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들어 죽겠다, 누구를 위한 제사인가

현실적인 타협과 양보가 필요하다

by 글장이


설 전에 제사가 한 번 더 있다. 명절이라 조상님 챙기고, 그 사흘 전에 돌아가신 할머니 기일에 맞춰 또 한 번 절을 올린다.


제삿상 준비하려면 수십만 원에서 백만 원 가까이 돈을 써야 한다. 음식 만들고 상 차리느라 몸이 녹초가 된다. 신경이 곤두서는 탓에 가족간 갈등 생긴다. 11시 넘어야 제사 지내기 때문에 잠도 설친다. 늦은 시간 제사 지내고 음복까지 하느라 속도 탈 난다.


돈 쓰고 몸 상하고 감정 상하고 잠 설치고 속까지 버리는 일. 조상님은 살아 있는 후손들이 이렇게 엉망이 되어가면서까지 올리는 절을 과연 달가워하실까. 아니, 제삿날 우리 집에 한 번 들르기는 하시는 걸까.


나는 한 때 제사가 마땅히 지내야 할 후손의 의무이자 도리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결혼 후 직접 장을 보고 음식을 장만하면서부터 생각이 달라졌다. 이건 너무 '노가다'다.


전통과 예의를 중시하는 어르신들. 도포 두르고 갓 쓰고 어험 기침하며 엄중한 자태로 절하는 사람들. 그들은 손에 물 한 방울 묻히지 않고 오직 조상을 섬기는 마음만으로 제사를 지낸다.


그들은 돌아가신 조상님 모시는 데에는 한 치의 양보도 없으면서, 정작 부엌에서 손이 부르트도록 음식을 장만하고 제사를 준비하는 살아 있는 가족은 전혀 챙기질 않는 것이다.


돌아가신 조상을 모시는 건 후손으로서 당연한 일이고, 또한 마땅한 예의이자 태도라고 생각한다. 허나, 아무리 예의와 정성이 중하다 하더라도 정도 문제다.


다 먹지도 못할 음식을 그릇 넘치도록 담기 위해 사들이는 건 낭비다. 음식 장만하느라 종일 뼈빠지게 일하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지 않는 태도는 과연 예의이고 정성인가. 귀신은 밤 11시 넘어서 온다는데, 정말로 그런 거라면 귀신한테 좀 일찍 오라고 하면 안 되는 것인가.


과거 못 살던 시절에 아버지는 당신의 부모께 제대로 정성을 들이질 못했다. 그래서, 돌아가신 후에 가슴에 한이 맺혀 제사라도 옳게 지내야겠다는 마음으로 지금껏 모셔 온 거다. 그런 마음 모르는 바 아니다. 다만, 살아 있는 가족이 너무 고생을 하니까 그것도 좀 알아주셨으면 하는 바람인 거다.


사람이 죽으면 과연 영혼이란 게 존재하는 것일까. 제삿상을 차려놓으면 정말로 와서 한 점 먹기라도 하는 것인가. 그런 거라면, 결국 사람은 죽어서도 물질 세상의 미련과 집착을 버리지 못한다는 얘긴데.


일 년에 한 번 제삿상 받아먹고, 명절 포함하면 기껏 서너 번 제삿밥 먹는 것인데, 그걸로 일 년을 어찌 버티는지. 차라리 그럴 거면 매일 하루 세 끼 밥 먹을 때마다 빈 자리 하나 만들어서 밥과 국과 수저 놓아야 마땅한 게 아닐까.


2년 전에 무너진 척추와 신경이 아직도 회복되지 않았다. 며칠 전에는 노로바이러스에 감염되고 장염까지 겹쳐 탈수에 빈혈에 정신줄 놓기에 이르렀다. 제삿장 보고 음식 장만하느라 혼이 빠질 지경이다. 이렇게 정성 들여 모시는데, 왜 조상님들은 나를 못 잡아먹어서 안달인가.


아버지 뜻에 따르면서 어머니와 아내 비위 맞춰야 하고, 거기다 내 몸까지 챙겨야 하고, 음식 장만까지 해야 하니 몸이 열 개라도 부족할 지경이다. 대한민국 남자들이 다 나처럼 사는 것인가 의문이다.


날짜가 비슷하게 겹치는 때는 제사도 통합하고, 적당한 시간에 절 올리고, 음식도 필요한 만큼만 차리는 현실적인 타협이 필요하다. 마음이 중요하다 그렇게 따지면서, 왜 형식을 이토록 강조하는 것인지 이해할 수가 없다.


달라져야 한다. 제사 문화 자체가 나쁘다는 건 아니다. 허나, 현실에 맞게, 살아 있는 가족의 고통과 부담도 어느 정도는 헤아릴 줄 알아야 한다. 돌아가신 조상 모시느라 살아 있는 가족간 갈등과 다툼 생긴다면, 그렇게 지내는 제사가 다 무슨 소용 있겠는가.


언젠가 이런 비슷한 말을 했더니, 누군가 내게 왜 여성들의 편만 드느냐고 따져 물은 적 있었다. 바로 그런 게 문제다. 나는 제사를 합리적으로 지내자고 한 것뿐인데, 벌써 듣는 사람은 '여성의 편만 든다'라고 이해하는 것이다.


제사 준비를 여성들이 맡아서 하는 거라는 고정관념이 남과 여를 분리하고 성적 차별을 일반화하는 얘기 아니겠는가. 나는 여성의 편을 들어줄 마음이 없다. 내가 죽게 생겼는데 누구 편을 들어줄 마음 여유가 어디 있겠는가.


음식은 마땅히 다 준비해야 하고, 제사는 밤 11시 넘어 지내야 하며, 음복도 필수이고, 갖춰야 할 것은 다 갖춰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 중에 "부엌에서 음식을 직접 장만하는 사람"은 한 명도 없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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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상을 섬기는 아름다운 전통이 후세에까지 이어지기 위해서는, 형식보다 현실적인 합의가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지금 내 곁에 있는 가족의 몸과 마음을 상하게 하면서까지 대체 누굴 위하자는 것인가.


지금 행복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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