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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척'할 수 있습니다

좋은 척, 기쁜 척, 행복한 척

by 글장이


몰래 카메라다. 친구를 속이기로 했다. 내가 아주 많이 화가 나 있는 것처럼. 실제로는 하나도 화 나지 않았지만, 친구를 속이는 게임이라서 얼마든지 폭발한 것처럼 쇼를 할 수가 있다.


반대로도 가능하다. 실제로는 화가 많이 나 있지만, 사랑스러운 자녀나 중요한 미팅에서는 하나도 화 나지 않은 것처럼 자연스럽게 웃을 수 있다. 이건 나만 가능한 일이 아니다. 세상 사람 모두 할 수 있다.


오래 전, 회사에 다닐 때 있었던 일이다. 기분 울적하고 속상하고 풀이 죽어 있을 때, 직장 상사들 앞에서 프레젠테이션 발표했다. 그들 중 누구도 내 기분을 눈치채지 못했다. 당연하다. 시종일관 유쾌한 목소리로 환하게 웃고 있었으니까.


다른 동물에게는 없는, 오직 인간만이 가진 독특한 능력이다. '척'하는 건 일종의 쇼이기도 하고, 엄밀히 말하면 거짓이기도 하며, 남을 속이는 행위이기도 하다. 그런데, 나는 이 '척'을 통해 인생을 통째로 바꾸었다.


사업 실패 후 파산하고 감옥에 갔다. 그때의 심정은 백만 번을 말해도 익숙해지지 않는다. 참혹했다. 최악이었다. 앞으로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했다. 우연히 글쓰기를 만났다. 글을 쓰고, 작가와 강연가로 살아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됐다.


문제는, 내 상황이 그야말로 최악이라서 어떤 주제로 글을 써도 '비난, 비하, 저주, 불평, 불만' 따위밖에 나오질 않는 거였다. 어느 책에서, 글은 솔직하게 써야 하는 거라고 배웠다. 계속 솔직하게 쓰다간 세상에서 가장 부정적인 책이 되고 말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처음으로 '척'하기 시작했다. 적어도 글을 쓸 때만큼은 세상 가장 행복한 사람이 되기로. 글을 쓰는 동안에는 토니 라빈스처럼 열정 가득한 사람인 척. 글을 쓰는 동안에는 다산 정약용처럼 반듯하고 우직한 선비인 것처럼.


그냥 대충 흉내만 내는 정도가 아니라, 내가 정말로 토니 라빈스가 된 것처럼, 내가 정말로 다산 정약용이 된 것처럼 연기했다. 감옥이라서 가능했다. 나를 알아보는 이가 한 명도 없었으니까. 그 쇼는 손발이 오그라들 지경이었고, 매번 얼굴이 시뻘게지곤 했었다.


포기하지 않았다. 어쨌든 글은 좋아지기 시작했으니까. 마치 거대한 무대 위에 서서 수많은 청중들에게 인생의 조언을 건네는 세계 최고의 동기부여 연설가인 척 글을 썼다. 철학과 신념으로 흔들리지 않는, 최고의 지성인인 것처럼 글을 썼다. 백지는 나의 '척'하는 행동을 쇼인 줄도 모른 채 싹 다 받아주었다.


처음에는 '척'하는 것에 대한 죄책감도 없지 않았다. 내가 뭔데. 사업 실패하고 파산하고 전과자 된 주제에, 무슨 동기부여 연설가에 지성인인가 말이다. 그런 내가 글을 쓰고 책을 낸다고? 괜히 세상 웃음거리 되지 말고 그냥 접자.


하루에도 이런 생각 골백 번도 더 했었다. 그럼에도 계속 밀어붙였던 것은, 아직 내 삶이 남아 있기 때문이었다. 뭐라도 해야 하는데, 그 안에서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으니 글이라도 써야겠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먹고는 살아야 하니까.


이후로 독하게 더 '척'했다. 힘들고 어려운 사람들에게 용기 내라고 글을 썼고, 나 같은 사람도 글 쓰며 살고 있으니 당신도 글을 쓰라고 강조했다. 그 안에서 나는, '죄수'가 아니라 세계 최고의 동기부여 연설가이자 지성인이었다. '척'의 효과였다.


출소 후에는 막노동을 하면서 살았다. 약 3년간 삽질했다. 죽는 줄 알았다. 숨이 컥컥 막혔다. 막노동 현장은 얍삽하게 요리조리 요령 부릴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잘못 보이면 바로 다음 날부터 일거리가 끊어진다. 석면가루 뒤집어써 가면서 돼지 시체 치우면서, 그렇게 나는 죽기살기로 일했다.


대신 집에 돌아오면, 즉시 '척' 모드로 바꾸었다. 나는 작가였고 강연가였다. 허리 끊어질 듯 아파도 바닥에 쪼그리고 앉아 글을 썼다. 새벽 4시에 일어나 두 시간 글 쓰고 일 나갔다. 글 쓰는 동안에는 여전히 웃는 척을 했고, 기분 좋은 척을 했으며, 행복한 척을 했다.


시간이 꽤 흘렀다. 헷갈렸다. 내가 '척'을 하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정말로 기쁘고 행복한 것인지. 묘한 혼란은 나를 더 당당하게 만들었다. 2016년 2월, 첫 책을 출간했다. 같은 해 5월, 처음으로 강의 무대에 섰다. '척'하면서 살다가, 참말로 그런 인생을 만난 거다.


10년도 더 지났다. 나는 지금도 매 순간 '척'하면서 살고 있다. 이제는 그것이 '척'인지 진짜 내 모습인지 분간하기 힘들지만, 그런 건 하나도 중요하지 않다. 덕분에 내가 좋아졌고, 내 삶이 나아졌다.


주목해야 할 사실이 한 가지 있다. 어떤 경우에도 '나쁜 척'은 하지 말아야 한다. 무조건 '좋은 척'만 하면서 살아야 한다. 기분 좋은 척, 행복한 척, 무슨 기쁜 일 있는 척, 글 쓰는 게 너무 좋은 척, 강의하는 게 세상 최고로 좋은 척, 음식은 무조건 맛있는 척, 사람은 무조건 위하는 척....


'척'은 가식이고 거짓이고 위선일까? 글쎄다. '척'의 목적이 누군가를 속이고 이득을 취하는 것이라면 그렇게 볼 수도 있겠다. 하지만, 나 자신의 부정적 성향을 가리기 위한 '척'이라면 아무 해 될 것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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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 시간에 수강생들 표정을 보면, 다들 심각하고 어둡다. 수십 년 지어온 표정을 하루아침에 바꾸는 건 불가능하다. 나는 그들이 적극적으로 '웃는 척'을 했으면 좋겠다. 그러면 진짜로 웃을 일 많은 인생이 될 거다.


지금 행복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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