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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장이 Aug 01. 2023

구름과 싸우는 시간들

지나고 나면 아무것도 아닌 일인데


식당에서 밥을 먹는데, 주문 받는 아주머니가 아무래도 서툴고 부족합니다. 일한 지 얼마 되지 않는 초보 같았습니다. 주문 받는 것도 영 믿음이 안 가고, 밑반찬 가져와 테이블 위에 올리는 모양새도 어설프기 짝이 없습니다. 아니나다를까, 뒤에서 식당 사장에게 연이어 잔소리를 듣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그저 초보려니 하고 이해하려 했습니다. 그런데, 자꾸만 실수를 하고 물도 안 갖다 주고 불러도 답도 없어서 점점 짜증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급기야는 주문한 음식 중 가장 중요한 '밥'을 빼먹고야 말았습니다. 참다 못한 저는 결국 짜증을 확 부렸습니다.


"다 먹고 나갈 때까지 밥을 안 주면 어떻게 하란 말입니까! 몇 번이나 주문 확인해 달라고 말했잖아요!"

그랬더니 그 아주머니 연신 죄송하다며 고개를 숙입니다. 처음이라 잘 몰랐다, 주문 넣는 걸 깜빡했다, 미안하다, 이해해 달라......


다른 음식으로 이미 배 불렀습니다. 작은 밥 공기 한 그릇 안 먹어도 그만이었습니다. 늦게라도 나왔으니 먹으면 또 그뿐이었고요. 일부러 그런 것도 아니고, 불친절하게 손님 무시한 것도 아니고, 그저 잘 몰라서 그런 것뿐인데. 저는 고작 그 정도를 참지 못하고 소리를 지르고 말았습니다.


아마도 그 아주머니, 종일 그런 실수를 되풀이했을 겁니다. 저 못지않게 성질 더러운 손님들로부터 온갖 심한 소리를 들었을 테고, 그 때문에 식당 사장한테도 좋지 않은 잔소리를 뒤집어써야 했을 테지요.


형편이 어려운 사람일 겁니다. 돈이 필요했겠지요. 뭐라도 해야겠는데, 마땅한 일자리가 없어서 식당 잡일이라도 겨우 잡았을 겁니다. 그렇게 종일 일하고 받는 돈으로 생계를 유지할 테고 아이들 교육도 시킬 테지요. 나름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데, 그저 초보라 서툴고 잘 모르는 것뿐입니다.


인생 전체를 놓고 볼 때, 그 날 그 식당에서 초보 아주머니와 있었던 일은 얼마만큼의 비중을 차지할까요? 제 인생에서 얼마나 중요한 일일까요? 그 일이 제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요? 저는 과연 그 날 그 일 때문에 무엇을 얼마나 손해 본 것일까요?


아무것도 아닙니다. 티끌 만큼의 문제도 아닙니다. 어떤 영향도 미치지 않습니다. 제 삶에 아무런 문제도 일으키지 않습니다. 그냥 아무 일도 아닙니다. 제가 짜증을 부리지 않았어도 될 일입니다. 굳이 소리를 지르지 않아도 될 일이었습니다.


우리는 일상에서 얼마나 자주 또 많이 구름과 싸움질을 하면서 살아가고 있는 걸까요. 아무 의미도 없는 분노와 미움과 시기와 질투와 짜증으로 매 순간 소중한 인생을 낭비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봅니다.


법정 다툼 해 보았습니다. 감옥에 가느냐 마느냐. 제 인생에 중요한 문제였지요. 이 정도면 싸울 만한 가치가 있지 않은가 생각하겠지만, 세월 지나고 돌아보니 그 또한 아무 의미 없는 다툼이었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제가 정당하고 이길 싸움이었다면, 애초부터 싸울 이유가 없었을 테고요. 제가 지고 감옥에 갈 일이었다면, 싸워 봤자 아무 소용 없는 일인 겁니다.


사람들은 늘 자신의 정당함을 주장하고, 내가 옳다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 촉을 곤두세운 채 살아갑니다. 일상에서 수시로 벌어지는 갈등과 오해와 다툼도 모두 "내가 옳다"는 사고방식에서 비롯되는 것이지요.


인생 절반쯤 살고 보니까, 지난 세월 숱한 싸움에서 모두 제가 이겼다 한들 이제 와 남는 게 뭐가 있겠나 싶은 허탈함께 빠져듭니다. 또, 그 모든 싸움에서 제가 다 졌다 한들 뭐 그리 억울하고 분할까 싶은 생각도 들고요. 아무리 기억을 떠올려 봐도 누구와 왜 싸웠고 왜 기분 상했고 왜 화가 났었는지 세 가지도 기억나지 않습니다. 당시에는 피를 토하며 싸웠을 텐데 말이죠.


어린 시절, 동네마다 소독약을 뿌리고 다리는 일명 "모기차"가 있었습니다. 오토바이 뒤에다 소독약 분무기를 설치한 채 동네를 다니며 뿌연 연기를 뿜어댔지요. 친구들과 함께 모기차 뒤를 쫓으며 허옇게 뿜어져 나오는 연기를 악당 삼아 신나게 주먹 뻗었던 기억이 납니다.


어쩌면 우리가 일상에서 마주하는 모든 일들이 모기차 뒤에서 뿜어져 나오는 연기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그 순간에는 세상을 집어삼킬 듯 세차게 뿜어져 나오지만, 조금만 시간이 지나고 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사라지고 마는 연기.


있는 힘을 다해 싸워야 할 존재는 세상이나 타인이 아니라 바로 나 자신입니다. 공부하고 연구하고 집중하면서 더 나은 삶을 추구하고, 또 내가 가진 힘과 능력을 이용해 어려운 이웃을 돕는 것.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싸움 아닐까 생각합니다.


속상하고 화나면 상대방 멱살이라도 쥐고 싶고, 집에 오면 잠도 안 올 정도로 씩씩거리곤 합니다. 조금만 뒤로 물러나 생각해 보면, 그 싸움에서 이기든 지든 인생에 아무 상관 없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마치 세상 억울한 일을 당한 듯 화를 내고 속상해 하지요.


이렇게 글을 쓰면서도, 내일이 되면 또 어떤 사소한 문제로 속을 뒤집고 불 같이 화를 낼지도 모를 일입니다. 그런 제 모습을 보면서 한심하고 안타까운 마음을 갖게 될 테고요.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내기 위해서라도 마음을 크게 가질 필요가 있겠습니다. 아무것도 아닌 일. 네, 맞습니다. 일상에서 맞딱뜨리는 모든 문제가 사실은 아무것도 아닌 일이지요.


아이들은 나름 큰 문제라 생각하고 싸우지만, 어른 입장에서 보면 별 것도 아닌 때가 많거든요. 그렇게 보는 이유는, 어른의 생각이 아이보다 크기 때문 아닐까요. 다 큰 어른이 여전히 사소한 문제로 누군가와 다투거나 갈등을 일으키거나 마음 썩히고 있다면, 그것은 여전히 생각이 아이만 하다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도 통한 사람처럼 모든 문제 앞에서 평정심 유지하기는 어렵겠지만, 적어도 지금보다 마음 불편한 때를 절반으로만 줄여도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지나고 나면 모두가 헛된 망상일 뿐이고, 이겨 봐야 남는 것도 없고, 진다 해도 손해 볼 일 없습니다. 조금만 덜 화 내고, 조금만 덜 짜증 내고, 조금만 덜 속상하면 좋겠습니다.


지금 행복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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