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과 타인을 위해
친구들 만나 수다 떨 때도 말을 좀 잘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임에서 마이크를 잡을 때도 이왕이면 그럴 듯한 이야기를 펼쳐내고 싶었다. 사람들이 내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주면 좋겠고, 또 내 말을 듣고 마음이 움직여 어떤 행동을 취하게 된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다는 생각도 했었다.
말 잘하는 사람을 보면 '사람을 움직인다'는 느낌이 든다. 불과 몇 마디 말을 한 것뿐인데, 가슴에 뭔가 징 하고 울림이 돈다. TV에서 정치인들 말하는 걸 보면, 때로 가슴이 답답할 때도 있고 속이 시원할 때도 많다. 사람이 아니라 말이다. 말이 곧 사람이다. 내 입에서 나오는 말들이 누군가의 삶에 선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글 쓰고 강의한다. 결국은 언어다. 말과 글로 먹고 산다는 뜻이다. 말에 힘을 싣고 글에 가치를 얹는다. 어쩌다 작가와 강연가가 되었는지 되짚어 보면, 그 시작이 초라하게 느껴진다. 감옥에 앉아 살 길을 물색하다가 문득 글을 쓰는 데에는 아무런 제약이 없겠다 싶어 시작한 것이 글쓰기다. 글 쓰면서 알게 된 것들, 내가 경험한 것들을 나누겠다 작정했더니 강사가 되었다. 이유야 어쨌든, 말과 글로 먹고 살게 되었으니 이왕이면 좋은 말과 글을 위해 노력하는 것 또한 주어진 소명 아니겠는가.
말을 잘하고 싶다는 사람 자주 만난다. 말을 잘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질문도 많이 받는다. 그들은 내가 말을 제법 잘한다고 느끼나 보다. 괜시리 우쭐해진다. 허나, 말 공부를 제대로 해 본 적이 없는 내가 함부로 이렇다 할 답변을 내놓기가 부끄러웠다. 오랜 고민 끝에 몇 가지 정리해 본다.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생각이니까 걸러서 수렴하길.
첫째, 말을 잘하고 싶다면 입을 다물어야 한다. 침묵! 그렇다. 입을 꾹 다문 채로 다른 사람 말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잘 쓰기 위해서 많이 읽어야 하듯, 잘 말하기 위해서는 제대로 들어야 한다. 나는 감옥에서, 어쩔 수 없이 1년 6개월 동안 입을 다물었다. 침묵 속에 매일 치열하게 독서했던 경험이 말문을 트게 해준 것이다.
둘째, 말을 '이기기 위한' 도구로 여기지 말아야 한다. 똑 부러지게 말해서 상대의 코를 납작하게 만들겠다는 생각 따위는 집어치워야 한다. 하수도 이런 하수가 없다. 시쳇말로 초딩 수준이다. 말의 기본은 표현과 전달이다. 생각, 주장, 의견 따위를 조리 있게 쉽고 분명하게 표현하고 전달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남 꺾으려는 의도로 말을 배우면 제풀에 넘어진다. 말은 천냥빚도 갚지만 인생도 박살낸다. '나'란 존재를 대신하는 게 말이다. 품격 있게 뱉아야 한다.
셋째, 하늘이 두쪽나도 입에 담지 말아야 할 말이 두 종류 있다. 첫 번째는 "죽겠다", "미치겠다", "환장하겠다" 등등 자신을 향한 부정적인 말이다. 두 번째는 "저 사람 때문이다", "세상이 뭣 같다", "내 인생 엉망이다" 등등 타인과 세상을 향한 빈정거림이다. 말을 잘하는 방법은 말을 사랑하는 것이다. 내 입에서 좋은 말만 나와야 더 말을 잘하게 된다.
넷째, 기회가 주어졌을 땐 망설이지 말고 말을 많이 해야 한다. 독서모임 나가서 발표할 기회가 생겼을 때, 강의 듣다가 강사가 마이크를 넘겼을 때, 3분 스피치 등을 해야 할 때...... 공식적으로 말할 기회가 온 것이다. 이럴 땐 죽기살기로 말해야 한다. 잘 못해도 상관없다. 무조건 많이 말해야 한다. 맷집도 키우고, 말하는 습관도 잡을 수 있고, 청중의 피드백도 기대할 만하다. 어떤 일을 잘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기회가 왔을 때 최대한 많이 해 보는 것.
다섯째, 신중하게 말하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 말도 생각에서 비롯된다. 생각이 엉성하면 말도 힘을 잃는다. 무엇에 대해 어떻게 말할 것인지 5초만이라도 생각하고 말하는 습관을 기르면 조금씩 논리와 재치가 생긴다. 아무 말이나 막 한다고 해서 말이 느는 게 아니다. 의미 있는 말, 가치 있는 말, 다른 사람에게 힘과 용기와 위로를 줄 수 있는 말. 좋은 말을 하겠다는 생각으로 신중한 태도 유지하다 보면, 아주 조금씩 말을 잘하게 된다.
다른 일도 마찬가지겠지만, 특히 말은 함께 어울리는 사람들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말 잘하는 사람들과 어울리면 자신도 말을 잘하게 되고, 남 비방하는 사람들과 어울리면 자신도 남을 비방하게 되고, 쓸데없는 가십거리만 늘어놓는 이들과 어울리면 자신도 헛소리만 늘게 된다.
진중하고 무게감 있게, 그러나 타인을 배려하면서도 유머 감각을 잃지 않는 그런 사람을 찾아 적극적으로 어울려야 한다. 만약 주변에 그런 사람이 전혀 없다면, 책을 읽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수 있다. 음독이다. 소리내어 읽으면서 그 책을 쓴 작가와 대화하듯 중얼거리면 말이 글처럼 가지런해진다.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목적의식이다. 말을 잘하려는 이유가 무엇인가? 그 목적이 타인으로부터 칭찬과 인정을 받기 위함인가? 어디 가서 인기 끌고 싶은 욕구 때문인가? 아무도 나한테 꼼짝 못하도록 말로 눌러버릴 작정인가? 아니면, 내 입에서 나오는 좋은 말을 통해 그들의 삶에 보탬이 되고자 하는 것인가.
TV에 말 잘하는 사람 많이 나온다. 어떤 사람은 국민을 웃고 기분 좋게 만든다. 어떤 사람은 강렬한 동기를 부여하여 적극적으로 도전하게 만든다. 어떤 사람은 실의에 빠진 사람 다시 일어서게 만든다. 반대로, 속이고 힘 빼앗고 의욕 잃게 만들고 기분 팍 상하게 하는 그런 말 잘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이왕에 말을 잘하고 싶다면, 세상과 타인을 위하는 말 많이 할 수 있도록 공부하고 노력해야 하겠다.
지금 행복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