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척하면서 살았더니 현실이 되었다
일단 내가 살아야 뭐라도 된다고 믿었습니다. 없는 살림에 남 돕는 사람들 보면서 비웃곤 했지요. 자기 인생도 제대로 만들지 못하면서 무슨 오지랖인가 싶었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그저 '보여주기 위한' 인생을 사는 데 급급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오직 저만을 위해 살았거든요. 오죽하면 TV에 아프리카 굶주린 아이들 나오면 곧바로 채널을 돌릴 정도였겠습니까.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아예 들으려고 하지도 않았습니다. 내가 하는 일, 내가 버는 돈, 내가 만드는 미래...... 그래서 나중에 충분한 돈을 모으면 그 때 가서 가족도 챙기고 남도 도우면 된다고 여겼습니다.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겠지요. 무엇이 옳다 그르다 정답을 얘기하려는 게 아닙니다. 제 삶의 경험을 전할 뿐입니다. 상식적으로,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하면 살았으면 어느 정도는 잘 살아야 하는 게 마땅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저는 폭삭 망했습니다. 오직 나의 이익과 내 삶만을 위해 살았는데도 모든 걸 잃고 말았지요.
망하고 난 후에, 그러니까 감옥 쪽방에 앉아서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무엇이 문제였던 것일까? 단순히 무모한 사업을 벌였다는 이유만으로 그렇게까지 무너졌을 리는 없습니다. 분명 다른 원인이 있다고 생각했지요. 아무리 생각해도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찾을 수 없었습니다. 저는 그저 제 인생 하나 잘 살아 보겠다는 마음으로 열심히 뛴 것밖에는 없었거든요.
답을 찾지 못한 저는 결단을 내렸습니다. 원인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인생 전반전은 무조건 잘못 살아온 것이다, 그러니 남은 삶은 다르게 살아야 한다...... 단순했습니다. 지난 삶이 잘못되었으니, 확신이 없으면서도 전혀 다른 인생을 살아야 했던 것이죠.
어떤 식으로든 다른 사람을 돕는다.
돕지 못하면, 돕는 척이라도 한다.
다른 사람 인생에 관심을 갖는다.
돈이 없으니, 나의 실패 경험과 깨달은 바를 전하는 것을 소명으로 삼는다.
'전하는 방법'은 집필과 강연이다.
당분간만이라도 수입이나 성공은 신경 쓰지 않기로 한다.
욕심이 자꾸 올라와도 억지로 누르고, 타인을 위해 살아가는 척이라도 한다.
신에게 거짓말을 하기로 작정했습니다. 여전히 내 마음 속에는 돈과 성공에 관한 욕구가 가득했지만, 겉으로는 전혀 그렇지 않은 척하며 남을 위해 사는 모습 보이기로 한 것이지요. 돌이켜보면, 어떻게 그런 생각까지 할 수 있었을까 저 자신도 믿기지 않지만, 당시에는 지푸라기라도 잡아야 하는 심정이었으니까 그럴 만도 했을 겁니다.
어차피 망했습니다. 잃을 것도 없었지요. 제 삶을 통해 실험이라도 해 보고 싶었습니다. 잘못을 저질러 감옥에 갔는데도 왜 그리 억울하고 분하던지요. 열심히 살려고 노력한 결과가 고작 패가망신이라니. 어떻게 사는 것이 맞는가 답이라도 찾아야 죽어도 억울하지 않을 것 같았습니다.
철저하게 연기했습니다. 다산 정약용의 책을 읽고 나서는 기침도 선비처럼 했고요. 토니 라빈스의 책을 읽고 나서는 마치 제가 열정의 화신이라도 된 것처럼 목소리를 당당하고 크게 했습니다. 나폴레온 힐과 웨인 다이어와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의 작품을 읽으면서 그들에게 빙의했지요. 어차피 제 삶은 다 잃고 끝장났으니, 다른 사람인 것처럼 살아 보겠다며 '쌩쇼'를 했던 겁니다.
열 평도 채 되지 않는 좁은 방에 성인 남자 열 명이 생활했습니다. 조금만 눈에 띄는 행동을 해도 티가 확 날 수밖에 없었지요. 감옥이라는 곳에 앉아서 종일 책 읽고 글 쓰고 멋진 척은 혼자 다 하고 있으니, 그 곳에 있던 사람들이 저를 '미친 놈'이라고 불렀습니다. 덕분에 1년 6개월 동안 시비 한 번 붙지 않고 잘(?) 지낼 수 있었습니다.
'척'하면서 일 년쯤 지내니까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럴 듯한 인생 명언을 얘기하는 제 모습이 어색하지 않더군요. 글 한 편 쓸 때도 이왕이면 내 글 읽는 사람한테 진정 도움이 되는 내용 담겠다는 태도를 갖게 되었습니다. 옆에서 누가 무슨 말을 해도 흔들리지 않았고요. 출소가 가까워졌을 때도 흥분하거나 설레지 않았습니다. 촐싹거리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출소 후에 막노동판을 전전할 때도 한숨을 내쉬거나 신세 한탄을 한 적 거의 없습니다. 주어진 일을 열심히 해내고 하루를 충실히 살아가는 것이 제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이라고 여겼지요. 아니, 그런 척을 했던 겁니다. 동시에, 앞으로의 제 삶이 무한히 좋아질 거라는 확신도 가졌습니다. 아니, 그런 척했습니다.
2016년 5월. 강의를 처음 시작했을 때에도 세상에서 가장 열정적인 강사인 척했습니다. 목소리 크게 내고, 제스처도 당당하게 하고, 강의 내용에 푹 빠져 열강했습니다. 수강생 중에 몇몇이 강의 도중에 "아멘!"을 외칠 정도였으니까요. 제가 열정적인 사람이었던 게 아니라, 열정적인 척했다는 사실이 중요합니다.
글을 쓸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 이 포스팅을 작성하면서도 저는 토니 라빈스이자 다산 정약용이며 로버트 킹이고 브라이언 트레이시가 됩니다. 세상 사람들이 비웃는 것도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고요. 제 글이 부족하고 모자란 것도 전혀 상관 없습니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그 인생을 대하는 태도이기 때문입니다.
온라인 강의를 시작한 지 3년 지났습니다. 강의할 때마다 와이셔츠에 넥타이 단정하게 차려 입습니다. 수강생을 대하는 태도가 반듯해야 스스로 부끄럽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강의 시간 철저하게 지키고, 화면 모두 켜고, 두 시간 강의 내용에 혼신을 다합니다. 누가 무슨 말을 해도 저는 제 강의에 한 치의 수치심도 없습니다. 8년째 강의를 할 수 있었던 이유이기도 합니다.
"힘들다, 어렵다"는 말을 수도 없이 들었습니다. 어제도 들었고 오늘도 들었습니다. 물론, 그런 말을 하는 사람들의 현실과 상황은 충분히 이해합니다. 하지만, 힘들고 어렵다는 말을 하는 것이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힘들지 않은 척, 어렵지 않은 척하는 정도로는 어림도 없습니다. 힘이 마구 솟는 척, 즐겁고 행복해서 미치겠다는 척, 오늘 하루는 정말이지 최고다 여기는 척! 매일을 이런 마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전과자, 파산자, 알코올 중독자, 막노동꾼이 감히(?) 어떻게 작가가 되고 강연가가 되어 성공할 수 있었겠습니까. 저처럼 바닥에 있던 사람이 여기까지 왔다면, 이 글을 읽는 분들은 아마 훨훨 날아오를 수 있을 겁니다.
둘 다 인생입니다. 눈에 보이고 귀에 들리는 현실도 인생이고요. 보이는 척, 들리는 척 상상하는 시간도 현실입니다. 엄연히 존재하는 현실이라면, 나에게 더 이로운 쪽으로 살아가는 것이 현명한 방법이겠지요. 좋지 않은 생각, 부정적인 상상, 이런 것들은 거의 맨날 하면서 살잖아요. 일어나지도 않은 일에 대해 지레 겁 먹고 불안에 떨지 않습니까. 그러니, 좋은 상상과 행복한 척하는 것도 아무 문제가 없는 겁니다.
많이 웃어야 합니다. 미친듯이 웃어야 합니다. 신이 헷갈릴 정도로 행복해 해야 삶이 달라집니다.
지금 행복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