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용사를 지워야 독자가 느낀다

문장의 군살을 빼고 진실을 드러내는 힘

by 글장이


"형용사를 지우면 글이 밋밋해지지 않나요?"

강의 시간에 꾸미는 말 모조리 지우라고 강조한다. 초등학생이 화장을 떡칠한 것 같은 느낌. 이것이 독자로 하여금 내 글을 진부하게 느끼도록 만드는 요인이다.


글을 쓰고 나서 다시 읽어보면 어딘지 느끼하고 뻔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원인을 찾으려 문장을 들여다보면 범인은 거의 같다. '아름다운', '슬픈', '엄청난', '최고의' 같은 형용사들이 문장마다 가득하다.


이상하지 않은가. 꾸며주는 말을 잔뜩 붙였는데 글은 더 볼품없어진다. 이유는 단순하다. 형용사는 독자에게 감정을 '알려주는' 말이지, '느끼게 하는' 말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날 하늘은 아름다웠다."

이 문장을 읽고 가슴이 뛰는 사람이 있을까. '아름다웠다'는 작가의 판단이지 독자의 경험이 아니다. 작가가 결론을 먼저 내버리면 독자는 할 일이 없어진다. 감상할 것도, 상상할 것도, 느낄 것도 남지 않는다.


10년 넘게 글을 쓰고 가르치면서 깨달은 게 있다. 초보 작가일수록 형용사를 많이 쓴다. 편하기 때문이다. 상황을 구체적으로 그려내는 건 힘들지만 "매우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한 줄이면 일단 넘어갈 수 있다. 문장 뒤에 숨겨진 게으름은 감출 수 없다.


형용사를 지우고 나면 그 빈자리를 뭘로 채우느냐. 답은 '동사'와 '명사'다. 실제 수업에서 썼던 예를 하나 보자.


수정 전: 그녀는 매우 슬픈 표정으로 나를 보았다.

누구나 쓸 수 있는 문장이다. 틀린 건 없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슬픈'이라는 단어가 독자 대신 감정을 처리해버렸기 때문이다.


수정 후: 그녀는 고개를 숙인 채 손톱 끝만 만지작거렸다. 눈동자가 흔들렸다.

'슬픈'이라는 말은 어디에도 없다. 대신 고개를 숙이는 동작, 손톱을 만지작거리는 습관, 흔들리는 눈동자가 들어왔다. 독자는 이 장면을 읽으면서 스스로 "아, 이 사람 지금 슬프구나"를 느낄 수 있다. 작가가 알려준 게 아니라 독자가 발견한 감정이다. 그래서 더 오래 남는다.


이게 바로 '형용사 삭제 법칙'이다. 형용사를 지우고, 그 형용사가 말하려던 것을 구체적인 장면으로 바꾸는 것. 하나 더 보자.


수정 전: 꽃이 향기롭다.

주장이다. 독자에게 "향기로우니까 향기롭다고 느껴라"라고 지시하는 문장이다.


수정 후: 벌 한 마리가 아카시아 향기에 취해 꽃잎 위에서 비틀거린다.

벌이 비틀거릴 만큼 진한 향기가, 독자의 코끝까지 전해진다. 형용사 하나를 지웠을 뿐인데 문장이 입체가 됐다.


수강생 중 한 분이 어머니의 장례식에 대해 쓴 글이 있었다. "너무나 슬프고 고통스러운 하루였다. 세상이 무너지는 것 같았고,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았다."


슬프다, 고통스럽다, 무너진다, 찢어진다. 감정을 표현하는 단어가 네 개나 들어 있는데, 읽는 사람은 별로 슬프지 않다. 단어가 감정을 설명할수록 오히려 거리감이 생긴다.


형용사를 다 지우고 그날 기억나는 장면 하나만 쓰라고 권했다. 며칠 뒤 고쳐 온 글은 달랐다. "영정 사진 속 어머니가 웃고 있었다. 나는 그 웃음이 싫었다."


두 문장뿐이다. 슬프다는 말은 한마디도 없다. 그런데 나는 그 글을 읽고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이게 형용사 삭제의 힘이다. 작가가 감정을 꾹 눌러 담고 사실만 건조하게 적을 때, 독자의 감정이 터진다. 작가가 울면 독자는 구경하고, 작가가 참으면 독자가 운다. 글쓰기의 이 역설을 이해하면 진부함에서 벗어날 수 있다.


거창하게 생각할 것 없다. 오늘 쓴 글을 열고, 딱 세 단계만 따라 하면 된다. 첫째, 형용사 사냥. 글에서 형용사에 밑줄을 친다. '예쁜', '멋진', '대단한', '놀라운', '엄청난' 같은 것들. 생각보다 많을 거다.


둘째, 과감히 삭제. 밑줄 친 형용사를 지운다. 겁먹을 필요 없다. 지워도 글이 무너지지 않는다. 뼈대가 잘 드러날 뿐이다.


셋째, 장면으로 대체. 빈자리에 구체적인 동작, 사물, 풍경을 넣는다. "그는 행복했다"를 지웠다면, 그 사람이 행복할 때 어떤 행동을 하는지 떠올려 본다. 콧노래를 흥얼거리는지, 발걸음이 빨라지는지, 아무 이유 없이 웃는지. 그걸 쓰면 된다.


세 단계를 반복하다 보면 습관이 바뀐다. 처음 글을 쓸 때부터 형용사 대신 장면을 떠올리게 된다. 그때부터 '설명하는 글'이 아니라 '보여주는 글'이 된다.


모든 형용사가 나쁘다는 뜻이 아니다. 꼭 필요한 형용사는 당연히 살려야 한다. 하지만 대부분 형용사는 작가의 불안이 만들어낸 군더더기다. 이렇게만 쓰면 독자가 못 느끼지 않을까? 이러한 조바심이 '아름다운', '감동적인', '놀라운' 같은 단어를 불러들인다.


독자를 믿어라. 우리가 장면을 제대로 그려놓으면 독자는 알아서 느낀다. 느끼는 힘이 독자에게 있다는 걸 인정하는 순간, 글이 달라진다. 오늘 쓴 글에서 형용사 세 개만 지워보라. 그 빈자리를 채우느라 고민하는 시간, 그 시간이 우리를 작가로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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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에서 꾸미는 말을 줄이고 삭제할수록 자기 인생의 허풍과 과장도 사라진다. 오롯이 진짜 '나'만 남았을 때, 비로소 날아오를 수 있다.


지금 행복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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