘들게 했다. 다른 친구들은 인생의 한가운데에서 가장 중요하고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내고 있을 텐데. 나는 절망 속에서 허우적거리며 썩은 곰팡이 냄새나 맡고 있어야 하다니. 


하루 세 끼 밥상 차리고 그릇 씻는 일을 도맡아 하기로 했다. 원래는 돌아가며 한 사람씩 당번을 정하는데, 아예 대놓고 모든 설거지를 나 혼자서 하겠다고 선언했다. 함께 방을 쓰던 아홉 명의 재소자들은 얼씨구나 좋아했다. 그렇게 해서라도 시간을 빨리 보내고 싶었다. 


매일 글 쓰고 책을 읽었다. 집중해서 쓰고 읽으니 시간이 쏜살 같이 흘렀다. 심지어 하루 해가 조금 더 길었으면 싶은 날도 있었다. 몰입하는 만큼 시간이 빨리 간다는 걸 처음으로 체험했다. 


남들 보기엔 아무 의미도 없는 일일지 모르지만, 나는 나름대로 하루 일과를 계획하고 철저히 지켰다. 감옥이라는 공간에서 최대한 치열하게 하루를 살아내기로 결심한 거다. 책 읽고, 글 쓰고, 혼자 중얼중얼 강의 연습을 했다. 30분 운동 꼬박 챙겼으며, 방 청소와 설거지도 혼자 책임졌다. 


저 멀리 어느 날을 기다리거나 언젠가 무언가를 기대할 때, 지겹도록 시간이 가지 않는다 느껴질 때, 그럴 때 최선의 방법은 '오늘에 집중'하는 것이다. 인생이 오늘 하루뿐이라는 생각으로 살아내면, 그렇게 하루하루 온전히 몰입하면, 기다리거나 기대할 때의 막연함을 극복할 수 있다. 


군에 복무할 때, 다른 어떤 훈련보다 행군이 힘들었다. 요령도 피울 수 없고, 군장을 내려놓을 수도 없었다. 언제 도착할지 알 수도 없었고, 그저 저벅저벅 군화 소리만 들릴 뿐이었다. 그 순간을 이겨내는 최고의 방법은 바로 앞 사람과 나의 발만 쳐다보는 거다. 


앞 사람의 보폭에 내 발을 맞추어 한 걸음씩 내딛다 보면 어느 순간 리듬이 생긴다. 그 리듬에 몸을 맡기고 생각을 삭제하면 멀고 힘든 행군도 견딜 수가 있다. 저 멀리 목적지를 그리는 게 아니라, 바로 앞 사람의 발과 나의 발을 쳐다보는 것이 고통을 줄이고 지금에 집중하는 방법이다. 


책 한 권 쓰는 데에는 꽤 많은 시간이 걸린다. A4용지 1.5~2매씩 적어도 마흔 꼭지 이상 써야 한다. 초보작가가 책 쓰겠다는 마음으로 시작하면 얼마 못 가서 지칠 수밖에 없다. 열심히 노력해서 한 꼭지를 겨우 채웠지만, 아직도 서른 아홉 꼭지라는 보이지도 않는 길이 펼쳐져 있으니 숨이 찰 수밖에.


'책쓰기'를 보지 말고 '글쓰기'를 보아야 한다. 저 멀리 안개 속 막막한 목적지를 보려 하지 말고 바로 앞 자신이 딛고 있는 땅과 발을 보아야 한다. 한 걸음을 내디딜 수 있어야 천리길도 갈 수 있는 법이다. 


방해가 되는 몇 가지 감정이 있다. 첫째, 조급함이다. 빨리 책을 내고 싶은 마음만 가득하고 오늘 쓰는 글에는 별 관심 없으니 모든 순간이 힘들고 고통스럽게 느껴지는 것이다. 


둘째, 결과에 대한 집착이다. 작가는 글 쓰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지 무조건 책만 내는 사람이 아니다. 일주일만에 책 내고 인생 역전했다는 터무니없는 광고가 넘쳐나는 세상이다 보니, 쓰는 행위에는 별 관심이 없고 오직 출간에만 연연하는 사람 많다. 


셋째, 실력보다 월등한 수준의 책을 내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초보작가인 만큼 부족하고 모자란 게 당연한데, 배우고 공부하고 실력 쌓을 생각은 하지 않은 채 화려하고 멋진 베스트셀러 출간하기만을 바라는 것이다. 이런 마음가짐으로는 백날 글 써도 앞이보이지 않는다. 달라지지 않는다. 쓰기 전의 삶보다 더 못해질 수도 있다. 


1킬로미터를 착실히 뛸 수 있어야 42킬로미터 완주할 수 있다. 다른 건 다 필요없고 무조건 결승선만 통과하고 싶다는 생각으로 살면 모든 순간이 시련과 고난이 된다. 아무런 보람도 의미도 가치도 없는 인생. 과정을 허투루 여긴 채 결과만 보는 삶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오늘' 차분하게 삶을 돌아보며 한 편의 글을 쓴다. 이게 전부다. 어차피 어제를 돌아본다 한들 바꿀 수 있는 인생도 아니고, 내일을 당겨 본다 한들 미리 살 수 있는 방법도 없다. 우리가 만나는 인생은 언제나 오늘과 지금 뿐이다. 


서두른다 해서 빨리 갈 수 없는 것이 삶이고, 안간힘을 쓰면서 붙잡는다 해서 멈출 수 없는 것이 시간이다. 조급한 마음으로 발 동동 구를 필요도 없고, 두려움 마음으로 시간 느리게 가길 바랄 필요도 없다. 오늘, 지금 해야 할 일을 묵묵히 해 나가는 것. 오직 그것만이 인생을 잘 사는 방법이다. 


감옥에 가고 싶지 않아 발버둥 치면서 버텼지만, 결국 그 시간은 오고야 말았다. 절대 오지 않을 것만 같았던 출소 날짜도 결국 왔고, 그로부터 이미 10여년 세월까지 흘렀다. 


두려워하면서 초조하게 보냈던 시간들. 오지 않을 것 같아 허투루 낭비하며 보냈던 세월들. 내 소중한 삶에서 함부로 버렸던 그 시간 다 모아서 하루하루 해야 할 일을 충실히 다시 해낸다면, 아마 내 삶은 지금과는 차원이 다른 수준에 이르지 않을까. 


늦지 않았다. 남은 인생이라도 후회없이 살아내야 한다. 꿈도 있고 목표도 있지만, 그것들만 바라보며 망상과 공상 속에 인생 보낼 수는 없다. 아무리 멋진 목표라도 오늘을 살지 않으면 이를 수 없고, 아무리 훌륭한 꿈이라도 지금을 살지 않으면 실현할 수 없다.


수강생들에게 자주 묻는다. 어제 뭐 했습니까? 오늘은 무얼 했습니까? 그렇다. 어제와 오늘 속에 우리 인생 다 담겨 있다. 어제와 오늘을 쓸 수 있으면 인생도 쓸 수 있다. 어제와 오늘을 쓰기 위해서는, 어제와 오늘을 잘 살아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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