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관계, 참 어렵다
10년간 다녔던 회사를 그만두던 날 전화 한 통을 받았습니다. 소주 한 잔 마시고 알딸딸한 기분으로 귀가 중이었지요. 회사 생활 초기에 모셨던 지점장이었습니다. 당시에는 사업부장으로 승진하여 충청 지역을 관장하고 계셨지요. 제가 사직서를 냈다는 소식을 듣고 전화를 하셨던 겁니다.
이런저런 이유로 그만두게 되었다며 자초지종을 말씀드리는데, 갑자기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제가 원해서 그만두는 건데도 사업부장님 목소리를 들으니 뭔가 모를 감정이 북받쳤나 봅니다.
그만두지 말아라, 사직서 낸 것을 취소해라, 뭐 그런 말씀은 한 마디도 하지 않았습니다. 전화를 끊기 전에 남기셨던 말씀이, 20년이 다 지난 지금까지도 귓가에 맴돌고 있습니다.
"돈을 잃으면 다시 벌면 되지만, 사람 잃으면 끝장이다. 어딜 가든 사람 챙기며 살아라."
호기롭게 사업을 시작했다가 실패했습니다. 사람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지요. 저는 사람을 중심에 두지 않았습니다. 오직 돈만 생각했고, 돈이면 전부 다 되는 줄 알았습니다. 사람마저 돈으로 보일 지경이었으니 말 다 했지요.
그 때, 사업부장님의 조언이 떠올랐습니다. 사람을 잃으면 전부를 잃는 것. 바닥에서 다시 시작했습니다. 오직 사람을 위하는 인생을 살아 보겠다고 결심했습니다. 글을 쓸 때도 사람(독자)을 생각했습니다.
세상으로 돌아왔을 때, 제가 느낀 실망은 이루 말로 표현하기 힘들 정도였습니다. 사람을 중심에 두면 성공할 수 있다는 사업부장님의 말씀이 공허하게 느껴졌습니다.
뒤통수 맞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닙니다. 저한테서 단물만 쪽 빨아먹고 등 돌린 사람도 셀 수 없이 많고요. 내가 이렇게 바보처럼 살아도 되는 것인가 후회를 했습니다. 다시 예전처럼 나의 실속만 챙기며 살아야겠다고, 이렇게 당하면서 살지 말야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7년 동안 수많은 사람을 만났습니다. 나이, 성별, 직업도 다양했습니다. 인간관계에 대해 전문적으로 공부한 것은 아니지만, 많은 이들을 만나면서 몇 가지 깨닫게 된 사실이 있습니다.
첫째, 다른 사람은 결코 내 마음과 같지 않다는 사실입니다. 제 입장에서 '당연히'라고 생각하는 부분이, 다른 사람 입장에서는 전혀 다를 수 있다는 뜻입니다. 살아온 환경이 다르고 배운 바가 다르고 생각하는 방식이 다릅니다. 모두가 내 마음 같을 수는 없지요. 사람을 대할 때는 '다르다'는 사실부터 받아들여야 합니다.
둘째, 뒤통수를 치고 배신하고 험담한다고 해서 그들이 '나쁜 사람'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적어도 그들 입장에서는 그것이 '당연한' 것일뿐입니다. 각자가 쓰고 있는 안경이 있습니다. 붉은 색 안경을 쓰고 살아가는 사람은 세상이 온통 붉은 색으로 보일 테지요. 제 눈에 하얀 색으로 비친다고 해서 그들에게 하양을 강요할 수는 없습니다.
셋째, 세상은 온통 '내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 투성이'란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지나치게 비관적이지 않냐고요? 결코 아닙니다. 제가 이런 말을 하는 이유는 '감사' 때문입니다. 온통 내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 투성이지만, 간혹 제게 잘해주는 사람도 만나거든요. 그럴 때, 진심을 다해 감사하고 은헤를 잊지 않는 태도를 가져야 합니다.
사람을 미워하는 마음으로는 어떤 일도 제대로 할 수가 없습니다. 그렇다고 마냥 좋아할 수만은 없는 노릇이고요. 그래서 인간관계를 어렵다고 말하는 것이겠지요.
꼭 한 가지만 기억하려 합니다. 겉으로 잘해주는 건 아무나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상대가 겉으로 잘해준다고 해서 무조건 내 편이라는 착각을 해서는 안 됩니다. 마찬가지고, 내 입장에서 사람을 대할 때에도 겉으로만 잘해주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다는 사실도 기억해야 합니다.
덤덤하게 대합니다. 간 쓸개 다 빼줄 것처럼 굴지 말고, 적당한 선을 지켜야 합니다. 그래야 상처 받지 않을 수 있습니다. 대신, 이 사람이다 싶을 때에는 온 정성을 쏟아 부어야 합니다. '사람'은 흔하지만, '사람'은 귀한 세상입니다. 사람을 위하는 인생을 살아야 하지만, 사람 때문에 상처를 받아서는 곤란하겠지요.
'고슴도치 관계'라는 말이 있습니다. 다가갈 때는 다시에 찔리지 않도록 너무 가까이 가지 말고, 거리를 둘 때도 딱 가시의 길이만큼만 물러서면 된다는 뜻입니다. 좋다고 덥석 안기지도 말고, 싫다고 인연 끊지도 말라는 소리지요. 극단의 선택에 휘둘리지 말고, 오는 사람 품어주고 가는 사람 보내주면, 지금보다는 한결 가벼운 인생을 살아갈 수 있을 거라 믿습니다.
인간관계에 정답은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두 가지입니다. 내 마음을 지키는 일, 그리고 타인을 도와주는 일. 그 사이에서 중심 잘 잡고, 영혼에 먹물 튀기는 일 없어야 하겠지요.
지금 행복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