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귀기울여야 할 것은
독실하게 하나님을 믿는 친구가 있습니다. 그 친구, 참 열심히 교회에 다닙니다. 입만 떼면 자신의 신앙을 이야기하고, 또 주변 사람들에게 교회에 함께 가자고 권유도 합니다. 그런데, 문제가 있습니다. 이 친구는 고집이 세고 이기적이며 지독하게 돈을 밝히고 성격이 괴팍합니다. 욕을 잘하고, 무슨 일만 있으면 트집을 잡아 상대방을 곤혹스럽게 만듭니다.
선한 얼굴로 신앙을 이야기하면서 왜 그렇게 전혀 다른 모습으로 살아가는 것일까 많은 사람이 의문을 갖습니다. 그 친구한테 심하게 모욕을 당한 사람들은 말합니다.
"저렇게 열심히 교회에 나가는 것이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일이구나."
"교회에 다니는 사람은 뭔가 좀 다를 줄 알았는데, 결국은 다 똑같구나."
제 친구 중에는 초등학교 교사도 있습니다. 선생님이 된 지 벌써 20년도 넘었습니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이 적성에 맞다 하고, 또 나름의 철학도 가지고 있어서 누가 봐도 천상 교사라 할 정도입니다.
그런데, 이 친구에게도 문제가 한 가지 있습니다. 술을 퍼마십니다. 그냥 적당히 마시는 게 아니라, 한 번 자리를 잡았다 하면 폭음을 합니다. 예전에 제가 한창 술 마시며 살았을 때조차 이 친구와는 술자리를 갖지 않을 정도였습니다. 같이 마시다가는 죽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주변 사람들은 그 친구를 향해 말합니다. 결국은 술 때문에 인생을 망칠 거라고 말이죠. 심하게는, 아이들까지 술독에 빠트리는 거 아니냐고 비꼬기도 합니다.
글을 쓰고 책을 출간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많은 이들에게 글 쓰는 삶을 전하는 것이지요. 모든 사람이 작가가 되는 그 날을 꿈꿉니다. 소신을 갖고 과정을 운영하고, 최선을 다해 강의합니다. 시간이 갈수록 함께 하는 작가가 점점 더 많아지고 있습니다.
오래 전, 자이언트에 합류해서 같이 글을 쓰다가 등을 돌린 채 떠나간 작가가 한 명 있습니다. 그 사람이 떠날 때 제게 던진 한 마디는 이렇습니다.
"작가들 모임이라 뭔가 다를 줄 알았는데, 다 똑같네요."
아마도 함께 지내던 작가들 사이에서 무슨 문제가 있었던 모양입니다. 저는 그 사람의 마지막 말을 오래도록 곱씹었습니다. 작가들 모임은 무엇이 달라야 하는가. 글 쓰는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등 돌리고 떠난 사람에게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되었지만, 그럼에도 작가라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진 것은 제게 도움이 되었습니다.
신앙을 가진 사람, 가르치는 사람, 그리고 글 쓰는 사람...... 반드시 어떠해야 한다는 틀 속에 집어넣고 평가하는 것은 마땅치 않습니다. 똑같은 사람인데, 신앙을 가졌다는 이유로 무조건 양보할 필요는 없습니다. 교사라고 해서 모든 일을 모범적으로 해야 한다는 강박을 뒤집어씌우는 것도 옳지 않습니다. 작가라고 해서 무조건 타인의 입맛에 맞추며 살아야 하는 것은 아니지요.
직업이라는 이유로 "깨갱"하고 있어야 한다는 논리와 지적질은 결코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각자의 자리에서 나름의 최선을 다하며 살아가는 것이지요. 신앙을 가진 사람이든 아니든, 교사든 아니든, 작가든 아니든, 사람을 대하는 기준은 똑같다고 생각합니다. 자기 기준에서 해석을 용이하게 하기 위해 "좀 다를 줄 알았다"고 하는 것은 결국 비난이자 모욕에 불과한 말입니다.
자, 이제 화살표를 제 자신으로 돌려보겠습니다. 다른 사람이야 나를 향해 무슨 말을 하든, 적어도 제 자신은 부끄럽지 않아야 합니다. 나는 어떤 작가가 될 것인가. 그렇습니다. 바로 이 질문입니다.
작가가 되는 것도 중요하지만, 어떤 작가가 될 것인가 하는 고민과 판단이 훨씬 중요합니다. 글을 쓰면 작가가 됩니다. 하지만 "어떤 작가가 될 것인가"에 대한 답은 결코 쉽게 결정할 수 없습니다.
당신은 누구입니까? 라는 질문에 대답을 해 보면 이렇습니다.
나는 작가입니다.
나는 '사람을 위하는' 작가입니다.
위 2번 예시에서 '사람을 위하는'이라는 부분은 뒤에 나오는 '작가'라는 말을 수식하는 말입니다. 바로 이 수식어가 정체성을 만들지요. '작가가 되겠다'고 하면 글만 쓰면 됩니다. 허나, '사람을 위하는 작가가 되겠다'고 결심하면 글을 쓸 때마다 사람을 떠올리게 됩니다.
다른 사람이 나를 향해 던지는 빈정거림에 꿈틀할 필요 없습니다. 스스로 정체성을 갖고 부끄럽지 않은 존재가 되는 것에만 관심을 기울여야 합니다.
나는 'OOO하는' 신앙인이야.
나는 'OOO하는' 교사야.
나는 'OOO하는' 작가야.
무엇이 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어떤 존재가 되는가"입니다. 수식어를 만들면, 자기도 모르게 삶이 그 수식어를 닮아갑니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다른 사람들이 떠드는 소리가 아니라 자신의 심장소리입니다.
지금 행복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