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글장이 Aug 05. 2023

좋을 땐 좋다고 쓰고, 싫을 땐 싫다고 쓰면 됩니다

그럴 듯한 글 말고 있는 그대로 쓰기


이성을 만나 사랑에 빠집니다. 한동안은 세상을 다 가진 듯합니다. 비가 와도 축복이고 날이 더워도 행복이고 해가 져도 아름다움입니다. 마냥 좋기만 합니다. 입에 헤 벌어지고 밥 먹을 때도 싱글벙글입니다. 얼마나 갈까요? 네, 맞습니다. 그리 오래 가지 않습니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고 나면, 그토록 사랑했던 사람의 단점이 하나 둘 보이기 시작합니다. 머리가 길어서 예뻐 보였는데, 머리가 길어서 지저분해 보입니다. 순대국을 좋아해서 나랑 입맛이 같나 보다 좋아했는데, 순대국을 게걸스럽게 먹는 모습에 확 질리기도 합니다.


이젠 헤어져야겠다 생각하고 기회를 보고 있는데, 그러면 또 예쁜 구석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추억도 쌓이고 정도 들었고 서로 마음 이해하는 부분도 많고, 그래서 다시 열렬히 사랑하게 되기도 합니다. 반면, 도저히 뜻이 맞지 않고 성격 차이도 커서 헤어지는 경우도 없지 않겠지요.


자, 이제 글을 한 번 써 봅시다. 어떻게 써야 할까요? 사랑한다고 쓰면 될까요? 밉다고 쓰는 게 맞을까요? 아니면, 사랑하긴 하는데 미운 구석 많아서 헤어지고 싶기도 하고 또 사랑스럽기도 하고 헷갈려 죽겠다고 쓸까요?


책을 쓰기 위해서는 약 40편의 글을 써야 합니다. 오락가락하는 마음을 담아 책으로 쓰려니 복잡하고 어렵게 느껴집니다. 이럴 땐, 그때그때 자기 감정을 솔직하게 쓰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오늘은 사랑스러웠다 하면, 그냥 사랑스러웠던 모습을 그대로 쓰면 됩니다. 어제 미웠던 얘기도 쓰지 말고 내일 어떨까 하는 내용도 담을 필요 없습니다. 오늘 있었던 이야기만 씁니다. 다음 날이 되었는데, 이번에 아주 진상이다 싶은 마음이 들 수 있겠지요. 그럴 땐 또 그 날 있었던 진상 모습을 그대로 쓰면 됩니다. 자기 마음이 변화했다는 사실을 언급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냥 오늘은 아주 진상이었다고, 있는 그대로 쓰기만 하면 됩니다.


책 한 권 분량을 다 쓰고 나서 읽어 보면 어떨까요? 아주 뒤죽박죽 얽히고 설켜 있겠지요. 이 사람을 사랑하는 건지 미워하는 건지 아무 감정 없는 건지 헷갈리기도 할 겁니다. 어떤 날은 지독하게 좋아했다가, 또 어떤 날은 미웠다가, 아무 감정 없는 날도 글에 다 담겨 있을 겁니다. 이 책의 제목이 바로 <사랑>입니다.


다들 한 번쯤 사랑해 봤을 테니 잘 알 겁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시종일관 똑같은 감정이 이어지는 사랑은 없습니다. 처음에는 마냥 좋기만 하다가, 당장이라도 헤어지고 싶었다가, 또 그냥 살다가, 어느 순간 이 사람뿐이구나 싶다가, 또 싸웁니다. 영화나 소설에서는 영원한 사랑이 아름답게 그려지는 경우 많습니다만, 현실에서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억지로 꾸미거나 아름답게 묘사하기 위해 애쓸 필요 없습니다. 좋으면 좋다고 쓰고, 미우면 밉다고 쓰면 됩니다. 이렇게 있는 그대로 내 마음을 받아 적는 연습을 하면 글 쓰는 게 그리 어렵게 느껴지지 않을 수 있습니다. 글쓰기가 어렵고 힘들게 느껴지는 이유는, "그럴 듯한 사랑 이야기"를 쓰려는 욕심과 기대 때문입니다.


사람의 마음은 시시각각 변합니다. 똑같은 일상인 것 같지만, 내 마음이 다르기 때문에 매일 다른 삶을 살아가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글을 잘 쓰고 싶다면, 가장 먼저 자신의 마음 변화부터 읽을 수 있어야 합니다.


모든 게 좋아 보이는 날도 있고, 만사가 귀찮은 날도 있지요. 이렇게 마음이 시시때때로 달라지고 오르락내리락 한다는 본성을 이해하고 나면, 그걸 그대로 적기만 해도 훌륭한 글이 된다는 사실도 받아들이게 될 겁니다. 아울러,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일관되게 유지하려는 욕심과 고집도 내려놓게 될 테고요.


마음이 변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기 때문에 글 쓰는 것도 힘들고 인간관계도 어려운 겁니다. 한결 같다는 말, 참으로 어렵고 힘든 표현입니다. 한 번씩 삶을 돌아보면, 한결 같았던 적이 거의 없습니다. 조금 바뀌었는가 많이 바뀌었는가 정도 차이겠지요.


글을 쓰자 책을 쓰자 일기를 쓰자 목에 핏대를 세우고 강조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내가 변화해 가는 과정을 하루하루 기록하고 나중에 읽어 보면, 죽기살기로 내가 옳다고 우기던 순간들이 얼마나 부끄러운 줄 모릅니다. 그 순간이 바로 성찰이고 반성이고 성장하는 때입니다.


참한 글만 쓰려고 하면 힘들고 어려워서 금방 포기하게 됩니다. 좋을 땐 좋다고 쓰고 싫을 땐 싫다고 써야 가벼운 마음으로 꾸준히 글을 쓸 수가 있습니다.


지금 행복하십시오!


작가의 이전글 열등감과 우월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