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고 고치고 다듬는 모든 시간들
A4용지 1.5매 분량의 글을 총 40편 쓴다고 생각해 봅시다. 그런 다음, 같은 내용으로 한 번 더 40편 써야 한다면요. 기분이 어떨 것 같습니까? 혹시, 미치지 않고서야 누가 그렇게 하겠느냐는 생각이 드는가요? 천만의 말씀입니다. 이것이 퇴고입니다.
처음에 쓰는 40편은 가볍고 유쾌하고 즐거워야 합니다. 심지어 아무 생각 없이 써도 될 정도입니다. 이렇게 해도 되는 이유는, 초고는 머릿속 이야기를 두서없이 쏟아내는 작업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승부는 퇴고에 걸어야 합니다. 메시지를 선명하게 만들고, 구성을 정돈하고, 문맥을 바로 잡고, 문장을 다듬고, 문법에 맞게 고칩니다. 아예 처음부터 다시 쓰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이미 초고를 쓰면서 생각을 다 뱉아놓았기 때문에, 글을 처음부터 다시 쓰면 훨씬 가지런하고 명확할 수 있습니다.
초보 작가 중에는, 초고에 목숨 걸고 퇴고는 아예 대충 하려는 사람 적지 않습니다. 반대로 해야 합니다. 초고를 대충 쓰고 퇴고에 목숨을 걸어야 마땅합니다. 글은 쓰는 게 아니라 '고쳐쓰는' 겁니다. 글을 잘 쓴다는 말은 얼마나 잘 고쳐쓰는가의 문제입니다.
초고를 잘 쓰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것은 중요하지도 않은 '쓰레기' 혹은 '걸레'에 귀한 에너지를 낭비하는 것과 같습니다. 마구 휘갈겨 분량만 채우면 됩니다. 그러니, 초고를 쓰는 동안 작가는 스트레스 받을 이유가 없습니다.
그렇게 아껴둔 힘과 에너지를 퇴고할 때 몽땅 쏟아내야 합니다. 스트레스도 퇴고할 때 받아야 합니다. 글 쓰는 것이 어렵고 힘든 작업이라고 표현할 때, 이 때 글쓰기는 퇴고를 말합니다.
목요일 밤 9시부터 한 시간 동안 133명 예비 작가님들과 제 230회 "이은대 문장수업" 함께 했습니다. 퇴고의 중요성을 강조했습니다. 문장수업 자체가 '라이브 퇴고 쇼'입니다. 일주일에 한 번 초고가 다듬어지는 과정을 직접 눈으로 보면서 해설까지 곁들여 듣게 되면, 나중에 자신의 글을 퇴고할 때 큰 도움 되겠지요.
저는 퇴고를 즐깁니다. 제 삶은 상처와 아픔으로 가득한데요. 인생은 아무리 악을 써도 되돌릴 수가 없습니다. 반면, 글쓰기는 언제든 고치고 또 고칠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인생이 글 같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래서 저는 글을 인생처럼 쓰려고 노력하는 겁니다.
자꾸 힘들다 어렵다 하면 실제로도 힘들고 어려울 수밖에 없습니다. 근사한 작가로서 쓰고 고치는 행위 자체를 즐기고 누리겠다는 생각을 반복해야 실제로도 실력을 키울 수가 있습니다.
책을 출간하는 그 자체도 중요하겠지만, 이렇게 함께모여 글공부하는 과정에서 더 많은 걸 배우고 깨닫게 됩니다. 끝이 아니라 과정을 귀하게 여기는 습관이 진짜 행복과 성장을 만나게 해줍니다.
빠른 성공과 돈벌이만을 강조하는 SNS 광고가 난무하는 세상이지요. 거기에 따라가지 못하면 나만 뒤처지는 게 아닌가 두렵기까지 합니다. 그러나, 세상이 아무리 소용돌이쳐도 내가 중심 잡고 휘둘리지 않으면 나만의 세상을 완성할 수 있습니다.
책을 후딱 써서 출간하고 그것으로 돈벌이할 궁리만 하지 말고, 쓰고 고치는 작업을 반복하면서 정신적인 성장을 먼저 거두는 편이 내 삶을 지키는 올바른 방법이라 하겠습니다. 빨리 끝내는 무언가는 항상 빨리 사라지게 되어 있습니다. 무슨 일이든 정성을 들여야 흔들리지 않는 결실 맺을 수 있는 법이지요.
빨리 출간하고 싶은 조급한 마음보다는 차분하게 자기 글을 읽고 다듬으면서 하나라도 더 배우고 익히는 것이 글 쓰는 삶의 가치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지금 행복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