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하고 생각하고 또 생각하라
해운대 트럼프월드 70평짜리 아파트는 화려했습니다. 현관에서 거실까지 한참(?) 걸렸고, 다섯 개의 방은 넉넉했으며, 거실 한 쪽 통유리 밖으로 푸른 바다가 끝없이 펼쳐졌습니다. 큰외삼촌 내외는 삶의 마지막 장을 근사한 곳에서 보내게 되었습니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제게는 두 가지 생각이 떠올랐지요.
첫째, 부러웠습니다. 나도 큰외삼촌 내외 나이쯤 되면 이런 근사한 곳에서 살 수 있을까. 아니, 꼭 그렇게 살 수 있도록 해야겠다. 결심인지 아닌지 묘한 다짐을 했습니다. 창문 앞에 서서 바다를 바라보니 듬직한 이기대와 수없이 많은 보트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둘째, 공허했습니다. 사람이 모두 빠져나간 후 아흔이 다 된 노부부는 이 넓은 거실에 앉아 무엇을 하며 시간을 보낼까. 웃음소리가 넘치는 트럼프월드는 세상에서 가장 부러운 삶의 공간이었지만, 사람이 없는 70평은 삭막하고 쓸쓸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해운대 트럼프월드는 돈과 부의 상징입니다. 바닷가에 서서 그 빌딩의 위엄을 쳐다보고 있으면, 저런 곳에는 누가 살고 있을까 한 번쯤 생각하게 됩니다. 마냥 부러워하는 사람도 있고, 자신이 부러워하고 있다는 사실을 감추기 위해 마구 깎아내리는 사람도 있고, 아예 관심없는 척 물놀이에만 집중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큰외숙모는 여기도 봐라 저기도 봐라 하면서 당신의 새집을 자랑했습니다. 그 목소리는 신이 났고 설렜고 흥분한 듯했지요. 저는 상기된 큰외숙모의 말에 일일이 장단을 맞추며 멋있다는 감탄을 연발했습니다.
함께 간 셋째 외숙모의 표정은 좋지 않았습니다. 부엌에서 과일을 깎고 음료를 준비했습니다. 같이 가서 좀 앉자고 제가 권했더니, "옛날부터 나는 이 집에 오면 일을 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며 날카로운 말씀으로 대꾸했습니다.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는 오래 전에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그래서, 큰외삼촌댁은 어머니한테 친정이나 다름없었지요. 어머니는, 친정 큰오빠가 노후에 이렇게 좋은 집에서 생을 마감할 수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며 흡족해했습니다.
큰외삼촌은 머리가 좋고 공부도 많이 하신 분입니다. 대학병원 정신과 의사로 일하면서 많은 제자를 키워내기도 했고, 80년대에 이미 TV 출연까지 할 정도였으니 실력도 대단했지요. 어머니는 어느 병원에 갈 때마다 큰외삼촌 이름을 언급했고, 그럴 때마다 담당 의사의 표정은 확 달라지곤 했습니다.
대단하신 외삼촌은 지성과 외모를 두루 갖춘 간호사와 결혼을 했습니다. 두 분은 결혼 후에도 끊임없이 공부를 했고, 권위와 명성은 날이 갈수록 드높아졌지요. 아들 둘에 딸 하나를 두었는데, 큰아들은 건축가가 되었고 둘째아들과 막내딸은 의사가 되었습니다.
아버지는 트럼프월드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풍수를 보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아버지의 이런 모습이 좋습니다. 다들 '좋은 집'과 '좋은 가문'과 '돈'과 '평수'에 대해 말하고 있을 때, 거기에 한치도 휩쓸리지 않고 아버지만의 눈으로 세상을 보는 거지요. 잘 사는 모습 부러워하지도 않고, 그걸 시기하는 사람에 대해서도 한 마디 언급이 없습니다. 그저 방향과 바람과 지형과 위치를 보며 감탄과 아쉬움을 반복할 뿐입니다.
외가 식구들은 아버지한테 함부로 하지 못합니다. 사위라서 그런 게 아니라, 현직에 계실 때 아버지한테 한두 번 도움받지 않은 사람이 없기 때문입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런 것들 모두 청탁이고 불법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당연한 세상이었다고는 하지만, 결코 당당할 수 없는 옛날 얘기입니다.
해운대 바다가 펼쳐진 70평짜리 월드에서 우리는 약 두 시간을 머물렀습니다. 이제 그만 가야겠다고 다들 주섬주섬 가방을 챙기기 시작했지요. 눈만 껌뻑이던 큰외삼촌은 섭섭해하는 기색이 역력했습니다. 다음에 또 와라, 다음에 또 와라, 이 말씀을 몇 번이나 되풀이했습니다.
잘 다녀왔다, 잘 놀았다, 좋았다 등의 단순하고 추상적인 표현으로 글을 채우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어딜 가나 유심히 살피고 깊이 생각하려고 애를 씁니다. 아직은 사유의 힘이 약해서 보고 듣는 것들과 삶을 연결하는 힘이 약합니다. 그러나, 생각하는 시간을 갖는 것만으로도 어떻게 살아야 할지 조금은 알게 되는 듯합니다.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단순한 잣대에서 벗어나, 옳은 것은 옳은 이유가 있고 그른 것은 그른 이유가 있다는 데에까지 생각이 이르게 됩니다. 좋다 나쁘다가 아니라, 좋은 이유와 나쁜 원인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는 것이죠. 아름답다고만 할 게 아니라, 무엇이 어떻게 왜 아름다운가를 짚어볼 수 있습니다.
이런 생각에는 상당한 에너지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뭘 그렇게까지 깊이 생각하고 난리야"라며 손사레를 치곤 하지요. 네, 맞습니다. 별 것도 아닌 일에 생각이 너무 많으면 골치가 아프지요. 하지만, 평소 우리에게 생각하는 시간이 부족하다는 사실도 인정해야 합니다.
지나칠 정도로 즉흥적입니다. 좋아요! 하나면 끝입니다. 왜 좋은지, 어디가 좋은지, 자신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깊이 생각하거나 견해를 밝히는 기회조차 갖질 않습니다. SNS라는 독특하고 편리한 문화 덕분에 세상은 참 살기 좋아졌지만, 그로 인해 우리는 뇌 주름을 잃는 치명적인 피해를 입고 있지요.
좋은 것은 더 좋게 만들어 나아가야 하고, 나쁜 것은 즉각 차단시켜야 합니다. 좋고 나쁨의 명확한 근거나 자신만의 주장을 갖고 있지 못한 탓에, 세상이 좋다 하면 그냥 좋은 줄 알고 세상이 나쁘다 하면 마구 손가락질하는 '휩쓸리는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생각보다 심각합니다. 특히, 강의하러 가서 십대 청소년들한테 "왜?"라는 질문을 던져 보면 답을 제대로 하는 아이가 거의 없을 정도입니다. 오늘 강의 어땠습니까 라고 물으면, 좋았습니다 라는 한 마디가 전부입니다. 이 대답은 별로였습니다 라는 답변과 다를 게 하나도 없지요.
생각하는 힘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일방적 수용 또는 무조건적 반대만 존재합니다. 모든 일에 찬반 투표만 있는 꼴이니까, 자신의 의견과 주장을 내세워 누군가를 설득하고 토론하는 문화와는 점점 거리가 멀어지는 것이죠. 토론만 했다하면 우리편 아니면 적입니다. 이 모든 것이 깊이 생각하는 시간의 부재에서 비롯된 현상입니다.
깊이 생각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는 최고의 도구는 독서와 글쓰기입니다. 책을 읽으며 작가와 대화를 나누는 것이죠. 그리고 자신의 삶을 돌아봅니다. 옳고 그름만 따지는 게 아니라,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화두로 접근하는 겁니다. 정답을 찾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정답을 찾아 나아가는 과정 그 자체입니다.
그 과정이 바로 글쓰기죠. 질문하고 탐구하고, 그래서 자신만의 가치관과 철학이 정립되는 모든 과정을 적는 겁니다. 나름의 논리가 생기고, 그러면서 타인의 생각과 이론을 수용하고 분별하면서 계속 수정 보안하는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바로 이러한 이유로, 이러한 저의 철학 때문에, 저는 철저히 슬로리딩과 문장독서를 추구하며 삶을 담는 글쓰기를 지향하는 것이죠. 독서의 방법도 다양하고 글 쓰는 요령도 천차만별입니다. 어떤 비법을 배우려 발버둥칠 것이 아니라, 자신만의 비법을 만드는 것이 중요합니다.
배워서 남 주자 라는 구호, 이제 익숙하지요? 배워서 남에게 주려면 무엇이 됐든 남에게 줄 만한 뭔가가 있어야 할 것 아니겠습니까. 남에게 나눠주든 자신의 삶을 올곧게 세우든, 우리에게 가장 필요하고 절실한 것은 생각하는 시간입니다. 하나의 화두에 매달려 끝도 없이 파고드는 집념! 보고 듣는 게 있으면, 그에 관한 자신의 생각과 견해를 짚어 보는 시간! 이번 주에는 생각하는 시간을 꼭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지금 행복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