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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장이 Aug 06. 2023

글벽(癖), 글치(痴), 멀고도 험한 길

글 쓰는 삶을 살기로 했다


뭔가에 미쳐 있는 사람을 '벽(癖)에 들렸다' 하고, 온통 그것밖에는 알지 못하는 이를 바보 또는 쪼다라는 뜻으로 치(痴), 즉 멍청이라 합니다. 정상적인 삶에서 벗어나 있다는 의미의 벽과 치는 흔히 '좋지 않다'는 뜻으로 해석되는 경우가 많으나, 한 가지 일에 푹 빠져 돈이나 명예 따위에 연연하지 않는 삶의 태도로서는 존경할 만하다 생각합니다.


누군가 저를 글벽에 들렸다, 혹은 글치라 불러준다면 황송하고 감사할 따름이겠습니다. 그러나, 아직은 벽과 치에 이르려면 한참 멀었고, 또 죽기 전에 그런 수준에 이를 수나 있을지 아득하기만 합니다.


모든 걸 내려놓아야 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또한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고 있는 가장으로서 현실을 모른 척할 수 없다는 변명과 핑계도 지울 수가 없습니다. 돈도 벌어야 하고, 집안일도 해야 하고, 부모님도 돌봐야 합니다.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랄 지경에 나 좋다고 맨날 글만 쓰고 앉아 있을 수는 없으니 애당초 글벽이나 글치로는 자격이 없나 봅니다.


인터넷 시대를 넘어 스마트폰과 유튜브, 그리고 인공지능 시대에까지 이르게 되었지요. 때문에, 한 가지 일에만 몰두하는 삶보다는 다양한 일을 두루 할 수 있는 능력이 높이 평가되고 있는 듯합니다. N잡러라는 말이 유행처럼 번지고, 실제로 여러 개의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많아졌으니 시대 흐름이라 받아들여야 할런지요.


진탕 고생도 하고, 성공과 실패를 여러 차례 겪다 보니 깨달은 바가 적지 않습니다. 세상이 무엇을 원하든, 시대가 어떤 삶을 바라든, 내가 중심을 갖고 살아가면 그것이 곧 최고라는 사실입니다. 한 때 저도 '이렇게 살아야 마땅하다'는 논리에 젖기도 했습니다. 무작성 사직서를 내고 사업을 시작했던 때가 바로 그러합니다.


아! 얼마나 후회를 했던가요! 인생 절반 쌓아올렸던 모든 걸 잃어버린 채 나락으로 떨어졌습니다. 그때 깨달았습니다. 대세라는 것을 무조건 따르면 위험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N잡러 앞에서 당당히 거절의 의사를 밝힙니다. 저는 글 쓰는 사람으로, 글만 쓰는 사람으로 남은 인생을 살아가려 합니다. 글 쓰는 삶이 얼마나 가치 있고 참된 일인지 많은 사람들에게 전하며 함께 쓰는 세상을 만들고자 합니다. 이것이 저의 소명이고 책임이라고 확신합니다.


글 잘 쓰는 사람을 한 줄로 세우면, 아마도 저는 중간보다 한참 뒤쪽에 서게 될 겁니다. 상관 없습니다. 이제 저한테는 글을 잘 쓴다는 개념보다 매일 쓰는 사람이라는 존재 가치가 훨씬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지금 쓰고 있는 이런 내용도 사람들 모아 놓고 하려면 준비해야 할 것이 많겠지요. 허나, SNS라는 유례 없던 마당이 펼쳐진 덕분에 노트북 하나만 있으면 언제든 제 주장과 느낌과 생각과 의견을 드러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저는 참으로 시절도 잘 타고났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제도 머리 복잡한 일 많았습니다. 일 때문에 힘들고 사람 때문에 골치 아팠습니다. 누구나 일상에서 만나는 나름의 어려움과 스트레스 안고 살아가는 거겠지요. 다행스럽게도, 저는 이렇게 혼란스러울 때마다 글을 쓰면서 마음을 정리합니다. 노트북만 펼치면 전혀 다른 세상을 즉시 만날 수 있습니다. 세상에! 내 이야기에만 귀를 기울여주는 백지가 있다니요!


이렇게 쓴 글을 하나씩 모아 정리하면 책이 되기도 합니다. 매일 글을 쓰고, 글이 모이면 책을 내고, 그 책을 읽은 독자들이 저의 강의를 듣고, 그래서 그들도 글을 쓰고, 또 다른 사람들이 읽고...... 아주 조금씩, 미약한 힘이지만 글 쓰고 책 읽는 세상을 만들어가는 것이지요.


조용한 곳을 일부러 찾을 필요도 없습니다. 글을 쓰기 시작하면 세상이 고요해집니다. 지금도 머리를 들기만 하면 주변 소음이 귓속으로 쏟아져 들어옵니다. 저 바깥 도로 자동차 소리, 윗층 공사하는 소리, 아버지가 틀어놓은 트로트 음악 소리, 부엌에서 어머니와 아내가 음식을 장만하는 소리...... 그러다가 또 고개를 숙여 글을 쓰기 시작하면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습니다. 글 쓰는 세상은 고요하고 평온합니다.


처참한 감옥 생활 버텨낼 수 있었던 것도 글을 쓴 덕분이고요. 막노동 현장에서 삽질하면서 일당 몇 푼 받고도 견딜 수 있었던 것은 매일 글을 썼기 때문입니다. 알코올 중독에서 벗어나 술을 딱 끊을 수 있었던 것도 글쓰기 덕분이고, 암 선고를 받고도 덤덤하게 이겨내고 있는 것도 글을 쓰고 있는 때문입니다.


바라는 것이 있을 때 글을 씁니다. 속상한 일이 있을 때도 글을 쓰고요. 마음 번잡하거나, 인생 생각할 때도 글을 씁니다. 화가 나도 글을 쓰고 행복해도 글을 씁니다. 무인도에 던져놔도 노트북만 있으면 생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반성도 합니다. 이토록 글 쓰는 걸 좋아하고, 또 보람과 가치 있다고 믿으면서도 아직 더 많은 이들에게 쓰는 삶을 전하지 못했다는 사실에 고개가 숙여집니다. 더 노력해야 하고, 더 치열해야 한다는 각오를 하게 됩니다.


글벽이 되고 글치가 되면 좋겠습니다. 언젠가 사람들이 저를 기억하면서 "글 쓰는 것밖에 모르던 바보"라고 떠올려준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습니다. 바보를 목표로 살아가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지금 행복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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