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남처럼 바라보기
일기를 쓰거나 내 이야기를 적다 보면, 어느새 나는 이랬어요 혹은 나는 너무 힘들었어요 라는 말만 가득 차기 일쑤입니다. 내 마음을 그대로 옮긴 것뿐인데, 나중에 다시 읽어보면 왠지 모르게 부끄럽고 숨이 턱 막히는 기분이 들 때가 있습니다.
자기 감정의 늪에 너무 깊이 빠져버려서 그런 거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초보 작가일수록 자기 안에 쌓여 있는 감정이 마구 쏟아내는 경향 있는데요. 감정만 토해내는 글은 독자에게 아무것도 줄 수 없습니다.
내가 내 슬픔에만 푹 젖어서 글을 쓰면, 읽는 사람 입장에서는 도와줄 수도 없는 남의 하소연을 계속 듣고 있다는 기분이 듭니다. 그래서 어쩌라는 거지 라는 생각이 들면 독자는 책을 덮어버립니다. 내 마음이 앞서서 앞뒤 설명도 없이 감정만 쏟아내면, 그 글은 나 혼자만 아는 비밀 일기나 마찬가지겠지요.
좋은 방법이 있습니다. 글 속에서 '나'라는 글자를 지우고, 대신 '그'나 '그 사람', 혹은 '내 이름'을 넣어보는 겁니다. 마치 내가 영화감독이 되어서 주인공인 나를 멀리서 카메라로 찍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지요. 내 마음을 남의 일처럼 구경하면서 써 보면 글이 몰라보게 달라집니다.
첫째, 나 대신 그라고 불러봅니다. "나는 떨리는 마음으로 문을 열었다"라고 쓰는 대신, "그는 문고리를 잡고 한참을 망설였다"라고 적어보는 것이죠. 이렇게 하면 내 마음이 차분해집니다. 내가 나를 멀리서 지켜보고 있으니까, 내가 그때 어떤 표정이었는지, 손은 얼마나 떨렸는지 더 자세히 보이게 됩니다.
둘째, 내 마음보다는 내 몸이 어떻게 움직였는지 관찰합니다. "나는 너무 외로웠다"라고 말로 다 설명하지 않습니다. 대신 "그는 불 꺼진 방에서 윙윙거리는 냉장고 소리만 가만히 듣고 있었다"라고 써보는 거지요. 외롭다는 말을 한마디도 안 했지만, 읽는 사람은 그 장면을 보면서 아 저 사람 정말 외롭겠구나 라고 스스로 느끼게 됩니다.
셋째, 내 못난 모습도 솔직하게 구경해 봅니다. 나를 남처럼 바라보면 내 잘못도 더 잘 보입니다. "그는 남들 앞에서는 착한 척했지만 속으로는 질투심에 불타고 있었다"처럼 내 솔직한 속마음을 남 얘기하듯 툭 던져보는 겁니다. 이렇게 스스로를 객관적으로 보여줄 때, 읽는 사람들은 진실하다고 믿게 됩니다.
넷째, 마지막에 다시 나로 돌아오면 됩니다. 실컷 남 얘기처럼 쓰다가 마지막에 가서 사실 이 못난 사람이 바로 어제의 나였습니다 라고 고백하는 것이죠. 그러면 읽는 사람들도 공감하게 됩니다.
나를 남처럼 바라보고 글을 쓰면, 글이 훨씬 더 깊고 단단해집니다. 첫째, 감정만 앞서서 글이 지저분해지는 걸 막아줍니다. 내 마음을 한 발짝 떨어져서 보니까, 불필요한 짜증이나 투정 같은 게 싹 사라집니다. 문장이 깔끔해지고 훨씬 보기 편해집니다.
둘째, 읽는 사람이 자기 이야기처럼 느끼게 됩니다. 나의 이야기는 그냥 한 사람의 경험일 뿐이지만, 그 사람의 이야기는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이야기처럼 들립니다. 그래서 읽는 사람들이 자기 모습도 글 안에 비춰보며 더 깊이 빠져들게 됩니다.
셋째, 내 마음을 치유할 수도 있습니다. 힘들었던 기억도 남의 일처럼 종이에 옮기다 보면, "그때 내가 저래서 힘들었구나" 스스로를 토닥여줄 수 있게 됩니다. 글을 쓰면서 마음의 상처가 아물기 시작하는 것이지요.
넷째, 글 잘 쓰는 사람이라는 느낌을 줍니다. 자기 감정을 이기지 못해 징징거리는 글보다, 눈물을 꾹 참고 상황을 담담하게 그려내는 글이 훨씬 더 멋져 보입니다. 이런 글을 쓰면 생각이 깊어지기도 합니다.
글은 감정을 쏟아붓는 통이 아니라, 삶을 예쁘게 빚어서 보여주는 그릇입니다. '나'라는 좁은 울타리를 잠시 벗어나 봅니다. 무대 위에 선 나를 객석에 앉아 가만히 지켜보는 관객으로 바꾸는 것이죠. 남의 눈으로 나를 기록할 때, 비로소 많은 사람의 가슴을 울리는 글이 될 수 있습니다.
지금 행복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