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많아지면 고생도 늘어난다

초보 작가 마감 효과

by 글장이


글 한 편 쓰는 데 5시간 걸린 적 있습니다. 비슷한 분량의 글을 30분만에 쓴 적도 있습니다. 두 편의 글을 비교해 보면, 어느 것이 월등히 낫다는 판단을 하기가 애매합니다. 둘 다 비슷한 수준입니다. 결론은, 5시간 걸려 쓴 글은 4시간 30분 더 고생했다는 것이죠.


물론, 글쓰기 실력이 탁월한 거장들의 경우는 조금 다릅니다. 그들은 투자하는 시간 만큼 글의 완성도가 높아질 겁니다. 그 만큼 숙고하고 번뇌하고 깊이 생각할 테니까 말이죠.


우리는 초보 작가입니다. 숙고? 번뇌? 글쎄요. 그런 정도의 깊이 있는 생각을 하기엔 아직 많이 부족합니다. 우린 그저 분량을 채우고, 문맥에 따라, 메시지를 정리하는 정도입니다. 시간 오래 끈다고 해서 월등히 더 좋은 글을 쓸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초보 작가 중에는, 글 한 편 쓰는 데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린다며 하소연하는 경우 종종 있습니다. 세 가지 이유 때문입니다. 첫째, 잘 쓰려는 강박 때문이고요. 둘째, 완벽주의 성향 때문입니다. 셋째, 메모하지 않는 탓입니다.


첫 번째 이유부터 살펴보겠습니다. 초고는 쓰레기라고 아무리 강조해도, 잘 써야 한다는 생각을 내려놓지 못하는 것이죠. 자신의 성향 탓일 수도 있지만, 다른 사람들이 자신의 글을 좋게 봐주어야만 한다는 강박일 수도 있습니다.


글을 잘 쓰고 싶다면 공부를 하고 연습을 해야 합니다. 공부도 연습도 게을리하면서, 책 집필에만 매달린다 하여 글을 잘 쓸 수 있는 게 아닙니다. 괜한 시간만 붙잡고 늘어져 낭비하고, 글 수준은 크게 늘지도 않습니다. 단호하게 멈추고, 잘 쓰려는 강박 내려놓고, 정해진 분량만 딱 채운 뒤에 퇴고를 계획하며 펜을 놓아야 합니다.


둘째, 완벽주의 성향인데요. 초고를 집필할 때는 계속 밀어붙이는 힘이 필요합니다. 이미 쓴 문장을 자꾸 되풀이해서 읽고 고치고, 또 조금 쓰다가 이미 쓴 문장 고치고, 이렇게 하면 진도 절대 못 나갑니다.


더 중요한 것은, 초고 집필간 아무리 고치고 다듬어도, 결국 퇴고할 때 싹 다 다시 수정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초고의 목적은 분량 채우기입니다. 문장의 완성도를 높여야 한다는 생각으로 자꾸만 고치기를 반복하면, 글의 맥락만 엉망진창 될 뿐입니다.


초고는 대충 쓰는 글입니다. 완벽주의란 완벽한 게 아니지요. 완벽하지 못한데 완벽하기 위해 애쓰는 걸 완벽주의라 합니다.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강박이란 뜻입니다. 지금 당장 완벽주의 내려놓고, 다음 문장, 그리고 또 다음 문장을 쓰길 바랍니다.


글 한 편 쓰는 데 시간 많이 걸리는 세 번째 이유는, 메모를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한 편의 글 적정 분량은 A4용지 1.5매, 원고지로 약 12매 분량입니다. 결코 적은 양이 아니지요. 초보 작가가 이 정도 분량의 글을 '머리로만' 쓰겠다는 건 엄청난 자만입니다.


어떤 내용을 어떤 구성으로 어떻게 쓸 것인가. 빈 종이에 낙서하고 메모한 후, 그걸 보면서 써야 가닥이 흔들리지 않습니다. 맨땅에 헤딩하면서 머리로만 쥐어짜려니 당연히 시간 오래 걸리지요.


어떤 글을 쓸 것인가 전체 스케치도 없이 무작정 색칠부터 하려고 들면 막막하고 어려울 수밖에 없습니다. 작가는 한 마디로 메모하는 사람입니다. 메모와 낙서 등 기록을 습관화하면, 글 쓰는 시간 대폭 줄일 수 있습니다.


영국의 역사학자 시릴 파킨슨은 "작업에 쓸 수 있는 시간이 많아지면 작업에 드는 수고도 함께 늘어난다"라고 했습니다. 오래 붙잡고 있으면 글도 더 좋아질 것 같지만, 고생만 더 많이 할 뿐 글의 질은 크게 달라지지 않습니다. 아직 초보 작가인 탓입니다.


현명하고 지혜롭게 글 쓸 줄 알아야 합니다. 시간 딱 정해놓고, 평소 메모한 걸 보면서, 옆도 뒤도 돌아보지 말고 분량만 채웁니다. 이것이 초보 작가의 초고 쓰는 비법입니다.


승부는 언제나 퇴고에서 내야 합니다. 시간, 정성, 노력, 애, 스트레스, 고생, 수고.... 전부 퇴고 작업에 해당하는 단어들입니다. 초고 쓰면서 이런 걸 미리 당겨 고생한다 해서 퇴고가 편해지는 게 아닙니다. 초고는 초고 쓰는 요령으로, 퇴고는 퇴고에 맞는 정성으로, 그렇게 글을 써야 합니다.


글 한 편 쓰는 데 시간 많이 소모할수록, 점점 글 쓰기가 싫어집니다. 시간을 딱 정해두고, 반드시 그 시간 안에 끝내겠다는 작정으로. 초보 작가에게 '마감 효과'는 꼭 필요한 수단입니다.


지금 행복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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