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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에 그물을 던지듯, 예측 불가한 보물

원고지는 텃밭이 아니라 심해다

by 글장이


"글감 찾는 법"이라는 제목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서론 부분을 쓰다가, "매일 꾸준히 글 쓰는 연습을 해야 글감이 마르지 않는다"라는 문장을 쓰게 됐습니다. 문득, 글감 찾는 방법보다 더 중요한 것이 매일 쓰는 습관을 들이는 거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결국, 제가 쓴 글은 "매일 글 쓰는 습관 만들기"라는 주제로 바뀌었습니다. 글감 찾는 법에 관해서는 다음 날 다시 썼습니다. 내가 쓰는 글이지만, 어떤 글이 나올지는 예측할 수 없습니다.


글감 찾는 법에 관해 쓰려고 하다가 습관 만드는 방법으로 내용이 바뀌었지만, 바뀐 내용의 글이 훨씬 마음에 들었습니다. 물론, 다음 날 쓴 글감 찾는 법이라는 주제의 글도 한결 깊이가 있었고요. 전날 충분히 생각을 해 둔 덕분입니다.


많은 사람이 글쓰기를 씨앗에 비유합니다. 작은 씨앗을 땅에 묻어두면, 크고 아름다운 나무와 열매를 만날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씨앗 속에 무궁한 가능성이 있으니, 처음 시작할 때는 씨앗의 크기에 연연하지 말라는 의미도 담겨 있겠지요.


하지만 저는, 글쓰기가 씨앗보다는 그물에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씨앗은 적어도 어떤 나무 어떤 열매가 나올지 예측 가능하지요. 반면, 깊은 바다에 그물을 던지는 행위는 어떤 고기들이 잡힐지 예상할 수 없습니다.


하얀 종이에 첫 줄을 쓰고 나면, 이후로 대략 어떤 글을 펼칠 것인가 감이 잡히곤 하는데요. 그렇게 계속 쓰다 보면, 어느새 글의 방향이 전혀 다른 곳으로 흘러갈 때도 많습니다. 시작 전에 했던 생각과 다른 방향의 글이 나온다 해서 잘못된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더 멋지고 깊고 마땅한 글이 나올 때가 많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다 알고 쓰면 편하겠다고 말하는 초보 작가도 있습니다. 허나, 10년 넘게 매일 글을 써 본 제 경험에 비춰보자면, 결말이 어디로 튈지 모르는 상황에서 글을 쓰는 행위가 훨씬 매력적입니다.


"생각이 먼저이고, 쓰는 행위가 나중"이라고 믿는 사람 많습니다. 틀린 건 아닙니다. 그러나 저는, "생각, 쓰기, 다시 생각, 다시 쓰기"라는 순서가 더 옳다고 봅니다.


하나의 생각이 줄기를 뻗고 탄탄하게 이어지면 좋겠지만, 그런 경우는 드뭅니다. 특히, 초보 작가의 경우에는 자신의 생각이 어떠한지 스스로도 모르는 때가 많거든요. 그러니, 일단 쓰기 시작한 다음, 생각이 뻗어나가는 대로 자유롭게 방향을 잡다가, 어느 정도 줄기가 잡히면 다시 수정해서 쓰는 것이 마땅합니다.


생각이 글을 만들지만, 쓰는 행위가 생각을 만들기도 합니다. 일단 그물을 던지고, 어떤 고기가 잡히는가 확인한 후, 다시 그물을 던지는, 이와 같은 과정을 반복하는 것이 글쓰기 아니겠습니까.


처음부터 완벽한 상태에서 글을 쓰려고 하는 습관을 버려야 합니다. 아이디어 하나가 떠올랐다 하여, 그 아이디어를 끝까지 어떻게 펼치겠다 모든 구상을 마친 후에야 글을 쓰기 시작하겠다는 사람 적지 않은데요.


이것은 멀리 조업 나가는 초보 낚시꾼이 오늘은 정확히 어떤 고기를 몇 마리 잡을 것인가 예상하고 나간다는 말이나 다를 바가 없습니다. 베테랑 선장이야 대략 어디쯤 가면 어떤 어류를 잡을 수 있다 잘 알겠지만, 초보 낚시꾼이 그런 걸 어떻게 확신할 수 있겠습니까. 일단 그물부터 던지고, 잡히는 고기 하나하나 정성껏 챙기는 편이 초보 낚시꾼 입장에서 훨씬 이득입니다.


잘쓰고 싶다는 생각, 완벽하게 쓰겠다는 강박이 그물 던지는 행위를 막습니다. 가벼운 마음으로, 오늘은 또 어떤 보물이 잡힐 것인가 설레는 심정으로, '그물을 던지는 행위' 자체를 즐길 수 있어야 합니다.


어떤 인생을 살게 될 것인가 아무도 예측할 수 없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하루하루 잘 살아낼 수 있습니다. 글쓰기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글이 어떻게 흘러나올지 모르지만, 하루하루 정성껏 쓰다 보면, 결국은 참한 글을 만나게 되는 것이지요.


오늘 하루 최선을 다하고, 지금 쓰는 글에 정성을 다하고, 그렇게 모든 순간에 자신을 바칠 수 있다면, 완벽하지 않아도 충분히 훌륭한 삶과 글을 빚어낼 수 있다고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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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부지런히 그물을 던집니다. 어떤 고기가 잡힐지 알 수 없지만, 무엇이 잡혀도 제겐 보물입니다. 예측할 수 없는 보물을 만나는 기쁨. 많은 이들에게 글쓰기가 조금은 가벼워졌으면 좋겠습니다.


지금 행복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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