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하면 참 좋은데
자유를 누릴 수 있다건 엄청난 행운입니다. 태어날 때부터 기본적으로 자유로운 상태라서 그 소중함을 모르고 살아갈 뿐입니다. 코로나19 사태가 벌어지고 나서야 맑은 공기 소중함을 깨닫게 된 것처럼 말이죠. 수감 생활 1년 6개월 했습니다. 죽는 줄 알았습니다. 자유가 없었거든요. 그때 처음 알았습니다. 평소 일상에서 내가 누리던 모든 것들이 당연한 게 아니라 정말로 소중한 거였다는 사실을 말이죠.
사업에 실패했을 때, 하늘이 무너지는 줄 알았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다 잘 살고 있는데 나만 뚝 떨어진 것 같은 기분이었죠. 뭐라 설명하기 힘들 정도로 더럽고 치욕적인 느낌이었습니다.
지금은 어떤 기분인가 하면요. 웬만한 실패는 실패로 보이지도 않습니다. 누군가 자신의 인생 이야기를 진지하게 털어놓는데, 제법 그럴 듯한 실패담이 없지 않습니까? 그러면 은근히 그 사람 별 것 아니라 여기게 됩니다. 반면, 누가 봐도 큰 실패다 싶은 경험을 한 사람 이야기는 귀담아 듣게 됩니다. 때로 존경심마저 우러 나옵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젊었을 때 고생한 얘기 자주 하십니다. 남자들은 군대 얘기할 때 고생한 얘기 부풀려 말하지요. 여성들은 자신의 상처와 아픔에 대해 말합니다. 심지어 어린 아이들까지 자기 힘들었단 얘기 잘 합니다.
고생하기 싫어하고 실패하기 싫어하면서, 입만 뗐다 하면 고생한 얘기 실패한 얘기 영웅담처럼 늘어놓습니다. 저도 마찬가지고요. 왜 그럴까요? 실패 스토리가 통하니까 그런 겁니다. 영화나 소설 한 번 떠올려 보세요. 주인공이 아무런 시련이나 고난 없이 목표를 거저 얻는 이야기는 없습니다. 그런 이야기 나와 봤자 관객이나 독자한테 외면 받을 게 뻔하니까요.
인간의 기본 심리에 따라 스토리에는 반드시 포함되어야 할 요소가 있지요. 주인공, 목표, 방해물, 시련과 고난의 순간, 절정, 그리고 극복입니다. 이 여섯 가지 요소가 적절히 구성되어야 제대로 된 스토리텔링이 완성되는 것이죠. 그냥 주인공과 사건만 있으면 스토리일 뿐입니다. 스토리텔링에는 그보다 훨씬 많은 복합적 요소가 포함되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주목해야 할 사실은, 누구나 실패 경험을 높이 평가하는데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실패를 두려워한다는 사실입니다. 두려워할 게 아니라 기꺼이 즐겨야 하고, 일부러라도 실패를 해야 할 정도입니다. 제 삶에 실패가 없었더라면 아마 지금의 저는 존재하지 않았을 겁니다. 자이언트도 물론 없었겠지요. 상상만 해도 끔찍합니다. 모두가 실패 덕분입니다.
감옥에 있으면 낮에 눕지도 못합니다. 큰 소리도 못 지르고요. 노래를 부르거나 휘파람 부는 것도 절대 못합니다. 밥은 주는 대로 먹어야 하고, 밤 10시가 되면 잠자리에 들어야 합니다. 하루 30분 운동 시간에는 정해진 구역을 벗어날 수 없고, 다른 방 사람들과 대화는 일절 금지됩니다. 시원한 얼음물? 펄펄 끓는 물? 그런 건 상상도 못 합니다. 짜장면, 햄버거는 구경도 할 수 없고요. 치킨은 다 식어빠진 시커멓고 뻐덕한 닭고기가 전부입니다.
자유를 잃어 본 경험은 자유를 제대로 누려야 한다는 깨달음을 갖게 해주었죠. 저는 제가 누릴 수 있는 자유를 최대한 만끽할 겁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소중하게 여기는 자유가 바로 '실패할 자유'입니다.
주변에 성공한 사람들. 책에서 읽은 위대한 인물들. 그 어느 누구라도 한 번 살펴보세요. 모두가 약속이라도 한 듯 실패 경험을 갖고 있습니다. 그것도 보통 실패가 아니라 뼈를 깎는 실패죠. 도저히 다시 일어설 수 없을 것만 같았던 실패. 다들 그걸 이겨내고 성공에 이른 겁니다.
말을 바꿔 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만약 그들에게 처참한 실패가 없었더라면, 과연 그들은 지금의 성공을 이뤄낼 수 있었을까? 어떤가요? 저는 글쎄요. 실패가 없었더라면 그들도 결코 성공하지 못했을 거란 확신이 듭니다.
또 한 번 말을 달리 해 볼까요. 성공한 사람들, 위대한 사람들은 모두가 "실패할 자유를 마음껏 누린" 존재들입니다. 겁내지 않았습니다. 실패에서 머물지도 않았습니다. 주저앉아 포기하지도 않았습니다. 투덜투덜 삐딱한 소리나 하며 술을 퍼마시지도 않았습니다. 그들은 실패를 실패로 인정하지 않았던 거지요. 그저 자유로운 경험이라 여겼을 뿐입니다.
우리에겐 실패할 자유가 있습니다. 실패를 두려워하고 도전을 망설이는 사람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자유를 마음껏 누리지 못하고 있단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훨훨 날 수 있는데도 새장 안에 갇혀 있으면서, "여기가 제일 안전해!" 외치며 사는 것이지요.
실패하면 참 좋은데. 이거 뭐 실패하라고 권하면 재수없다 할 테고. 뭐라 할 말이 없네요. 실패하면 인생이 더할 나위 없이 좋아지는데......
지금 행복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