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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 분량 채우기가 힘들어요

벽을 만난다면

by 글장이


책 한 권을 쓰기 위해서는 원고지 약 800~1,000매 정도의 분량이 필요합니다. 한 꼭지 적정 분량은 A4용지 기준 약 1.5매~2매 정도 써야 하고요. 1.5매짜리 글을 약 40편 정도 쓰면 A4용지 80매가 되고, 거기에다 들어가는 글과 마치는 글, 목차 등을 포함하면 약 90매에 이른다는 말입니다. A4용지 90매 정도면 원고지 800매 가까이 되니까, 그 정도면 책을 출간할 수 있습니다.


약간의 차이는 있겠지만, 어쨌든 작가는 일정 분량의 글을 써야만 책을 낼 수가 있는 겁니다. 헤밍웨이도 A4 한장 써가지고 책을 낼 수는 없습니다. 문제는, 하나의 주제로 A4 용지 1.5매 분량을 채우는 것이 결코 쉽지 않다는 데에 있습니다.


맨 처음 글을 쓰기 시작했을 때, 이 분량이라는 것 때문에 골치를 앓았습니다. 충분히 썼다고 생각했는데 A4 한 장도 채워지지 않은 경우도 많았습니다. 분량을 채우기 위해 오만 얘기를 다 갖다 붙이니까 주제 자체가 흐려지기도 했습니다.


어떻게든 분량을 채워야만 책을 낼 수 있으니, 가장 먼저 해결해야 할 문제는 '분량 채우기'였습니다. 제가 첫 번째로 했던 방법은 머리를 쥐어짜는 것이었습니다. 어린 시절 기억이 나는 순간부터 시작해서 현재의 삶에 이르기까지, 해당 주제와 관련된 경험이 없었는지 계속 생각했습니다. 글 한 편 쓰고 나면 혼이 빠지는 듯한 느낌이었지요. 이런 식으로 계속 쓸 수는 없었습니다.


분량을 채우기 위해 제가 두 번째로 선택한 방법은 메모와 낙서입니다. 글을 쓰기 전에 관련 내용을 간단히 적어두는 것이죠. 이전과는 다르게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또한 문제가 있었지요. 아무리 미리 적어둔다 하더라도, 결국에 제가 쓰는 내용은 한계가 있었습니다. 같은 말을 되풀이하는 등, 여전히 분량 채우기가 힘들었지요.


세 번째 방법은 구성을 철저히 잡는 것이었습니다. 서론, 본론, 결론 3단 구성이나 기승전결 4단 구성 등이었습니다. 글의 맥락을 잡고 논리를 펼치는 데에는 도움이 되었지만, 그럼에도 분량을 채우는 것은 힘들기만 했습니다. 이 방법도 해결책이 될 수 없었지요.


이쯤 되니 별 생각이 다 들더군요. 글을 잘 쓰고 못 쓰고를 떠나서, 아예 분량을 채우지 못하니 책을 내는 건 불가능해 보였습니다. 게다가, 쓰는 과정 자체가 재미도 없고 힘들기만 하니까 이제 그만 포기해야 하는가 싶기도 했었지요.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어서 글쓰기를 선택했는데, 그마저 능력이 따라주지 못한다는 생각이 드니까 힘이 쏘옥 빠졌습니다. 그 때의 절망감과 좌절감은 이루 표현하기 힘들 정도였습니다.


포기할 수는 없었습니다. 글쓰기마저 포기하면 저한테 남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으니까요. 무슨 방법이 있을 거라는 막연한 기대만 품은 채, 매일 쓰고 좌절하는 악순환을 반복해야만 했습니다.


신영복 선생께서 쓰신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이라는 책을 읽었습니다. 제 신세가 처량하다 보니 그 책을 읽으면서 힘이라도 좀 얻고자 했던 것이지요.


아! 그 책을 읽는 동안 주변 세상이 얼마나 환해졌는지 갑자기 주변에 불이라도 난 것 같았습니다. 글은 이렇게 쓰는 거구나! 문장을 본 것이 아니었습니다. 신영복 선생은 감옥이라는 곳에서 자신이 보고 듣고 경험하고 깨달은 모든 것들을 남김없이 글에 담았던 겁니다.


"괴로웠다"고 쓰지 않고, "같은 방을 쓰는 사람들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열기 때문에, 곁에 있는 사람이 그저 고깃덩어리로 느껴졌다"라고 표현했습니다. 저는 분량이 부족해서 고민했는데 반해, 신영복 선생의 책은 글자 크기를 작게 줄여 출간할 정도였지요.


노트를 펼쳤습니다. '설명하는 글'을 죄다 '보여주는 글'로 바꾸었습니다. "피곤했다"는 말을 없애고, "재판 받으러 법원에 갔다가 세 시간을 기다렸다"고 풀어냈습니다. "사람 취급을 받지 못했다"라는 말을 지우고, "식구통으로 들어오는 식은 닭튀김을 손으로 허겁지겁 집어 먹었다"고 썼습니다.


"씻고 잤다"고 쓰지 않았습니다. "빨래비누보다 질이 떨어지는 비누를 비비고 또 비벼 겨우 거품을 낸 다음 얼굴에 문질렀다. 다 씻고 나서도 얼굴에서 냄새가 나는 듯했다. 좌우 50센티미터도 채 되지 않는 공간에 몸을 뉘이고, 천장에 붙은 형광등 빛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머리가 핑 돌았다. 눈을 감았다. 내일 아침에 눈을 떴을 때 모든 것이 꿈이었구나 생각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망상 속에 잠들었다."라고 적었습니다.


분량을 채우는 것이 더 이상 문제되지 않았습니다. 그 때 처음으로 '글 쓰는 게 신난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 후로 매일 썼습니다. 10년이 지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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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보 작가들에게 분량 채우기는 어렵고 힘든 작업입니다. 쓸 게 없는데도 무조건 채워야 하니 그야말로 고역이지요. 이럴 때 가장 좋은 해결 방법은, 자신이 보고 듣고 경험한 내용을 그대로 옮겨 적는 겁니다. 구체적이어야 하고, 보여주듯 써야 합니다. 독자가 그 장면을 떠올릴 수 있다면 더 바랄 게 없겠지요.


끝으로 한 말씀 드리자면, 글을 쓸 때 만나게 되는 모든 벽은 공통점을 갖고 있습니다. 첫째는, 누구나 같은 벽을 만난다는 사실이고요. 둘째는, 어떻게든 그 벽을 넘어설 방법이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절대로 물러서지 말고, 오늘도 한 편의 글을 쓰시기 바랍니다.


지금 행복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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