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에 깃든 철학과 가치관과 신념 그대로
"강의를 이러저러하게 해야 한다"라고, 제게 조언을 건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물론, 그들은 저를 마음 깊이 응원하고 위하는 사람들이겠지요. 하지만 저는, 그들의 조언을 귀담아 듣지 않습니다. 적어도 그들은 지금 "강의하는" 사람들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글쓰기도 마찬가지입니다. 때로 저한테, "저도 글 많이 써 보았는데요. 대표님 말씀하시는 것과 달리, 글은 이러저러하게 쓰는 편이 낫습니다."라고 자기 의견을 내세우는 사람 있습니다. 그의 의견이 잘못된 것은 아니겠지만, 저는 그 의견을 묵살하는 편입니다. 그가 지금, 글을 쓰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는 건 이러하고, 세상은 저러하며, 인생은 이러하다, 자기 나름의 원칙과 신념을 가진 듯 주장을 펼치는 사람들 있습니다. 그들 중에는, 자기 삶을 귀하게 여기며 치열하게 살아가는 이도 있지만, 전혀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습니다. 때와 장소에 따라, 같이 어울리는 사람들에 따라 매번 말이 달라지는 사람들. 저는 그런 사람들의 말에 무게를 두지 않습니다.
돌아가신 고모를 떠올릴 때마다, 저는 가식적인 친절보다 진실이 훨씬 중요하다는 사실을 생각하게 됩니다. 고모는 아버지나 혹은 집안 어른이 함께 하는 자리에서는 나긋나긋 목소리부터 달라집니다. 그러다가, 만만한 조카들 앞에서는 앙칼지고 못된(?) 목소리로 바뀝니다.
고모는, 어른들 앞에서는 "돈이 다가 아니다"라고 말합니다. 조카들 앞에서는 "인생, 돈이 전부다"라고 강조합니다. 우리 조카들 앞에서는 "공부보다 사람이 먼저 되어야 한다"라고 말하면서, 당신 자식들한테는 무조건 서울에 있는 대학에 가야 한다고 못을 박습니다.
고모는, 집안 어른들 앞에서는 어머니한테 참 잘했습니다. 그러나, 뒤로 돌아서서는 어머니를 못 잡아먹어 안달이었습니다. 차라리 있는 데서나 없는 데서나 아주 독한 고모였다면, 저는 고모를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사랑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고모 장례식 때, 우는 사람 한 명도 없었습니다. 일부러 제가 둘러보며 찾을 지경이었습니다. 혹시 조금이라도 눈물 흘리는 사람 없나 하고 말이죠. 평생을 가식적인 친절과 내면의 진짜 모습 사이에서 왔다 갔다 하면서 살았던 고모는, 그렇게 쓸쓸하게 생을 마감했습니다.
회사에 다니던 시절, 저는 과장이나 팀장이 저한테 회사에 충성해야 한다고 강요하는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그냥 제 생각 대로, 제 마음 가는 대로 일하겠다고 답변했다가 아주 찍혀가지고 회상생활 내내 곤혹을 치뤘습니다.
지금도 변함 없습니다. 사람은 자기 안에 어떤 생각과 철학과 가치관과 신념을 가지고 있게 마련인데요. 저는 그것을 오직 진실이라 믿습니다. 힘 있는 사람들 앞에서는 아닌 척 세상 친절하게 굴다가, 소주 한 잔 마시는 자리에서는 온갖 험담과 욕설을 퍼붓는 그런 삶이, 저는 싫습니다.
몇 달 전에 자이언트 나간 작가 있습니다. 겉으로는 저한테 찐팬을 자처하고, 제가 하는 모든 강의와 제가 쓴 모든 글을 좋아하는 척 온갖 수식어를 동원해 저를 '찬양'했던 사람인데요. 뒤에서는 저에 관한 험담을 마구 퍼트리고 다니다가 결국은 딱 걸렸지요.
저는 그 사람한테 나가란 소리 한 마디도 하지 않았지만, 그런 지경에서 본인도 뻔뻔하게 계속 머무를 수는 없었을 겁니다. 강의도 듣는둥 마는둥 하더니, 결국은 사라졌습니다.
자기 안에 전혀 다른 생각이 있는데, 세상과 인생이 정해준 어떤 틀이 있다고 생각하며 그에 맞추려고 애쓸수록 인생은 허무하고 불행해집니다. 설령, 자기 안에 품은 생각이 다소 날카롭고 다른 사람들의 그것과 다르다 하더라도, 사람은 자기 생각과 주관 대로 살아야 마땅합니다.
물론, 개인의 생각이나 주관이 법에 저촉되거나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일으키는 거라면 전혀 다른 차원의 이야기가 되겠지요. 하지만, 그런 정도가 아니라면, 자기 소신껏 살아가는 태도야말로 행복의 지름길이라 하겠습니다.
이번 조국 혁신당 성 비위 사건만 봐도 그렇습니다. 전반적인 분위기, 나만 참으면 된다는 생각, 어떻게든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 보려는 기대. '나' 자신이 가지고 있는 당장의 생각과 어긋난다면, 그 즉시 불을 뿜어내야 마땅합니다. 늦게나마 진실이 세상에 알려져 다행입니다만, 그 동안 피해자들이 속 끓이며 참고 눈물 쏟았을 걸 생각하면 가슴이 아픕니다.
문제는 얼마든지 있을 수 있습니다. 사람 사는 세상이니 사고도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습니다. 예방하고 대처하는 것이 중요하지만, 이미 일어난 사고에 대해서는 신속히 처리하는 것이 훨씬 중요합니다. 어떤 사건에 대처하는 자세를 보면, 그 사람의 인간성이나 인물됨을 판단할 수 있습니다.
사회 도덕적 잣대, 함께 하는 사람들의 분위기, 관례적인 태도, 전통과 역사에 따라 말하고 행동하는 모든 순간들. 겉으로는 그럴 듯해 보일지 모르겠지만, 자기 신념과 다른데도 꾹꾹 참아가며 가식적인 친절을 베푸는 것이 과연 올바른 태도인가 생각해 봐야 합니다.
돈 되는 글쓰기? 팔리는 책쓰기? 작가와 강연가로 10년 넘게 일해왔지만, 아직도 저는 저 말들을 받아들이기 힘듭니다. 도저히 용납이 되지 않는 거지요. 현실적으로 많은 사람이 돈 되고 팔리는 글과 책을 바란다 하여, 가식적인 친절을 베풀며 강의 방식을 바꿀 생각 추호도 없습니다. 앞으로도 저는 오직 저만의 진실을 추구하며 글 쓰고 강의할 겁니다.
사람마다 자기 안에 어떤 진실이 잠들어 있다고 저는 믿습니다. 다만, 열심히 살다 보니 때로 속마음 숨긴 채 겉으로 웃고 박수 쳐야 하는 상황이 많이 생긴 거겠지요. 이것이 스트레스의 원인입니다. 아무 문제 없이 잘사는 것처럼 보이지만, 속을 곪아 터지는 겁니다.
먼저 해야 할 일은, 내 안에 어떤 신념과 철학과 가치관이 내재되어 있는가 자신을 알아가는 일입니다. 내가 나로써 살아가기 위해 꼭 필요한 과정입니다. 우리 모두는 서로 다릅니다. 외모도 다르지만, 각자의 생각도 모두 다릅니다.
내가 가진 생각을 말하고, 내가 가진 신념 대로 행동하고, 내가 가진 가치관 대로 살아갈 때, 비로소 진정한 삶이라 할 수 있겠지요. 남들한테 잘 보이기 위해 자신을 감추고 가식적인 친절 베풀며 살아가는 인생이 뭐 그리 대단하겠습니까.
어색하고 불편한 분위기를 이기지 못해 자기 뜻과는 다른 말과 행동을 일삼고 가식적인 친절을 베푸는 것은, 일시적인 만족감 외에 아무것도 아닙니다. 진정한 나의 생각이 무엇인가. 여기에 집중해야 합니다.
소신 대로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각자의 목소리를 내는 것이 어렵고 힘든 사회라면, 아무리 좋은 제도 많이 만든다 한들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가식적인 친절은 사람을 피곤하고 지치게 만듭니다. 경험과 논리와 근거를 갖고, 자기만의 철학과 신념 대로 당당하게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지금 행복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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