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과 지옥 사이
4월입니다. 한 번씩 섬뜩한 생각을 합니다. 만약 아들이 대학 입시에 떨어졌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좀 전에 '섬뜩하다'는 표현을 썼습니다. 사실은, 아들이 대학에 떨어졌다 하더라도 저는 지금 아무 문제 없이 지극히 정상적으로 살아가고 있을 겁니다. 그런데 왜 섬뜩하다는 표현을 썼을까요?
아내와 아들, 아버지와 어머니는 아들의 대학 합격 소식을 듣고 뛸 듯이 기뻐했습니다. 감동의 눈물(?)까지 흘렸지요. 그런 모습을 보면서 저도 흐뭇했습니다만, 한편으로는 걱정이 되었습니다. 합격했다는 사실에 이토록 기뻐한다면, 떨어지면 어떻게 될까.
좋은 일이 생겼을 때 마냥 좋아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배웠습니다. 좋은 감정을 억제하는 것은 심리적으로 벽을 쌓는 일과 같아서 감정이 점점 무뎌진다 하거든요. 하지만, 지난 10년 동안의 경험에 비추어 보면 '촐싹대는 감정'이 결코 좋은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좋은 일이 생기면 그저 좋구나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나쁜 일이 생겼을 때도 흘려보낼 수 있습니다. 조금만 좋으면 방방 뛰고, 또 조금만 실망스러우면 곧 죽을 것처럼 고개를 숙입니다. 가벼운 감정에는 치명적인 문제점이 있습니다.
인생 전체를 놓고 볼 때, 좋은 일이 많이 생길까요 아니면 나쁜 일이 많이 생길까요? 이상적인 답변을 할 필요는 없습니다. 실제로 사람들은 인생에서 아주 좋다고 느끼는 경험보다 별로이거나 우울한 경험을 더 많이 한다고 느끼니까요. 감정이 가벼우면 아무래도 좌절, 절망, 실망, 우울, 분노, 미움, 시기, 질투 등 부정적인 기분을 느낄 때가 훨씬 많아질 거란 얘기지요.
불행한 일을 지혜롭게 흘려보내는 최선의 방법은, 행복한 일이 생겼을 때 편안하고 차분하게 바라볼 수 있는 연습을 하는 것입니다. 낮에 고요할 수 있는 사람이 밤에도 고요할 수 있는 법이지요.
글을 쓸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쓰다 보면 잘 쓸 때도 있고 못 쓸 때도 있습니다. 둘 중에 어떤 때가 더 많을까요? 네, 맞습니다. 아무래도 부족하고 모자라다 싶은 글을 더 많이 쓰겠지요. 나름 괜찮은 글 한 편 썼다고 방방 뛰면, 부족한 글 쓸 때마다 우울해서 어찌 견디겠습니까.
글 쓰는 사람의 바람직한 태도는, 어제 쓴 글을 잊는 것입니다. 나중에 퇴고할 때 다시 들여다보면 됩니다. 우리가 집중해야 할 것은 오늘, 지금 쓰는 글입니다. 어쩌다 좋은 글 쓰게 되면 그저 흐뭇하게 바라보면 됩니다. 그래야 부족하고 모자란 글도 편안하게 여길 수 있는 것이죠.
백 년만에 글 한 편 쓴 걸 가지고 동네방네 뿌려가며 난리법석 피우는 사람 흔하게 봅니다. 그런 사람 보면 함께 기뻐하는 마음 생기는 게 아니라 걱정이 앞섭니다. 앞으로 '형편없는 글'을 얼마나 많이 쓰게 될 텐데, 그 때마다 좌절하고 절망하며 고통스러워할 게 뻔하기 때문입니다.
영원히 좋은 일만 생기는 곳을 천국이라 합니다. 끝도 없이 나쁜 일만 생기는 곳을 지옥이라 부르지요. 그 천국과 지옥 사이에 우리가 사는 현실 세계가 있습니다. 좋은 일과 나쁜 일이 함께 생기는 곳이죠.
좋은 일만 생기길 바라는 것도 어리석은 마음이고요. 나쁜 일 생기지 말았으면 좋겠다 바라는 것도 허망한 생각입니다. 어떻게 살든 좋은 일과 나쁜 일은 함께 일어납니다. 그러니, 어떤 일이 일어나든 마음 중심 딱 잡고 평온하게 삶을 대하는 것이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위한 현명한 태도겠지요.
좋은 글은 좋아서 좋습니다. 별로인 글은 무한히 좋아질 가능성이 있어서 좋습니다. 중요한 것은, 오늘도 변함없이 글을 썼다는 사실 자체입니다.
글 쓰는 사람은 자신이 훌륭한 글을 쓸 수 있기 때문에 글을 쓰는 게 아닙니다. 삶을 대하는 진솔한 태도는 결과에 연연하지 않고 '그 일'을 계속해 나가는 데 있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입니다.
지금 행복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