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아홉 청년의 꿈
학교 졸업하고 군에 다녀와서 바로 취업했습니다. 운이 좋았지요. 그러다가 사직서 내고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영업도 해 보고, 술집도 차려 봤고, 돈도 벌어 보고, 망해도 보았습니다. 그러다가 마흔 넘어 책을 써서 작가가 되었습니다. 글 쓰고 싶은 사람, 책 내고 싶은 사람 돕기로 작정하고 강연을 시작했지요.
스물아홉 젊은 친구가 상담을 요청해 왔습니다. 평생직업을 찾고 있는데 쉽지 않아 고민이라고 하네요. 패기도 마음에 들고 열정도 훌륭합니다. 부모한테 용돈 받으며 게임만 하느라 청춘 다 보내는 녀석들도 많은데, 일찌감치 자기 생을 준비하고 있으니 얼마나 기특하고 대견한가요.
그런데, 이 친구가 모르는 게 한 가지 있습니다. 자신이 얼마나 오래 살 것인지 감을 못 잡고 있더군요. 앞으로 자신에게 얼마나 많은 시간과 기회가 올 것인가에 대해 몰라도 너무 모르고 있었습니다.
취업해서 직장 다닐 수도 있고요. 한 2년쯤 다니다가 그만두고 해외여행을 갈 수도 있을 겁니다.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백만장자를 만나 사업에 대한 꿈을 키울 수도 있지요. 당장 사업자금이 없으니 아르바이트라도 하면서 돈을 모을 겁니다. 사업자금 모으는 중에 아르바이트를 하던 업체 사장과 뜻이 맞아 곧바로 동업을 시작할 수도 있고요.
위 내용과 전혀 달리 혼자서 아무 일도 하지 못한 채 꽤 오랜 시간 '백수'로 지내야 될지도 모릅니다. 그 과정에서 책 읽고 공부하다가 책을 한 권 쓸 수도 있지요. 작가와 강연가가 되어 인플루언서로 이름을 떨치게 될지도 모릅니다.
지금 이 글을 읽다가 문득 SNS를 하고 싶은 마음이 들어서 유튜버 활동을 시작할 수도 있습니다. 유튜버 활동하다가 구독자와 눈이 맞아 결혼을 할 수도 있고요. 둘이서 함께 유튜버 활동하면서 세계 여행을 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제가 언급한 내용 외에도 무한한 가능성이 존재합니다. 감히 상상조차 못할 일이 일어날 수도 있고요.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되시나요? 세상은 이 무한한 가능성을 "청춘"이라고 부릅니다.
저는 마흔 넘어서야 지금 일을 찾았고, 그 과정은 이루 말할 것도 없이 복잡하고 다난했습니다. 중요한 것은, 인생 절반을 살아온 저 같은 사람에게도 아직 남은 인생 가능성이 다양하게 존재한다는 사실입니다. 물론 지금은 글 쓰고 강연하는 것을 천직이자 '평생직업'이라 믿고 행복하게 살고 있지만요. 당장 내일 일도 모르는 게 우리 인간 아니겠습니까.
꿈과 목표, 평생직업을 찾고자 노력하는 태도는 아름답고 고귀하지만, 고작 스물아홉에 모든 걸 결정지으려는 것은 조급한 마음일 뿐입니다. 모든 가능성을 열어 놓아야 합니다. 언제 어떤 일이 자신에게 펼쳐질지 모릅니다. 길을 가다 공룡을 만나는 것 같은 어처구니 없는 일까지 생길 수 있다는 가능성을 자기 인생에 확 펼쳐놓아야 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경쟁이 치열한 세상. 뒤처지면 죽는다는 압박. 거기에다 부모와 교사와 친구들이 앞다투어 "잘 살아야 한다!"고 강조했을 테지요. 뭔가 빨리 이뤄내야 한다는 강박이 자신을 초조하게 만들었을 겁니다. 사회 분위기와 언론, 그리고 각종 SNS까지. 돈 벌어야 하고 성공해야 한다고, 반드시 그렇게 해야 한다고 은연중에 암시했겠지요.
주어진 하루에 최선을 다하는 것과 당장 뭘 이뤄내야 한다는 조급한 마음을 혼동해서는 안 됩니다. 진심으로 권합니다. '평생직업'을 찾지 말고, '온갖직업'을 다 겪어 보라고 말이죠. 무슨 일이든 해 봐야 압니다. 자신에게 맞는지 어떤지 경험해 봐야 결정도 할 수 있는 거겠지요.
돌고래 조련사가 평생직업인 줄 알고 시작했다가, 나이 마흔에 컴퓨터 디자인이 딱인 줄 알게 되고, 오십 넘어 글을 쓰게 되고, 육십 넘어 온라인 커뮤니티를 배우게 될 겁니다. 세상을 에버랜드라고 가정해 봅시다. 스물아홉 젊은 친구는 지금 회전목마 앞에 서서 어떤 말을 타야 할 것인가 고민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즐길 수 있는 놀이기구가 얼마나 많고, 하늘에는 폭죽이 터지고, 장비 축제가 한창이고, 퍼레이드가 펼쳐지고, 곳곳에 먹거리가 즐비하며, 담 하나 넘어가면 캐리비안 파도가 춤을 추고 있는데...... 회전목마 앞에서 모든 걸 '결정'지으려 하다니요!
실패할 겁니다. 네! 당연히 많은 실패를 하게 되겠지요. 하지만 걱정 없습니다. 이 친구 정도라면, 얼마든지 실패해도 계속 앞으로 나아갈 테니까요. 다시 일어서기만 한다면 넘어지는 게 무슨 대수겠습니까.
더 큰 세상으로 나아가서 다양한 경험을 해 보고, 자기 안에 잠들어 있는 엄청난 잠재력과 가능성을 실컷 맛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런 다음, 넉넉한 마음으로 평생직업 골라도 절대 늦지 않습니다.
지금 행복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