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탕국과 꾀돌이, 아쉬울 때가 가장 맛있다

무엇이 필요한가

by 글장이


오늘 제사다. 밤 12시에 지낸다. 제사 관련해서는 모든 것이 못마땅하다. 시간, 음식 준비, 돈 씀씀이 등 합리적인 게 하나도 없다. 옛날에는 그래도 후손의 도리라도 생각했으나, 이제는 모든 것이 사치이고 허례허식인 듯하다.


그 와중에도 한 가지, 제사 때를 기다리게 만드는 것이 있다. 탕국이다. 나와 아들은 그 맛에 취해 있다. 일 년에 딱 네 번 먹을 수 있다. 설, 추석, 그리고 제사 두 번.


아무 때나 끓여 먹으면 되지 않나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게 또 마땅찮다. 제사도 아닌데 굳이 탕국을 끓여야 하냐고 어머니가 싫은 내색을 하시고, 또 나도 제사 때 먹어야 제맛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탕국이 맛있는 이유는, 고기와 무우가 어우러진 맑고 시원하면서도 담백한 맛일 테지. 하지만, 더 큰 이유는 따로 있다. 일 년에 네 번밖에 먹지 않기 때문이다.


사시사철 아무 때나 먹을 수 있는 맛이었다면, 지금껏 이토록 탕국을 좋아했을 리 없다. 입맛이 변할 수도 있고, 지겨울 수도 있고, 너무 흔해서 입이 싫증을 낼 수도 있다.


일 년에 딱 네 번. 명절과 제사 때만 먹기 때문에 그 맛이 여전히 내게 황홀한 거다. 혹여 더 자주 먹을 기회가 생긴다 해도 거부할 작정이다. 나는 지금 내가 이토록 탕국을 좋아하는 마음을 영원히 유지하고 싶다.


마트에 들렀다가 우연히 '꾀돌이'를 만났다. 중학교 다닐 적에, 수업 시간에 친구들과 몰래 돌려 먹던 콩알 만한 과자다. 아삭거리는 식감도 좋았고, 달짝지끈한 맛도 일품이었다. 선생님 눈치 봐 가며 깨무는 소리 내지 않으려고 억지로 빨아 먹던 그 시절 추억이 새롭다.


얼른 한 봉지 샀다. 사무실에 들고 와서 그 시절 추억의 맛을 기대하며 한 입 털어넣었다. 우걱우걱 씹으면서 십대 시절을 떠올렸다. 예상은 빗나갔다. 맛이 별로다.


그 작은 알갱이 하나를 입에 넣고, 소리를 감추려 애쓰면서 살살 씹어먹어야 제맛이었다. 양이 많고, 눈치 볼 것도 없이, 그냥 한 입에 털어넣은 '꾀돌이'는 예전 그 맛이 전혀 아니었다.


희소성의 원칙. 가치는 '부족하고, 적고, 없고, 귀할 때' 높아진다. 풍요로운 삶에서 작은 것의 가치를 느끼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무엇이든 살 수 있고 무엇이든 가질 수 있는 인생이라면, 탕국 한 입 먹을 때의 그 황홀경을 어찌 느낄 수 있겠는가.


탕국을 일 년 내내 먹고, '꾀돌이'를 마음껏 입안에 털어넣을 수 있을 때, 우리는 그 소박하고 멋진 '결핍 속 풍요'를 느낄 수가 없다. '먹고 싶지만 당장은 먹을 수가 없다'라는 불편함과 부족함과 아쉬움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 모든 걸 참아내는 순간이 나름 의미와 가치를 가진다.


참고 참고 참다가 한 입을 먹었을 때, 그 때의 맛과 향과 식감은 그 자체로 행복이다. 먹을 게 넘쳐나고, 딱히 특별한 음식이랄 것도 없는 지금 같은 세상에서 아쉬움의 절정에 느끼는 한 입의 행복을 느낄 수가 없다는 사실이 안타깝다.


먹는 것뿐이겠는가. 초등학교 시절에는 '월드컵 운동화' 한 켤레만 사도 세상 다 가진 듯했다. 요즘은 아무리 허름한 차림으로 다니는 사람도 웬만하면 다 '나이키'나 '아디다스' 신고 다닌다.


'쿠팡' 등을 비롯해 온라인으로 물건을 구입할 수 있는 시스템이 완벽해서, 무엇이든 필요한 건 얼마든지 저렴한 가격으로 구매할 수가 있다. 잘못 구입했다 싶으면, 교환하는 것도 아무런 제한이 없다.


교보문고 가면 책도 넘쳐난다. 한 권 겨우 구해서 품에 안고 잠드는 시절은 지났다. 어떤 책도 손쉽게 구할 수 있고, 중고책도, 전자책도, 원하는 대로 손에 넣을 수 있다.


우리는 풍요로운 시대에 살고 있다. 그러나, 마음은 오래 전 결핍의 시대만큼 만족스럽지 못한 것 같다. 무엇이든 가질 수 있는데, 불평과 불만은 아무것도 갖지 못했던 시절보다 더한 듯하다.


아무리 풍요로운 세상이라 해도 내가 가진 돈이 없는데 그게 다 무슨 소용이냐! 이런 말을 하는 사람도 없지는 않을 터다. 아무리 그래도 예전 시절과 비교하면, 우리 일상이 풍족한 건 사실 아닌가.


정리하면 이렇다. 먹고 싶다고 다 먹고, 사고 싶다고 다 사고. 그러지 말잔 얘기다. 당장 먹고 싶은 게 있으면, 그냥 먹고 싶다는 그 마음을 가만히 느껴 본다. 사고 싶은 게 있으면, 간절히 사고 싶은 그 마음을 가만히 지켜 본다. 자기 안에 결핍, 부족, 아쉬움을 충분히 느낀 뒤에 그래도 꼭 원한다면 그 때 가서 사도 늦지 않다. 행복은 열 배로 커질 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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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인생은 기쁨과 벅참과 행복이 가득한 나날이다. 무엇이든 덥썩 물면 그게 행복할 리 없다. 갖고 싶은 걸 갖지 못해서 불행한 게 아니라, 자신에게 정말 필요한 게 무엇인지 모르는 게 불행이다.


지금 행복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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