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 포기하지 말기를
호우주의보, 경보 쉴 새 없이 도착한다. 곳곳에 하천 물 넘치고 통제되었다는 소식도 잇다른다. 무섭게 퍼붓다가, 잠시 줄었다가, 다시 한밤중인 것처럼 어둠에 휩싸여 마구 쏟아지기를 반복한다. 피해 소식 보고 들을 때마다 심장이 내려앉는다.
이제 그칠 때도 되었다. 두 달 전인가. 산불 났을 때는 그토록 간절하게 빌어도 들은 척 만 척하더니, 이제는 또 그만 좀 왔으면 싶은데도 멈출 기미가 보이질 않는다.
비가 좋았던 때가 있었다. 비를 사랑했던 적 있었다. 채무관계 복잡하게 얽혀 있었다. 비가 세차게 내리는 날에는 독촉 전화가 줄었고 방문도 없었다. 비가 많이 오는 날은, 그나마 내 마음이 좀 쉴 수 있는 날이었다. 그런데 이제, 비가 좀 그만 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비가 멈추길 바란다는 것은, 이제야 내 마음 상처가 충분히 씻겨 내려갔다는 뜻인가.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면서 비가 그치길 바라고 있는 내 모습에 깜짝 놀랐다. 멀쩡한 하늘을 보면서도 그토록 비 내리길 간절히 바랐었는데.
시간이 무섭다. 십여년 세월만에 아픔의 뿌리가 뽑힐 수 있었나 보다. 커피 한 잔을 타서 창가에 다시 섰다. 빗줄기가 약해졌다. 저 아래 아저씨 세 명이 술에 취해 비틀거린다. 토요일. 그래서 한껏 마셨나 보다. 이미 충분히 취한 것 같은데, 그냥 집으로 들어갈 것 같지 않다. 아무렴. 한 잔 더 해야지.
술 끊은지도 6년째다. 시간이 무섭다. 술 생각이 나질 않는다. 기름진 안주에, 주변 사람들 거나하게 한 잔씩 들이키는데도 나는 영 땡기지 않는다. 술맛을 잃어버린 건지, 끊은 세월이 아까운 건지, 이미 남들 평생 마실 만큼의 양을 다 마신 탓인지.
시간은 많은 걸 풀어내준다. 이럴 줄 알았으면, 그때 나한테 좀 잘해줄 걸. 그렇게까지 모질게 퍼부으며 한강에 뛰어들고, 천장에 목을 달고, 수면제를 털어넣고, 농약까지 마시는 어리석은 짓을, 하지 말 것을 그랬다. 이럴 줄 알았으면.
당장은 곧 죽을 것처럼 괴롭다. 시련과 고난은 그 한가운데에서 사람의 눈과 귀를 멀게 한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게 만들고, 아무것도 들리지 않게 막는다. 지금 당장보다는 앞으로 남은 인생이 훨씬 길고, 또 마주해야 할 일도 훨씬 많다는 사실을, 보지도 듣지도 못하게 한다.
고난을 겪고 있는 사람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숨을 크게 쉬는 거다. 깊이 들이마시고 길게 내뿜어야 한다. 그래야 견디고 버틸 수 있다. 시간에 나를 맡기는 것이 한편으로는 대책없는 낙관주의처럼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살아 보니 그보다 현명한 방법이 또 없다는 걸 알게 되었다.
아무것도 하지 말란 소리가 아니다.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하고, 할 수 없는 일은 흘려보낸다. 그런 하루하루를 보내면서 시간의 힘을 더 얹는다. 이보다 지혜로운 삶의 방식이 또 있을까. 빨리 해결해야 한다는 조급함이, 나에겐 이런 일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는 강박이 스스로를 힘들게 하는 것.
도저히 사그라들 것 같지 않던 아픔도 비와 함께 사라져간다. 날이 맑으면 두렵고, 비가 세차게 퍼부으면 안심이 되는, 그 힘들었던 트라우마도 이제 옅어져 간다. 도대체 무엇을 어떻게 하면서 살아가야 하나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던 막막했던 삶도, 이제 자리를 잡고 마케팅과 브랜딩을 신경 써야 하는 평범한 인생으로 자리잡았다.
삶은 좋아진다. 노력한 만큼 달라진다. 그러니, 힘들고 어려운 순간 닥쳤다 하여 포기하거나 절망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내 인생에서, 아무런 희망 없다는 이유로 그저 죽음만 생각했던 시절이 가장 안타깝고, 그 시절의 나 자신에게 제일 미안하다.
이렇게 비가 물러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는 때가 다시 올 거란 사실을 미리 알았더라면, 그토록 힘 없이 무너지지는 않았을 텐데. 그래서 나는, 좌절과 절망으로 사는 게 힘들다는 사람 만날 때마다, 반드시 좋은 날 올 테니 아무 염려 말고 "오늘을 최선을 다해 살라"라고 감히 조언하는 것이다.
남은 삶에서 또 어떤 일이 얼마나 힘들고 어렵게 펼쳐질지 나는 알지 못한다. 허나, 힘 한 번 못 써 보고 털썩 주저앉는 일은 결단코 없을 거라 확신한다. 나는 끝까지 싸울 것이다. 시간이 내 편이란 사실을 알기 때문이고, 나에게 잠재력과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며, 삶이 내게 주는 건 아픔이 아니라 경험이란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영원한 것은 없다. 상처와 아픔도, 기쁨과 즐거움도, 모두 한 순간에 불과하다. 우리는 그 한 순간 때문에 곧 죽을 듯 괴로워하거나 좋아서 방방 뜬다. 글 쓰고 책 읽으며 마음 차분해진 덕분에, 항로를 벗어나는 내 감정을 정상 궤도로 돌리는 데 익숙해졌다.
비가 오면 빚 독촉이 줄어든다는 이유로 비를 좋아했었다. 비 때문에 삶의 터전을 잃은 사람들 심정을 짐작조차 하기 힘들다. 이제 나는, 비가 그만 왔으면 좋겠다.
여기까지 오고 보니, 인생이 제법 따뜻한 기운도 품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힘든 사람들의 삶이 좋아지길, 시간이 조금만 애써주길 빌어 본다.
지금 행복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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