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그리고"라는 접속사의 위력

실체에 주목하기

by 글장이

낯선 번호로부터 문자가 왔습니다. 주차 똑바로 하라는, 다소 불쾌한 내용이었습니다. 얼른 차 키를 챙겨 지하 주차장으로 내려갔습니다. 사람은 온데간데 없고, 제 차도 멀쩡하게 주차되어 있었습니다. 혹시나 해서 이리저리 살폈더니, 한 쪽 주차 라인으로 조금 치우쳐 세워져 있더군요. 아마 제 차 옆에 주차했던 차주가 자기 차에 오르기 불편했던 모양입니다.


무슨 욕설을 날린 것도 아니고, 그나마 점잖게 문자를 보냈구나 싶어 잊기로 했습니다. 제가 주차를 정밀하게 하지 않은 탓이니까요. 집으로 올라와 책상 앞에 앉았는데, 생각이 꼬리를 물기 시작합니다.


차를 똑바로 대라니...... 아주 조금 치우친 것뿐인데, 좋은 말로 문자를 보낼 수도 있는 문제잖아.

이웃을 배려하라니? 내가 배려를 하지 않아서 그런 거야? 주차 엉망으로 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관리실에 얘기하고 불편하지 않게 소통할 수 있는 방법도 많잖아.

지금 이거 나한테 시비 거는 거 아냐? 자기가 불편했으니까 나도 불편해 봐라 이거야?


하루에도 몇 번씩 이런 현상이 일어납니다. 생각이 꼬리를 무는 특성 때문이지요.


"문자가 왔다. 불쾌했다. 주차장에 내려가 보았다. 별 것도 아니다. 짜증이 난다. 왜 이런 문자를 보냈을까? 화가 난다......" 이런 식입니다.


"그리고"라는 접속사는 이럴 때 힘을 발휘합니다.


"문자가 왔다. 그리고 주차장에 내려갔다. 그리고 차를 다시 주차했다. 그리고 집으로 올라왔다."

이것이 전부입니다.


"그리고"라는 접속사는 팩트에 초점을 맞춥니다. 실제 일어난 상황에만 집중하도록 만들기 때문에 감정 개입을 최소화시킬 수 있습니다. 시간이 지나고 나면 별 것도 아니거든요. 괜한 감정으로 에너지를 낭비하고, 쓸데없는 일로 기분만 잡치게 만드는 겁니다.


예시1) 길을 가다 넘어졌다. 재수가 없다. 오늘 하루 안좋은 일이 생기려나 보다. 아침부터 짜증이 난다.

수정1) 길을 가다 넘어졌다. 그리고 다시 일어섰다. 그리고 계속 출근했다.


예시2) 글을 쓴다. 잘 써지지 않는다. 짜증나고 답답하다. 난 왜 글을 못 쓸까? 재능 부족인가? 아기는 왜 또 울고 난리야. 아! 편안하게 쓰고 싶다!

예시2) 글을 쓴다. 그리고 잘 써지지 않는다. 그리고 한 줄 쓴다. 그리고 잠시 멈춘다. 그리고 다시 쓴다.


예시3) 아내가 잔소리를 한다. 난 뭐 할 말이 없어서 가만히 있는 줄 아나. 남편을 이리 무시하니까 애새끼들도 아빠를 무시하는 거 아냐. 참다 못해 소리를 버럭 질렀다. 도저히 못살겠다. 이혼할까?

예시3) 아내가 잔소리를 한다. 그리고 나는 참는다. 그리고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 아내가 또 뭐라고 한다. 그리고 방에 들어갔다.


"그리고"라는 접속사는 사소한 일을 사소하게 볼 수 있도록 만들어줍니다. 감정은 늘 현상을 부풀리게 마련입니다. 직시할 필요가 있지요. 과소평가하는 것도 문제지만, 과대평가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애써 외면할 필요도 없고, 그렇다고 부풀릴 이유도 없습니다. 있는 그대로! 그게 전부지요.


"글을 쓴다. 그리고 강의를 한다."


이것이 제 삶입니다. 어떤 감정도 개입할 필요가 없습니다. 타인의 평가도 중요하지 않고, 의지나 열정도 필요치 않습니다. 삶의 본질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면, 흔들리지 않을 수 있습니다.


여기에 "그리고"라는 접속사가 위력을 발휘하는 것이지요. 무엇을 보고, 무엇을 듣고, 무엇을 했는가. 사소한 일에 감정을 개입시키면 부정적인 방향으로 흐를 우려가 큽니다. 인간의 뇌는 "위험으로부터 나 자신을 보호하는" 것이 주된 임무이기 때문에 모든 감정에 촉을 세우고 예민하게 반응하도록 유도합니다. 지금 세상은 굳이 그럴 필요가 없는 시대지요.


"그리고"를 사용해 보세요. 마음이 한결 편안해집니다.

화면 캡처 2022-08-22 200806.png

"오늘도 글을 썼다. 그리고 책을 읽었다. 그리고 밤 9시부터 초대특강을 진행한다. 그리고 사무실에서 또 글을 쓰고 책을 읽는다. 그리고 시간은 흐른다."


지금 행복하십시오!

책쓰기 수업 명함 신규.jpg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