툭툭 떠오르는 생각들
때로 재수 없는 글을 적을 때가 있습니다. 남들이 보기에 아니꼬울 수도 있고, 흔해빠진 꼰대의 글처럼 느껴질지도 모릅니다. 내 고집에 묻힌 글을 쓰기도 하고,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를 쓸 때도 많습니다.
'이런 글은 재수가 좀 없지 않을까?'
글을 쓰다 보면 이런 생각이 문득 떠오릅니다. 갑자기 손이 멈추고, 이미 쓴 글을 다시 읽어 보기도 합니다. 고쳐야 할까. 지우고 다시 쓸까. 별 생각이 다 듭니다. 하지만, 고치지 않습니다. 그대로 밀어붙입니다.
재수 없는 글, 아니꼬운 글, 꼰대 같은 글, 고집스러운 글, 개인적인 이야기...... 이러한 평가를 모두 '검열'이라고 부릅니다. 한 번 검열 당하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습니다. 어떤 글을 쓰든 계속 검열관의 목소리가 귓가를 울리곤 하지요.
많은 초보 작가들이 글을 가려서 쓰려고 합니다. 이건 이래서 안 되고, 저건 저래서 안 되고...... 세상 가장 마땅한 글을 쓰기 위해 노력을 기울입니다. 실제로 그런 글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검열관이란 존재 자체가 모든 걸 걸러내는 목소리이기 때문입니다.
머리를 쥐어짠다는 표현도 이런 차원에서 나온 말입니다. 열 개의 아이디어가 떠올라도 모두 어떤 이유로 마땅찮게 느껴지니까 매일 고민만 하는 것이지요. 번쩍이는 영감이 솟아올라 끝내주는 글을 쓰게 될 거란 기대를 무의식중에 하고 있습니다. 절대 닿을 수 없는 저 곳을 향해 손을 뻗고 있는 꼴이죠.
글은, 생각을 '창조해서' 쓰는 게 아니라 머릿속에 담긴 생각을 '받아 적는' 행위입니다. 백지 상태에서 생각을 새로 만들어내는 게 아니라, 이미 존재하는 생각을 끄집어내는 과정입니다. 그러니까, 툭툭 흘러나오는 생각을 검열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쏟아내야 한다는 뜻입니다.
'재수 없는' 글이라는 생각이 드는데도 계속 쓰는 이유는, 그 재수 없는 생각이 내 안에서 흘러나오기 때문에 그냥 받아 적는 겁니다. 재수가 있는지 없는지는 독자가 판단할 문제이고, 저는 그냥 제 생각을 종이에 옮겨 적는 것뿐입니다.
아니꼬운 글, 꼰대 같은 글, 고집스러운 글, 개인적인 이야기...... 모두 마찬가지입니다. 그 모든 것들이 내 안에서 흘러나오는 나의 생각이기 때문에 이런 저런 이유로 가려내지 않고 모조리 다 받아 쓰는 것이죠.
재수 없는 생각이 내 안에 있다면, 그 순간의 나는 재수 없는 인간일 수도 있습니다. 뭐 어떻습니까? 사람은 매 순간 변화하고 내 안에는 수도 없이 다양한 페르소나가 존재하게 마련이지요. 재수 없는 인간은 내가 가진 여러 개의 모습 중 일부에 불과합니다. 그 모습을 솔직하게 드러내는 것은 결코 부끄러운 일이 아닙니다. 감추고 숨기고 아닌 척하는 것이 훨씬 창피한 일 아닐까요.
생각을 받아 적는 것이 어렵게 느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첫째, 자신의 생각에 관심을 가져 본 적이 별로 없기 때문입니다. 둘째, 자신의 생각보다 남들 시선에 더 관심을 갖기 때문입니다. 셋째, 옳고 그름, 좋고 나쁨을 가리려는 습성 때문입니다. 넷째, 그럴 듯한 생각만 써야 한다는 고정관념 때문입니다. 다섯째, 글은 글답게 써야 한다는 강박 때문입니다.
이러한 이유들 때문에 자기 생각을 있는 그대로 술술 적어 나가는 것이 어렵고 힘들게 느껴지는 것이죠. 그래서 저는 일기 쓰기를 강조합니다. 매일 일기를 쓰면 자기 생각을 받아 적는 것에 익숙해집니다. 아무도 보지 않는 글입니다. 마음껏 써도 됩니다. 자기 안에 어떤 생각이 있는가 귀기울여 들을 수 있지요.
'나를 만난다'는 표현도 자주 쓰는데요. 이 또한 같은 맥락입니다. 내가 어떤 생각을 하면서 살아가고 있는지 한 번쯤 짚어 봐야 합니다. 그래야 정체성을 가질 수 있고, 아울러 삶의 목표와 계획도 잘 세울 수가 있습니다. 무슨 생각을 어떻게 하면서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 채, 마냥 열심히 질주만 하는 사람 많은데요. 성공한 후에도 쉽게 무너지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자신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종일 스마트폰으로 SNS 들여다보고 있습니다. 남의 생각, 남의 습관, 남의 일상, 남의 하루, 남의 인생만 쳐다보고 있으니 자신과 자신의 인생은 항상 뒷전일 수밖에요. 어느 순간 인생이 잘 풀리지 않는다 느낄 겁니다. 꽉 막혀서 어디부터 뚫어야 할지 난감할 테지요. 분명 내가 나인데, 내가 누구인지 전혀 알 수 없는 그런 상황이 닥치는 겁니다.
꿈과 목표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인생을 살아갈 것인가, 무엇을 바라는가 물어 보면 시원하게 답하는 사람이 극히 드뭅니다. 다들 열심히 살고 있는데, 정작 무엇을 위해 열심히 살고 있는지는 모른다는 뜻이거든요. 과거 제가 딱 그랬습니다. 전력질주를 하는데도 방향이 어딘지조차 몰랐습니다. 결국은 절벽 아래로 추락했지요. 세상에! 절벽을 향해 전력질주를 하다니요!
이 모든 것이 자신의 생각과 자신의 마음과 자신의 기분에 관심을 두지 않은 탓입니다. 사람은 하루에 약 5만 가지 생각을 한다는데요. 그 중에 몇 가지라도 챙겨서, 적어도 자신이 무슨 생각을 하면서 살아가고 있는지는 제대로 알아야 '잘 산다'고 말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사람들이 자기 머릿속 생각을 그대로 받아 적는 걸 어려워하는 또 다른 이유는, 다른 사람의 시선을 지나치게 의식하기 때문입니다. 내가 이런 글을 쓰면 다른 사람이 뭐라고 할까. 내가 이런 말을 하면 다른 사람은 어떻게 생각할까. 나의 생각과 느낌, 주장을 쓰면서도 계속 타인의 생각과 느낌을 의식하는 것이지요.
인생 주인으로 살아야 한다는 말을 귀가 따갑도록 듣고 읽으면서도, 여전히 '다른 사람이 생각하는 나'로서만 살아가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각자의 성향과 철학과 가치관이 모두 다릅니다. 모두를 만족시킬 수는 없지요. 타인의 입맛에 맞는 인생을 살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매일 무거운 가면을 바꿔 쓰고 사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지치고 힘들지요.
배려라는 듣기 좋은 말로 포장한 탓에 나의 생각과 말의 소중함을 잃고 살게 되었습니다. 어쩌다가 내 주장을 펼치게 되면 참으로 어색하고 민망하게 느껴지기도 하고요.
유튜브 한 번 보세요. 단순히 재미로만 보지 말고, 영상 하나하나에 깃든 '그들의 모습'을 눈여겨 보자는 얘기입니다. 나름 성공한 유튜버들은 한결 같이 자신의 개성을 당당하게 보여주는 이들입니다. 창피한 것도 없습니다. 눈치 보지도 않습니다. 있는 그대로 자신의 모습을 드러낼 뿐이죠.
글 쓰는 것도 살아가는 것도 모두 마찬가지입니다. 누가 뭐라고 할까 봐 주저하거나 망설이지 말고, 자신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어야 합니다. 무조건 보여준다는 것에만 집중하자는 게 아니라, 그 모습을 통해 다른 사람 인생에 도움을 주자는 얘기입니다.
생각은 자연스러운 겁니다. 느낌도 감정도 모두 자연스러운 나의 것이지요. 자꾸 쓰다 보면 생각도 체계를 갖게 됩니다. 누군가를 돕겠다는 선한 마음으로 자기 안에서 울려퍼지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그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 적는다면, 충분히 훌륭한 글이 될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
머리를 쥐어짜는 일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럴 듯한 생각을 찾느라 수시로 일어나는 소중한 생각들을 치워버리지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툭툭 떠오르는 나의 생각을 받아 적는다는 마음으로, 글쓰기가 일상 속으로 스며들기를 바랍니다.
지금 행복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