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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장이 Aug 16. 2023

자식보다 내 인생

사자의 교육법


한창 아빠가 필요한 시기에 곁에 있어주지 못했습니다. 죄책감 느꼈지요. 평생 살면서 갚아야겠다 생각했습니다. 자식에게 씻지 못할 죄를 지었으니, 아빠로서 헌신하고 희생하며 살아갈 거라고 다짐도 했습니다.


책 읽고 글 쓰고 사색하면서 10년 살았습니다.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저는 아들에게 죄를 지은 게 아니었습니다. 죄를 지은 대상은 따로 있었고, 그에 따른 법적 처벌도 달게 받았습니다. 저는, 누구보다 떳떳하게 살아도 되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아들 앞에서 부끄러운 아빠가 아니라, 누구 앞에서도 당당한 사람으로 살아가기로 결심했습니다.


아들은 스무 살이 되었습니다. 성인이 된 거죠. 이전까지 아들을 보살피고 챙겨야 할 의무가 부모에게 있었다면, 이제부터는 아들 혼자 판단하고 선택하고 결정해야 합니다. 덩치만 크다고 어른이 아니지요. 스스로 결정하고, 자신의 결정에 책임질 수 있을 때 비로소 어른이 되는 겁니다.


도움이 필요하다고 말하면, 제가 도와줄 수 있는 부분에 대해서는 기꺼이 도와줄 겁니다. 하지만, 그 도움이 일방적인 희생은 아닙니다. 제가 다 해주는 게 아니라, 도움이 필요한 부분에 대해서만 도와주는 거니까요. 아들에게 무슨 대가를 바라지도 않을 겁니다. 제가 판단해서, 줄 만하면 줄 것이고 아니다 싶으면 말 겁니다.


아이고 내 새끼 오냐오냐. 저 이런 거 절대로 하지 않을 겁니다. 과거에도 한 적 없고, 앞으로도 하지 않습니다. 자식 망치는 길입니다. 자식을 쓰레기로 만드는 방법입니다. 부모 죽고 나면 자식 홀로 남아 인생 망치라는 가르침이죠. 부모가 되어서 이런 내용도 모른 채 살아간다면, 그것이야말로 무지이고 불행입니다.


귀엽게 안아줄 나이가 있고요. 독립적으로 키워야 할 시기가 있습니다. 어른으로 인정해주어야 할 때도 있지요. 사람이 태어나 성장한다는 것은, 몸만 커진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스무 살 넘은 자녀가 아직도 엄마, 아빠 꼬치꼬치 묻고 도와달라 하고 기대어 산다면, 부모는 더할 수 없을 만큼의 잘못을 인정해야 합니다. 너무나 잘못 키웠으니까요. 이렇게 키운 자식은 사회에 나가도 민폐만 끼치며 살게 될 겁니다. 사회적으로도 악입니다.


제 아들을 포함해서, 정신적으로 성숙하지 않은 젊은이들이 많다는 사실에 안타까운 마음 가득합니다. 조금만 대화를 나눠 보면, 초등학생이나 중학생과 나누는 그것과 별 다를 바가 없습니다. 꿈도 없고 목표도 없고 하고 싶은 일도 없고 경험도 부족하고 할 줄 아는 것도 없습니다. 뭐 하나 결정하려면 엄마한테 물어 봐야 한다고 합니다.


가치관과 철학 정도 수준은 아예 기대조차 할 수가 없습니다. 오늘 무엇을 했으며 내일 무엇을 할 거냐는 질문에는 친구와 약속 있고 술 마실 거라는 대답이 가장 많았습니다. 먹고 마시고 연애하고. 다른 동물도 다 하는 행위지요. 인간만이 할 수 있는 능력 계발이나 사색 또는 비전을 그리는 젊은 친구는 참으로 찾기가 어렵습니다.


아들이 다니는 대학에 "독서 동아리"가 없다고 합니다. 이름뿐인 모임만 있고, 맨날 만나서 술만 마신다고 하네요. 읽지도 않고, 토론도 하지 않고, 아예 독서모임 자체도 없다고 합니다. 다른 대학에는 있을 수도 있겠지요. 독서모임 충실히 하는 젊은이도 많을 겁니다. 중요한 것은, 절대 다수가 책을 아예 읽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많이 늦었지만, 지금부터라도 자식을 독립시켜야 합니다. 무조건 집에서 내보내는 것만이 독립이 아닙니다. 생각하고 판단하고 선택하고 결정하고, 그리고 그 모든 것들에 대한 책임도 스스로 지게 해야 합니다.


스마트폰 사는데 엄마가 따라가고, 친구들 만나면 엄마랑 통화하기 급급하고, 어딜 가나 엄마가 태워주고, 시험 칠 때 엄마가 따라가고, 회사 면접 보는 곳까지 엄마가 따라가고, 결혼해도 엄마가 일일이 간섭하고...... 그러다 엄마 죽고 나면 이제 자식은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 같은 고립감과 공황 상태에 빠지게 될 겁니다. 남은 인생 안 봐도 뻔합니다.


부모의 가장 큰 행복은, 자식이 독립해서 하나의 가정을 꾸리고 잘 챙겨가며 살아가는 모습을 보는 것이죠. 부모는 자식에 대해서만큼은 소유욕도 버려야 하고, 통제력도 행사하려 들지 말아야 하고, 뭔가 돌려받겠다는 보상심리도 내려놓아야 합니다. 각자 자기 인생 챙기며 살면 됩니다. 내가 내 인생 잘 꾸려나가는 걸 보여주면 아들도 잘 살 테고요. 내가 반듯하고 정의롭게 사랑 실천하며 살면, 자식도 그 모습 잘 보고 배울 겁니다.


"우리 애는 아직 어려요."

"우리 애는 아무것도 할 줄 몰라요."


이렇게 얘기하는 엄마를 만난 적 있습니다. 딸 나이가 서른 셋이라 하더군요. 제가 기가 차서 두 번 세 번 물었습니다. 정말로 나이가 서른 셋 맞냐고 말이죠. "우리 애"라니요. 미친 거 아닌가요? 서른 셋이나 된 어른을 가리키는 말로 "우리 애"가 적당한 표현 맞습니까?


아직 어리다? 아무것도 할 줄 모른다? 자랑이다 이 양반아! 그걸 지금 말이라고 합니까. 세상에 서른 셋이나 된 자식을 아직도 품에 끼고 옹냐옹냐 하면서 살고 있다니 영화에 나올 법한 이야기입니다.


세월이 많이 흐른 후에, 2023년 즈음에 부모였던 사람들 모조리 욕 먹지 않으려면 지금 정신 차려야 합니다. 저도 아들 하나뿐이고, 누구보다 자식을 끔찍이 사랑하는 아빠입니다. 그러나, 사랑한다는 이유로 품에서 놓지 않으면 자식은 영원히 성숙할 수가 없습니다.


자식을 품에 꼭꼭 끼고 살려는 부모를 가만히 보면, 그 부모 인생도 뭐 그다지 바람직하지 않은 경우 많습니다. 다른 사람 알기를 우습게 알고, 막무가내 고집불통에다가, 자신의 이익만 챙기려는 습성. 자기 인생도 하나 제대로 건사하지 못하면서 자식까지 품에 안고 살려니 이게 제대로 되겠느냐 말이지요.


멈추고 생각하고 공부해야 합니다. 자신의 인생을 반듯하고 행복하게 만드는 것이 유일한 길입니다. 내가 잘 살면 자식도 잘 삽니다. 내가 불행하면 자식도 불행할 가능성이 매우 큽니다. 사자의 교육법을 배워야 합니다. 절벽 끝에서 밀고, 살아남는 자식을 인정하는 것이지요.


세상은 절벽보다 더 험하고 거칩니다. 이런 세상에서 당당히 살아내기 위해서는 지금부터라도 강인함과 독립심, 판단력, 책임감 등을 철저하게 배우고 익히도록 기회를 주어야 합니다. 용돈 많이 주고 하고 싶은 거 다 해주는 게 자식을 망치는 길이란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안타깝게도, 이미 자기 고집대로 자식을 키우고 있는 사람이 각성하는 일은 거의 없을 테지요.


저는 제 인생 멋지게 살아갈 겁니다. 아들은 아들의 인생을 잘 살아갈 테고요. 나중에 둘이 마주 앉아 서로의 인생을 떳떳하게 보여주는, 남자 대 남자로서 대화하는 날 기대해 봅니다.


지금 행복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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