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쓰는 사람
맨 처음 글을 쓰기 시작한 곳은 감옥입니다. 지금이야 '감옥'이라는 곳에서 글을 썼다는 사실이 마치 영화 속 주인공의 이야기처럼 느껴지지만, 당시만 해도 참 어이가 없고 참혹한 현실이었지요. 글 쓰기가 힘들어서 독방으로 옮겨달라고 교도관한테 말했다가 욕만 먹었습니다. 그러다가 지독한 피부병에 걸려 독방으로 격리되었으니, 잘 된 건지 어떤 건지 분간도 할 수 없었습니다.
세상으로 돌아와서도 계속 글을 썼습니다. 현관 옆에 붙은 쪽방에서 아내와 함께 지냈습니다. 어린 아들이 공부할 때 펴는 상에다가 구닥다리 노트북을 올려놓고 썼는데요. 여전히 방바닥에 앉아 글을 썼지만, 감옥에 있을 때와 비교하면 천국이었습니다. 테이블도 있고 노트북도 있었으니까요.
아내가 아들의 공부를 봐주기 시작한 후로는 아들 방을 빌려 거기에서 글을 썼습니다. 와우! 이제는 책상에 앉아 번듯하게 쓸 수가 있었던 것이지요. 작은 책상 위에 아들 물건과 책이 가득한데, 그것들 틈새로 제 노트북을 올려 놓고 그런대로 작가의 삶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창 밖으로 도로가 인접해 있어서 온갖 자동차 소음이 귀를 아프게 했고, 거실과도 딱 붙어 있어서 식구들 대화 소리가 끊이질 않습니다. 고요함과는 거리가 먼 곳에서, 저는 글을 씁니다.
햇살 가득 비치는 창가에 앉아 책도 읽고 글도 쓰는, 그런 사진이 SNS에 올라올 때마다 한참을 멍하니 바라보곤 했습니다. 그러다가 현실로 돌아와 제가 글을 쓰는 곳을 보면, 허탈하고 힘이 빠져 우울하기도 했습니다.
누군가 이사했다거나, 자녀의 방을 예쁘게 꾸며주었다는 소식을 접할 때도 상대적 박탈감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요즘 부모들 감각이 어찌나 뛰어난지, 하늘거리는 커튼 아래 하얀 책상, 그리고 노트북과 커피 한 잔이 놓여 있는 모습을 보면 부럽다는 말이 저도 모르게 툭 튀어나왔습니다.
어쩌다 지방에 가서 강의장 인근 카페에 들를 때면, 이런 곳에서 글 쓰고 싶다는 생각이 절로 드는 곳도 많았습니다. 천정이 높아 웅장하고, 근사한 음악이 흘러나오고, 창 밖으로 사람들이 지나가고...... 마치 글을 쓰기 위해 만들어진 공간이라는 착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오랜 시간 글을 쓰니까, 책상 끝 부분 벗겨진 나뭇살 때문에 팔굼치가 아팠습니다. 그래서 책상 전체를 덮을 수 있는 대형 마우스패드를 구입했지요. 손목과 팔굼치가 폭신하게 닿아 한결 편했습니다.
주변 소음이 방해가 된다 싶을 때는, 잔잔한 음악을 틀어 놓습니다. 가요나 트로트는 저도 모르게 따라 부르게 되어서 이왕이면 클래식을 듣습니다. 음악에 대해 잘 모르는 것이 이럴 땐 도움이 되기도 합니다. 어쨌든 덕분에 글 쓰는 데 집중할 수 있으니까요.
아버지와 어머니가 수시로 불러대지만, 예전에 '노가다'하면서 글 쓸 때와 비교하면, 이 정도는 일도 아닙니다. 얼른 튀어나가서 필요한 일 척척 하고는, 다시 돌아와 앉아 글을 씁니다.
공간과 더불어 상황은 어떠할까요? 글을 쓰고 있으면 수강생 전화가 5분에 한 통 걸려옵니다. 저를 믿고 글 쓰는 사람들입니다. 무시해서도 안 되고 모른 척해도 안 됩니다. 설령 전화를 못 받는 경우가 있다 하더라도 반드시 콜백을 합니다. 지난 7년 동안 연락이 안된다는 소리 들어본 적 없습니다.
출판사 연락도 자주 옵니다. 제 원고에 관한 이야기를 나눌 때도 많고, 수강생 원고에 대해 수정을 요구하는 전화까지도 옵니다. 때로 어떤 기획에 대한 조언을 구하기도 하고, 출간한 책에 대한 마케팅 상담을 하기도 합니다. 아무튼, 출판사 연락도 하루에만 여러차례 받아야 합니다.
이런 저런 전화를 받지 않기 위해 주로 새벽과 밤에 집중해서 글을 씁니다. 새벽 4시부터 6시까지, 그리고 밤 9시부터 11시까지. 야간 강의가 있는 날에는 어쩔 수 없이 '밤 글쓰기'를 포기해야 합니다.
글을 쓸 만한 마땅한 장소가 없습니다. 불편합니다. 저만의 공간을 갖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 합니다.
글을 쓸 만한 여건이 갖춰지지 않습니다. 주변 소음도 심하고, 집안에는 제 손이 필요한 일이 많고, 수십 통의 전화와 연락이 쉴 새 없이 옵니다.
여섯 권의 책을 썼습니다. 이제 곧 일곱 번째 책이 세상에 나옵니다. 전자책도 썼습니다. 512호 작가를 배출했습니다.
이론적으로만 얘기하자면, 글을 쓸 공간이 마땅치 않고 하루 일과도 결코 여유롭지 않은 저 같은 사람은 한 줄도 쓰지 못해야 합니다. 아무도 저한테 "그럼에도 매일 글을 써야지!"라고 함부로 말하지 못할 겁니다. 누군가 제 삶으로 들어와 일주일만 겪어 보면, 아이고 도저히 글을 쓸 수가 없구나 금방 도망가버릴 겁니다.
세상에는 수많은 작가가 있습니다. 세계적인 거장들 중에서 "난 환경도 좋고 시간도 많고 상황도 좋고 세상도 고요해서, 그래서 글을 씁니다!"라고 말하는 사람 지금까지 한 명도 보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어떻게 살아내고 있을까 의문스러울 지경의 작가가 훨씬 많습니다.
~~ 때문에 글을 쓰지 못하고 있습니다.
세상 가장 부끄러운 말입니다. 적어도 작가가 되겠다는 꿈을 가진 사람한테는 말입니다.
글은 어디에서 써야 할까요? 네, 맞습니다. 자신이 지금 있는 그 곳이 최고의 장소입니다.
글은 어떤 상황에서 쓸 수 있을까요? 네, 그렇지요. 바로 지금입니다.
지금, 이 곳에서 글을 쓸 수 있는 사람이라면 언제 어디에서든 글을 쓸 수가 있습니다. 지금, 이 곳에 글을 쓰지 못하는 사람은 언제 어딜 가도 글 쓰기 힘들 겁니다.
자신과의 타협을 거부합니다.
타인으로부터 글 쓰지 못한 것에 대해 인정 받는 굴욕과 수치에서 벗어납니다.
어떠한 환경이나 상황도 제 삶에 흠집을 낼 수 없습니다. 저는 글 쓰는 사람입니다.
지금 행복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