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하고 책임지는 인생
입학 원서, 생활기록부, 자기 소개서, 수시 지원, 내신, 수능...... 이런 단어들이 자주 오가는 것으로 아들이 고3이라는 사실을 실감하고 있습니다. 원하는 대학에 진학에서 더 넓고 깊은 공부를 하게 될 겁니다. 만약, 시험에 붙지 못한다면 인생 처음으로 '실패'라는 걸 경험하게 될 테고요. 아무튼, 살면서 겪는 첫 번째 큰 도전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자기 소개서에 관한 얘기가 나왔습니다. 그래도 아빠가 작가인데, 자기 소개서 정도는 좀 만져주겠지라고 아내와 아들은 미루어 짐작을 했던 모양입니다.
"내가 대학 가냐? 네 소개를 왜 내가 하냐!"
한 마디로 잘라 거절했습니다. 아내는 서운해 했고, 아들은 그럴 줄 알았다는 표정입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맞벌이를 하셨습니다. 제가 어렸을 적에는 맞벌이하는 부모가 많지 않았습니다. 대부분 아빠가 일을 했고, 엄마는 집에서 자녀를 돌보았지요. 아버지와 어머니 두 분 모두 바빴기 때문에, 저는 집에서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았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집안에 있기보다는 동네에서 친구들과 어울려 노는 시간이 더 많았습니다.
축구, 야구, 딱지치기, 비석치기, 오징어, 씨름, 달리기, 보물찾기, 전쟁놀이 등 온갖 이름의 놀이들로 시간 가는 줄 몰랐습니다. 손과 옷에 흙이 묻는 건 예사였고, 가끔은 넘어지고 부딪혀 피를 흘리기도 했습니다.
저 골목 끝에 퇴근하는 어머니 모습이 보이면, 저는 아쉬운 마음을 뒤로 하고 친구들과 헤어져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욕실로 직행해서 씻고 나면 저녁을 먹었고, 어머니는 그 때부터 집안일을 시작해 밤 11시가 넘어서야 잠자리에 들곤 했습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그 시절 얘기를 꺼낼 때마다 눈시울을 붉힙니다.
"얼마나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어린 아들을 집에 혼자 두고 그렇게 일을 했는지......"
이렇게 말씀하시면서, 사는 게 참 힘들고 어려웠다는 푸념까지 섞어 제게 미안한 마음을 전하기도 합니다.
부모 마음 이해 못하는 건 아니지만, 전혀 쓸데없는 감정이고 괜한 푸념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아버지와 어머니가 일을 했다는 사실과 혼자 집에 있었다는 사실, 그리고 동네 친구들과 어울려 놀았던 과거에 대해 불만을 가진 적이 한 번도 없었고, 또 그것이 불행하거나 안 좋다는 느낌을 받은 적도 전혀 없기 때문입니다.
혼자서 판단하고 선택하는 힘이 생겼지요. 친구들과 놀이를 추진하고 어울려 논 덕분에 나름 '대장질'도 꽤 했었습니다. 씩씩하게 놀고, 싸움도 하고, 사고도 치고, 다치기도 하고, 그래서 제법 '사내다운 기질'도 장착할 수 있었습니다. 지금까지 제 삶에 있어 '좋았던' 기억은 대부분 어린 시절에 만들어진 성향 덕분입니다. 오히려 부모님한테 감사할 따름이지요.
아버지와 어머니가 저를 향해 미안한 마음을 품고 계신 것은, 저를 위함이 아니라 당신을 위함입니다. 미안한 마음, 서글픈 마음, 흘리는 눈물...... 이 모든 것들이 제게는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습니다. 저한테 무슨 털끝 만한 상처라도 있어야 위로도 되는 게 아니겠습니까.
아버지를 존경하고 어머니를 사랑합니다.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부모가 자식한테 무슨 죄를 지었다고 입만 열면 미안하다고 하실까. 그러지 말았으면 좋겠다고 몇 번이나 말씀드렸습니다. 그래도 잘 안 됩니다. 그래서 그냥 하시고 싶은 대로 둡니다.
사람의 감정은 자신이 몰고 가는 대로 만들어집니다. 전혀 미안한 일이 아닌데도 계속 미안하다고 생각하고 말하면 정말로 미안한 일이 되어버립니다. 이미 굳어져서 바꾸기도 힘듭니다. 하지만,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하겠지요. 아버지와 어머니는 저한테 미안해 하실 것이 단 한 가지도 없습니다.
저는 아들을 사랑합니다. 그래서, 아들의 삶을 대신 살아줄 마음이 털끝만큼도 없습니다. 이제 내년이면 제 나이 오십입니다. 백세 인생이라고 하니, 아직 제 인생 오십 년도 더 남은 셈이지요. 제 코가 석자입니다. 저는 제 인생에 집중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아들의 인생은 모른 척 팽개치는 것이냐?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늘 멀찌감치서 지켜봅니다. 아빠인 제 도움이 필요한 때가 있을 겁니다. 자기 소개서 쓰는 일은 제 도움이 필요한 일이 아니지요. 스스로 해결해야 할 일입니다. 부모는 방향을 제시하는 사람이고, 곁에서 지켜보는 사람이고, 조언을 건네는 사람이며, 보호자의 역할을 수행하는 존재입니다.
사사건건 도와주고 대신해주는 사람은 요양 보호사나 장애인 복지사입니다. 물리적으로 혼자서 하지 못하는 사람은 도와주는 게 당연하지요. 멀쩡한 몸으로 멀쩡한 정신으로 혼자서도 충분히 할 수 있는 사람을 대체 무엇 때문에 도와줍니까. 하나부터 열까지 자식의 일을 대신해주는 부모는 자기 자식을 바보 천치로 만들고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실수도 하고 실패도 합니다. 덕분에 배우고 성장합니다. 또 다른 일에 도전할 때, 실수와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기백도 키워나갈 수 있는 것이죠.
그런데, 부모가 이러한 배움과 성장의 기회를 몽땅 빼앗으면 자녀는 아무것도 혼자 힘으로 할 수가 없게 됩니다. 사회적으로 독립한 후에도 마음 속에 계속 엄마 아빠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 차 있을 테지요. 혼자 힘으로 판단하고 선택하고 결정하고 행한 적이 없으니, 혼란과 스트레스에 빠져 꽤 오랜 시간 힘들어 할 겁니다.
여자 친구랑 데이트하면서 점심으로 무얼 먹을까 엄마한테 전화해서 물어보는 남자가 있다고 합니다. 개그 프로에 나오는 얘기가 아니라 실제라고 하니 기가 찰 노릇이지요.
스무 살이 넘은 자녀를 가리키며 "우리 애기, 우리 애기"라고 표현합니다. 무슨 놈의 애기가 엄마보다 더 큽니까. 기저귀까지 채우고 다니지 그럽니까.
부모의 정신연령이 미취학 아동의 수준에 머물러 있으니까, 자녀도 그대로 닮아가는 겁니다. 어른이 어른다운 모습을 보여야 자식이 그걸 보고 함께 성장할 수 있습니다. 자기 인생도 옳게 살지 못하면서 자식 인생까지 망칠려고 하니 이보다 어리석은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아들 자기 소개서는 고작 세 문항입니다. 제가 손대면 한 시간이면 완성할 겁니다. 조금 신경 쓰면 제법 그럴 듯하게 멋지게 끝낼 수 있을 겁니다. 명색이 작가이고, 오백 명이 넘는 작가를 배출했으니 자기 소개서 정도는 얼마든지 잘 쓸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 실제로 자기 소개서 강의안까지 만든 적 있고요. 제가 아들 자기 소개서 봐주는 것은 일도 아니란 뜻입니다.
"서운하냐?"
"아니. 그냥 내가 해볼게. 나중에 다 쓰고 나면 아빠가 한 번 읽어보기만 해줘."
그래도 녀석이 제 마음을 알아주는 것 같아 기특했습니다. 모든 일은 자신이 직접 해야 하고 그에 따른 모든 책임도 본인이 짊어져야 한다는 사실을, 아들이 빨리 받아들이면 좋겠습니다.
어젯밤, 아들은 다 썼다며 자기 소개서를 제게 보여주었습니다. 생각보다 잘 썼습니다. 칭찬해주었습니다. 학교에 제출하면 선생님들이 또 검토를 해준다고 하네요. 아무튼 이것으로 자기 소개서에 얽힌 에피소드는 마무리되었습니다.
아들이 안방으로 돌아간 후, 저 혼자서 책상 앞에 앉아 자기 소개서를 들여다보았습니다.
문장을 좀 짧게 써야지, 으이구.
접속사를 왜 이리 많이 쓴 거야.
'우리'라는 말을 아주 남발을 하고 있구만.
여기 띄어쓰기도 틀렸네.
자기 생각만 쓰면 어쩌냐. 팩트를 뒷받침해야지.
메시지가 없잖아 메시지가!
지금 행복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