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 잘 다스리는 게 최고다
까만색 볼펜으로 기록합니다. 중요한 내용은 파란색으로, 그 중에서도 제일 중요하다 싶은 내용은 빨간색으로 적습니다. 글씨를 예쁘게 쓰지 못합니다. 하지만, 볼펜이 노트에 닿는 그 부드러운 필기감이 좋습니다. 키보드 타이핑과 더불어 손글씨로 노트에 기록하는 일을 멈추지 않습니다.
감옥에서 글을 쓸 때, 형편없는 재질의 노트에다 C급 볼펜을 사용했습니다. 그 외에는 구할 수도 없었으니까요. 노트는 하루이틀만 지나도 미세한 돌기가 일어났습니다. 볼펜은 한 줄만 써도 볼펜똥이 난잡하게 묻어났습니다. 지저분한 노트를 볼 때마다 글 쓰고 싶은 마음 사라졌습니다.
노트와 볼펜 중에서 하나만 질 좋은 걸 써야 한다면, 저는 단연코 볼펜을 고르려고 합니다. 노트가 암만 좋아도 볼펜 형편없으면 엉망 되고요. 노트가 개판이라도 볼펜의 질이 좋으면 제법 그럴 듯한 필기가 됩니다.
많은 사람과 함께 일하고 있습니다. 글쓰기/책쓰기 코치로 10년째 일하고 있으니, 전국 방방곡곡 우리 수강생들이 가득하지요. 그 중에는, 진심 다해 저를 응원하고 격려하며 힘이 되어주는 사람 많습니다. 이게 무슨 복인가 늘 감사한 마음 품고 살지요.
반면, 내가 딱히 무슨 잘못을 저지르거나 피해를 준 것도 아닌데, '그냥' 저를 싫어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생각지도 못한 순간에 뒤통수를 치거나, 뒤에서 저를 험담하는 사람들. 그런 상황 겪으면 저도 모르게 속에서 울분이 치솟습니다.
살다 보면 마음 상하는 일 잦습니다. 하루에도 몇 번씩 감정의 파도를 겪고, 몇 달에 한 번씩 위기가 닥치고, 몇 년에 한 번씩 인생이 휘청거립니다. 이런 사건과 상황들은 제 힘으로 통제 불가능합니다. 그냥 참고 넘기거나,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거나, 세상과 한 판 싸움이라도 벌이는 수밖에 없지요.
세상과 인생은 노트입니다. 돌기가 솟고, 부스러기가 일어나며, 재질이 엉망입니다. 이런 세상과 인생을 상대하는 제 마음은 볼펜입니다. 생각과 마음은 오직 저 스스로 선택하고 통제할 수 있습니다.
재질이 엉망인 노트에다가 형편없는 생각과 마음으로 인생을 써내려갈 수는 없습니다. 제 힘으로 어쩌지 못하는 세상과 인생이라면, 그것이 형편없는 재질의 노트라면,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오직 "부드럽고 유연하며 깨끗하게 잘 굴러가는 볼펜 같은 생각과 마음"을 유지하는 것뿐입니다.
괴롭고 힘든 일 생길 때마다, 거친 노트를 마주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면서, 이런 노트에는 부드럽고 재질 좋은 볼펜으로 글을 써야 한다 혼잣말 중얼거립니다. 마음을 다잡고, 다시 인생을 써내려가는 것이지요.
다른 사람 마음 내 뜻대로 움직일 수 없습니다. 나에게 일어나는 일도 내 마음대로 조종할 수 없습니다. 타인도 사건도 날씨나 노화처럼 '그냥' 일어나는 현상입니다. 그냥 일어나는 일들에 죽자고 덤비면 나만 손해입니다.
세상과 인생은 거칠고 질 나쁜 노트입니다. 그런 노트에 인생을 멋지게 써나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내 마음이라는 볼펜을 참하게 만드는 수밖에 없겠지요. 오늘, 지금 나는 어떤 수준의 볼펜을 사용하고 있는가. 생각해 볼 필요가 있겠습니다.
어느 영상에서 90세가 넘은 한 노인이 인터뷰하는 장면을 본 적이 있습니다. 그는 거칠고 험한 노트를 질 좋은 볼펜으로 가득 채운 사람 같았습니다. "악 쓰면서 살지 말어. 그거 다 부질없는 짓이야. 마음 편안하게 갖고 주어진 일 열심히 하면, 다 거기에 맞는 복을 받게 되는 거야."
쿠팡에서 주문한 볼펜 다섯 자루가 도착했습니다. 일기장, 독서노트, 일상 기록장, 주간 계획서 등에 차례로 글을 썼습니다. 내 마음도 오늘 받은 볼펜처럼 굴려야겠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지금 행복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