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서와 단계에 따라 집필하다
가장 먼저 쓰는 글을 '초고'라 합니다. 수정하고 다듬기 전, 그러니까 원석 그대로 거칠고 투박한 상태의 글입니다. 초고는, 그 자체만으로 책이 되거나 작품이 될 수 없습니다. 반드시 퇴고를 거쳐야만 세상에 나올 수 있는 것이죠. 맞춤법, 띄어쓰기, 문맥, 구성, 핵심 메시지 등 모든 것이 엉망이고 어설프고 부족한 글. 바로 이것이 초고입니다. 오죽하면 헤밍웨이가 "초고는 쓰레기"라고 했겠습니까.
초고를 쓰는 목적은 오직 한 가지뿐입니다. 분량을 채워 끝내는 것! 다른 건 없습니다. 그렇게 분량 채워 끝내놓고, 며칠 묵힌 다음 퇴고를 해야 합니다. 퇴고는, 한두 개 터치만 해서 될 문제가 아닙니다. 원고를 통째로 뒤집어 갈아 엎는 작업입니다. 힘들고 어렵고 시간도 많이 걸립니다. 누구도 이 퇴고 단계를 건너뛸 수 없습니다.
정리해 봅시다. 초고는 분량 채워 끝내는 게 목적이라 했습니다. 퇴고는 힘들고 어려운 과정이라 했고요. 여기서 한 가지 주목해야 할 중요한 사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초고 쓰면서 힘들어 하는 사람은 바보다!"
첫째, 무슨 일이든 순서와 단계에 맞게 해야 합니다.
많은 초보 작가들이 초고를 마치 퇴고하듯 쓰고 있습니다. 그럴 필요도 없고, 그래서도 안 됩니다. 글을 '쓰면서' 동시에 '수정까지' 한다는 얘긴데요. 어처구니 없을 만큼 욕심이고 자만이고 오만입니다. 쓰는 것도 어려운데 고치기까지 한꺼번에 한다고요? 혹시 천재 작가님입니까?
한 줄 쓰고 뒤돌아보고, 두 줄 쓰고 뒤돌아보고, 한 꼭지 쓰고 뒤돌아보고, 두 꼭지 쓰고 뒤돌아보고, 자꾸만 이전에 썼던 글로 돌아가 듬성듬성 고치고......조심해야 합니다. 목 돌아갑니다.
어제 쓴 글을 돌아보는 습관은 오늘 쓰는 글에 집중하지 않는 태도입니다. '지금'에 집중해야 하는데 자꾸만 '지나간 시간'에 연연하는 것이죠. 어차피 나중에 퇴고할 때 싹 다 갈아엎어야 하는데, 무엇하러 자꾸만 뒤돌아가서 시간을 낭비하고 있습니까.
둘째, 자신을 믿어야 하지만 과대망상은 금물입니다.
"초고를 조금이라도 잘 써 놓으면 나중에 퇴고할 때 덜 힘들지 않나요?"
얼핏 보면 지당한 말 같지요? 제가 가장 화가 나고, 어이를 상실하게 되는 질문입니다. 그러니까 본인은 초고를 잘 쓸 만한 능력이 있다는 뜻인가요?
박경리 선생도 초고는 엉망이고 무라카미 하루키도 초고는 엉성합니다. 그런데 당신은 초고를 잘 쓸 자신이 있다고요? 만나자! 싸우자!
나중에 퇴고할 때, 원고 전체를 순서대로 일독하면서 구성도 다시 잡고 메시지도 선명히 하고 문장도 다듬어야 합니다. 한꺼번에 작업해야 일관성을 가질 수 있습니다. 쓰다가 말고 중간중간에 손을 대 놓으면, 무슨 헝겊쪼가리 이어붙인 것 같이 덕지덕지 난삽한 글이 되고 맙니다.
제가 이렇게까지 말씀을 드리는데도, 끝까지 습관을 바꾸지 않고 초고 쓰면서 자꾸 고치는 사람 많습니다. 글쓰기를 제대로 배우지 않은 사람들이 고집도 셉니다. 쓸 줄도 모르면서 '자기 스타일'을 고집하는 거지요. 제 말 듣고 습관 한 번 바꿔 보세요. 제가 도움을 드리려고 이런 말을 하는 거지 아침부터 뭐하러 핏대 세워 포스팅 작성하고 있겠습니까. 초고를 쓸 때는 절대 뒤돌아보지 마세요. 돌아보는 순간 돌이 될 겁니다.
셋째, 탁월한 아이디어는 퇴고할 때 떠오릅니다.
백지에 글을 쓸 때보다 자신이 쓴 글을 읽을 때 더 좋은 아이디어가 나오게 마련입니다. 사람의 뇌는 연상기억장치라고 몇 번이나 말씀드렸지요. 그냥 생각할 때보다 뭘 보거나 듣거나 체험할 때 더 참한 아이디어가 떠오르고 기억도 생생해진다는 의미입니다.
초고를 쓰고, 며칠 묵혀둔 뒤에, 다시 자신이 쓴 초고를 찬찬히 읽어 보면서 하나씩 고치고 다듬으면 됩니다. 뺄 것은 빼고, 새로운 아이디어 추가하고, 문장도 다듬고, 문법도 고칩니다. 쇳덩어리 초고를 멋진 칼로 바꾸는 작업입니다. 시커먼 돌덩어리를 다이아몬드로 빚는 과정입니다. 퇴고를 믿으세요. 초고를 쓸 때는 쇳덩어리와 돌덩어리를 많이 캐내기만 하면 됩니다.
초고를 그대로 책으로 내는 사람 없습니다. 그래서도 안 되고, 그렇게 받아주는 출판사도 없습니다. 만약, 초고를 그대로 책으로 낸 사람이 있다면, 두 번째 책을 내기 전까지는 얼굴 들고 못 다닐 겁니다. 세상 뻔뻔한 존재가 아니라면 말이죠.
수강생이 초고를 완성하면, 3~4일 정도 후에 퇴고 안내를 합니다. 반응은 다양합니다. 퇴고 안내에 감사하다는 사람도 있고요. 한숨 푹 쉬면서 힘들다 징징거리는 사람도 있습니다. 아예 대꾸 한 마디 없는 사람도 많습니다. 참 희안하지요? 감사한 마음 갖는 사람의 퇴고 결과가 항상 제일 좋습니다. 태도가 글에 그대로 반영된다는 결론입니다.
초고 쓰는 목적은 '분량 채워 끝내는 것'이라 했습니다. 만약 초고 집필 중이라면, 오늘 한 편 분량 채우고 끝내버리세요. 그러고나서 들춰 보지도 마세요. 내일 되면 또 내일 초고 한 편 휘갈기는 겁니다. 뒤돌아보지 말고, 다음 날 세 번째 꼭지 분량 채웁니다. 엉망진창 글 계속 써서 A4용지 100장 채우는 것! 이것이 초고입니다.
모든 일은 순서와 단계 따르는 것이 정도이고 최고입니다. 초고 쓰면서 고치고 다듬고 퇴고까지 병행해서 어떻게든 뚝딱 책 한 권 완성해서 빨리 출간하려는 조급하고 결과에 연연하는 습성, 독자들이 다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 잊지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지금 행복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