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절하게 하나하나 차근차근
글 쓰는 주체는 작가입니다. 작가는 자신의 이야기 즉, 경험과 지식을 바탕으로 글을 쓰게 됩니다. 자신이 잘 알고 있는 내용을 쓴다는 뜻입니다. 독자는 어떨까요? 작가가 잘 아는 내용이라 해도, 독자는 전혀 모를 수 있습니다.
작가 스스로 잘 아는 내용이라 해서 독자도 어느 정도는 알 거라고 짐작하는 행위를 '지식의 저주'라고 합니다. 작가 혼자만 아는 내용을 적어서 책으로 내면 독자는 아무리 읽어도 무슨 소린지 모르겠지요. 글 쓰는 의미와 가치 자체가 사라진다는 뜻입니다.
글을 쓰는 이유는 독자를 위함입니다. 친절하게 써야 합니다. 배려해야죠. 그래서 글은 항상 '구체적으로' 쓰는 것이 마땅합니다.
조카가 내 가방을 뒤졌다.
이렇게만 쓰면, 독자는 '조카'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계속 글을 읽어야 합니다. '조카에 대한 설명'을 구체적으로 해주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아홉 살 조카 영희는 언니의 딸이다. 언니는 나보다 두 살 위인데, 키도 크고 이목구비가 또렷해서 어릴 적부터 미인이란 소리를 많이 들었다. 영희도 언니를 닮아 벌써부터 귀엽다는 소리보다 예쁘다는 말을 더 많이 듣는다. 이모인 나를 잘 따르고 친구처럼 생각해서 오늘처럼 한 번씩 언니 집에 들를 때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함께 논다. 혹시 무슨 선물이라도 들고 왔나 싶었는지 내 가방을 뒤진다.
글 쓰는 사람은 글 쓰는 걸 즐겨야 합니다. 쓰기 싫은데 억지로 쓰는 사람은 대부분 문장을 '퉁치기'로 씁니다. 빨리 쓰고 '끝내려는' 생각만 강하기 때문에, 자신이 독자를 위해 친절과 배려 베풀어야 한다는 걸 잊게 마련이죠.
첫째, 엉덩이를 눌러야 합니다. 후딱 쓰고 자리 뜨려고 하지 말고, 분량이 어느 정도 채워졌다 하더라도 다시 처음부터 찬찬히 읽으며 더 구체적으로 써야 하는 부분이 없나 살펴야 합니다.
둘째, 독자를 초등학교 3학년쯤으로 간주해야 합니다. 친절하게, 상세하게, 구체적으로, 하나하나 알려주어야만 독자가 이해할 수 있겠지요.
셋째, '이름'을 불러주어야 합니다. '버스'라고 쓰지 말고 '305번 마을버스'라고 씁니다. '남자친구 차'라고 쓰지 말고 '남자친구가 타고 온 파란색 BMW'라고 써야 합니다. '꽃'이라고 쓰지 말고 '자주색 제라늄'이라고 쓰는 것이 좋습니다. 독자 눈에 정확히 보여야 합니다.
넷째, 감정은 설명하지 말고 보여주어야 합니다. '화가 났다', '속상했다', '슬펐다', '짜증났다', '기분 나빴다', '우울했다', '즐거웠다', '행복했다'...... 이 모든 표현이 감정을 직접적으로 설명하는 말입니다. '운전석에 앉아 핸들을 쾅쾅 내리쳤다', '오늘따라 국밥이 목으로 넘어가지 않았다', '엄마 생각이 나서 자꾸만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김대리가 먼저 인사를 하는데도 본척만척했다', '종일 음악 들으며 누워 있기만 했다', '팀장이 나를 보며 무슨 좋은 일 있냐고 물었다', '휘파람이 저절로 났다'...... 이런 식으로 장면을 보여주고 대화를 들려주는 것이 독자 입장에서 감정을 해석할 수 있도록 여지를 주는 구체적인 글쓰기 방법입니다.
다섯째, 글 쓰는 내내 자신에게 질문을 던져야 합니다. 독자 입장에서 말이죠. 특히, 육하원칙에 따른 내용 빠진 것은 없나 잘 챙겨야 합니다. 언제? 어디서? 누가? 무엇을? 어떻게? 왜? 이 질문에 대한 답이 모두 정갈하게 들어가 있는지 확인하고, 부족한 부분을 채우면 구체적인 글을 쓸 수가 있습니다.
SNS 세상입니다. 스마트폰을 열면, 짧은 몇 줄로 명언이나 좋은 글귀 따위를 쉽게 볼 수 있는데요. 바쁜 일상에서 짧은 문장을 만나 위로 받고 힘 낼 수 있다는 점에서 나쁘지 않다고 봅니다. 허나, 글 쓰는 사람은 절대 짧은 문장에 현혹되어서는 안 됩니다.
글이라는 건, 하나의 주제를 선명하게 잡고 그것을 뒷받침하는 사례와 경험과 예시와 인용 따위로 채워져야 논리와 감성과 공감대를 가질 수 있습니다. 짧은 글에 익숙해져버리면 일정 분량의 글을 채우기가 더 힘들어집니다.
ChatGPT도 마찬가지입니다. 작가 스스로 한 편의 글을 완성한 다음, 추가로 검색해서 수정/보완 하는 정도로 활용해야 마땅합니다. 아예 처음부터 인공지능 활용해서 글 쓰겠다 작정하면, 조금만 지나면 혼자서는 아예 글을 쓰지 못하게 되는 '바보'가 되고 말 겁니다.
짧은 명언이든 인공지능이든, 사람이 뭔가 일을 할 때 도움이 되는 도구로써 활용되어야 합니다. 글쓰기 실력이 부족하다 해서 마구잡이로 의존하고 기대면, 결국 자기 실력은 점점 줄어들고 말겠지요. 기계가 인간을 지배하는 세상. 글쎄요. 이런 식으로 가다간 머지 않았다고 볼 수밖에 없겠지요. 중심 잡고, 스스로 실력을 키워야만 미래 세상에서도 생존할 수 있을 겁니다. 짧은 명언과 ChatGPT에 절대로 휘둘리지 말기를 당부드립니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글을 쓸 때는 반드시 구체적으로 표현하라 했습니다. 과일 먹었다고 쓰지 말고 사과 먹었다고 쓰는 것이죠.
지금 제 포스팅 읽으면서 고개 끄덕이는 분 많을 거라 짐작합니다. 아! 그렇구나! 앞으로는 구체적으로 써야지! 하지만, 막상 글을 쓰려고 하면 '구체적'이라는 말보다 '어떻게든 잘 써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히기 쉬울 겁니다.
제가 진행하는 글쓰기/책쓰기 수업에서 입이 닳도록 강조하는 내용이 있는데요. 바로, 초고와 퇴고를 분리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무슨 말인가 하면요. 어떻게 쓰든 나중에 퇴고를 해야 하고, 퇴고는 무조건 시간과 노력을 쏟아부어야 하는 과정이거든요. 그러니까, 초고를 쓸 때만큼은 즐겁고 유쾌하게 쓰면 좋겠다는 말입니다.
구체적으로! 그냥 내 안에서 쏟아져 나오는 모든 내용을 마구 적어 보는 겁니다. 횡설수설? 좋습니다! 글이 산으로 간다고요? 내려오면 되지요! 퇴고할 때 아예 글을 통째로 다시 쓸 수도 있습니다. 퇴고는 백만 번쯤 할 수도 있고요. 그러니, 모든 고민과 염려와 부담은 퇴고 때 하자고요. 초고를 쓸 때는 '구체적'이라는 말만 명심하고, '잘 써야 한다'는 강박은 훌훌 벗어던지길 바랍니다.
정리해 보면, 구체적으로 쓴다는 말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겠습니다. 첫째, 독자가 잘 이해할 수 있도록 하나하나 차근차근 친절하게 설명해주어야 한다는 것이고요. 둘째, 이름을 붙여주거나 상황을 보여주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글을 쓸 때마다 위 두 가지를 꼬옥 챙기기만 하면, 어설프고 부족한 글이 훨씬 좋아질 수 있을 거라고 확신합니다. 핵심은 항상 '정성'입니다.
지금 행복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