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의실 안에서는 모두가 같은 작가다
글쓰기/책쓰기 강의를 오래 하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지도자라는 위치에 함몰되기 쉽다. 특히 나이가 어린 초보 작가나 사회적 지위가 낮아 보이는 수강생을 대할 때 은근한 우월감이 배어 나오거나, 가르치려 드는 고압적인 어조를 쓰게 된다.
반대로 나이가 훨씬 많거나 사회적으로 저명한 인사가 수강생으로 앉아 있으면 지나치게 위축되어 강의의 본질을 놓치기도 한다.
나도 강의 초기에 이러한 실수를 많이 저질렀다. 20대 수강생에게는 무의식중에 반말 섞인 어조가 나왔고, 대기업 임원이 수강생으로 앉아 있을 때는 괜히 긴장해서 평소 하던 피드백도 제대로 못 했다. 돌이켜보면 두 경우 모두 수강생을 글 쓰는 사람이 아니라 사회적 배경으로 바라보고 있었던 거다.
태도의 편차가 강의를 망친다. 강사가 수강생의 겉모습이나 배경에 따라 태도를 달리하면 강의의 진정성은 순식간에 사라진다.
사회 초년생 수강생을 하대하면 그들의 창작 의지가 꺾이고 문장이 위축된다. 지위 높은 이에게 굴종하면 강사로서의 전문성을 의심받고 강의의 중심이 흔들린다. 어느 쪽이든 수강생은 강사가 자신을 한 명의 작가로 존중하지 않는다는 걸 본능적으로 알아차린다.
존중이 결여된 강의실에서 기교의 전수는 일어날 수 있어도,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글쓰기 교육은 일어나지 않는다.
탁월한 글쓰기 코치는 수강생의 사회적 배경을 지우고 오직 글을 쓰는 사람 그 자체만을 바라본다. 첫째, 모든 수강생에게 일관된 존댓말과 격식 있는 호칭을 쓴다.
나이가 어린 수강생이라도 반드시 완전한 존댓말을 사용한다. 학생, 막내 같은 호칭 대신 선생님, 작가님이라는 호칭으로 한 명의 독립된 창작자로 대우한다.
언어는 관계를 규정한다. 격식을 갖춘 언어를 쓰면 강사 스스로도 수강생의 문장을 함부로 대할 수 없게 되고, 수강생은 자기 글이 존중받고 있다는 안정감을 느낀다.
호칭 하나 바꾸는 것만으로 수강생 태도가 달라진다. 작가님이라고 불리는 순간, 자기 글을 더 진지하게 대하기 시작한다.
둘째, 수강생의 경험과 문체를 틀린 것이 아닌 고유한 것으로 인정한다. 나이 어린 수강생의 파격적인 문장이나 연배 높은 수강생의 보수적인 관점을 비웃거나 무시하지 않는다.
강사가 가진 글쓰기 잣대로 그들의 삶을 재단하려 들면 안 된다. "여기 이 문장에는 작가님만의 독특한 결이 있네요, 그렇게 해석하실 수도 있겠네요" 먼저 수용한 뒤 개선점을 제안하는 포용력이 필요하다.
모든 수강생은 각자의 인생 위에 자기만의 정답을 써 내려가고 있다. 글을 잘 쓰고 못 쓰고가 중요한 게 아니라, 얼마나 정직하게 쓰고 있는가 하는 것이 중요하다.
셋째, 피드백의 기회와 관심을 공평하게 배분한다. 합평이나 첨삭을 진행할 때 특정인에게만 시간이 쏠리지 않도록 주의한다. 목소리가 큰 수강생뿐 아니라 구석에서 조용히 글을 쓰는 수강생에게도 따뜻한 눈길을 보낸다.
사회적 지위가 높은 사람이 수강생으로 있다고 해서 그 사람의 원고에만 과한 찬사를 보내는 실수를 하지 않는다. 강의실 안의 모든 원고는 강사에게 똑같이 소중하다는 걸 행동으로 보여줘야 한다.
강사가 모든 수강생을 공평하게 존중할 때 강의실은 비로소 안전한 창작 공동체가 된다. 심리적 장벽이 허물어진다. 존중받고 있다는 확신이 들면 수강생들은 비판에 대한 두려움 없이 속마음을 꺼내 놓는다.
사회적 지위를 내려놓고 온 이들은 강사의 겸손한 태도에 마음을 열고, 젊은 초보 작가들은 강사의 지지 속에서 잠재력을 터뜨린다.
인격적 권위가 자연스럽게 세워진다. 진짜 권위는 강요하는 게 아니라 수강생으로부터 부여받는 거다. 나이와 지위에 흔들리지 않고 모두를 정중하게 대하는 코치의 모습은 그 자체로 깊은 인상을 남긴다. 수강생들은 강사의 기술 이전에 그 태도에 감동하며, 이는 장기적인 신뢰로 이어진다.
글을 넘어 사람이 성장한다. 강사의 존중을 경험한 수강생들은 자신의 삶을 더 사랑하게 된다. 강의실에서 경험한 따뜻한 존중은 수강생들이 각자의 현장으로 돌아가 타인을 대하는 방식에도 영향을 미친다.
10년 넘게 강의하면서 보람 느끼는 순간이 있다. 수강생이 수료 후에 이렇게 말할 때다. "선생님 강의에서 글쓰기를 배운 것도 좋았지만, 인생을 대하는 태도를 배운 게 더 컸습니다." 그 한마디가 강사라는 일을 계속하게 만드는 동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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