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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장이 Aug 19. 2023

쓰기와 읽기, 내가 되는 시간

쓰고 읽을 수 있어 다행이다


모든 걸 잃고 나서, 읽고 싶었다. 40년쯤 살고 난 이후의 일이었다. 내가 책을 읽는다는 말에 가장 놀란 사람은 누나였다. 누나는 어릴 적부터 독서광이었다. 그런 누나를 보며 책은 대체 왜 읽느냐고, 어른이 되어서까지 볼멘 소리를 했던 나였다. 그런 내가 책에 '파묻혀' 살고 있다 하니 아마도 누나는 전혀 믿지 못하였을 터다.


읽어야 할 필요를 느껴서 읽은 것도 아니었고, 읽어야 한다는 강박 때문에 책을 펼친 것도 아니었다. 말 그대로 읽고 싶은 욕망에 휩싸여 나도 모르게 책을 찾았고, 꼼짝도 하지 않은 채 몇 시간이고 책과 함께 시간을 보냈다. 재미있는 것은, 독서 초기에 읽은 책의 내용을 대부분 이해하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영어도 모르는 사람이 영어책 펼쳐놓고 있듯이, 글자만 읽고 맥락은 몰랐다.


3개월쯤 지독하다 싶을 정도로 읽고 나서야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30년도 아니고 3년도 아니고, 책 읽은지 고작 3개월만에 글을 쓰고 싶다는 충동이 일어난 것은 두 가지 이유에서다. 첫째는, 감옥이라는 특수한 환경에서의 3개월은 바깥 세상에서의 3년과 맞먹기 때문이다. 집중해서 많이 읽었다는 얘기다. 둘째는, 내 안에 가득 찬 울분과 분노와 원망이 도저히 견디지 못해 터져나오기 시작한 때문이다. 쓰지 않고는 버틸 수 없었다는 의미다.


책을 읽어도 남는 게 없다며 하소연하는 이들을 자주 만난다. 답답한 심정은 충분히 이해한다. 나도 그랬으니까요. 다르게 생각해야 한다. '남는 게 없다고 느끼는' 바로 그 시간을 버텨야 한다. 장사를 시작해도 약 2년 정도는 남는 게 없다. 운동을 시작해도 1년 정도는 남는 게 없다. 영어를 공부해도 1년 정도는 달라지는 게 별로 없다. 무슨 일이든 숙성의 시간이 필요하다. 남는 게 없다고 느껴지겠지만, 계속 읽다 보면 하나도 빠짐 없이 고스란히 남았구나 깨닫는 때가 올 것이다.


무슨 책을 읽어야 할지 모르겠다는 사람도 많다. 일단 가까운 대형 서점으로 가 보라. 그곳에 진열된 수많은 책을 직접 손으로 만져가며 읽을 만하다 싶은 책을 골라 보아야 한다. 누군가의 추천 도서나 베스트셀러 목록에서 고르지 말고, 직접 '손으로 만지면서' 골라야 한다. 책과의 조우! 그렇게 고른 책을 집에 와서 읽다 보면, 잘 골랐다 싶을 때도 있고 괜히 샀다 싶은 때도 있을 터다. 이 과정을 반복하면 책 고르는 눈이 생긴다. 반드시 직접 경험해야만 터득할 수 있는 진리다.


책 읽는 속도가 너무 느리다며 걱정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묻고 싶다. 왜 그렇게 책을 빨리 읽으려 하는지. 누가 쫓아오는가? 아니면, 마감이 정해져 있는가? 밥도 천천히 먹고, 똥도 느긋하게 싸고, 수다도 실컷 떨고, 잠도 많이 자고, 사는 것도 치열하지 않은데 왜 독서 얘기만 나오면 '급하게' 구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에둘러 말할 필요도 없이, 느리게 읽어도 된다. 자기 속도에 맞게 읽으면 된다. 속독 배우고 공부하는 시간에 그냥 책 한 페이지 읽는 게 훨씬 낫다. 참고로, 나는 철저한 슬로리딩과 문장독서만으로 전과자 파산자 알코올중독자 막노동꾼의 삶에서 작가와 강연가의 삶으로 탈바꿈했다. 하루 일당 9만원 벌던 내가 올해 8월 현재 순수익 5억을 넘었다. 굳이 수익까지 밝히는 이유는, 슬로리딩의 효과를 증명하기 위함이다. 차라리 느리게 읽어라. 철저히 느리게 읽어라. 하루 한 페이지만 읽어도 제대로 읽기만 하면 충분히 훌륭한 독서라 할 수 있다.


처음엔 할 말이 많아서 글을 썼다. 쓰다 보니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몰랐다. 그걸 좀 제대로 알고 싶어서 '쓰기 공부'도 병행했다. 공부라 했지만 별 건 없었다. 책 읽고 글 쓰고, 글 쓰고 책 읽고. 책은 술술 읽히는데 왜 내 글은 자꾸 막히는가 비교하며 풀었다. 시간도 오래 걸렸고 힘들고 지난한 과정이었지만, 지금은 실시간 집필과 라이브 퇴고까지 가능한 정도에 이르렀으니 그 고통스러웠던 시간들이 모조리 소중했다고 말할 수 있겠다.


글을 쓰면서 가장 좋았던 점은, 내가 어떤 생각을 하면서 살고 있는가를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살면서 단 한 번도 '나'를 생각해 본 적 없었다. 낯설고 새삼스럽게 느껴졌다. 무엇을 좋아하고, 어떤 걸 꺼려하며, 어느 방향으로 나아가려 하는가. 내가 무너진 이유는 바로 이러한 자기 탐구가 전혀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랬구나. 그래서 내가 추락했구나. 글 쓰면서 얼마나 울었는지 말도 못한다.


돈 되는 글쓰기? 팔리는 책쓰기? 무조건 나쁘다고는 볼 수 없겠지만, 단어 하나 사용하는 데에도 생각 좀 했으면 좋겠다는 의견이다. 말은 경험을 표현하는 수단이기도 하지만, 말이 경험을 만들기도 한다. "더워 죽겠다!"라고 말하는 순간, 오늘의 더위는 더 이상 달라질 가능성이 없지 않은가. "돈 되는, 팔리는" 등과 같은 어휘가 우리의 머릿속을 계산과 타산과 잇속으로만 가득 채우게 된다. 이러한 습성은 사람과 인생에까지 번지게 마련이다. 돈 되는 사람, 팔리는 인생. 아! 진짜 최악이다!


독서를 시작한 것도 어떠한 목적이나 이익 없이 '그냥' 한 것이고, 글을 쓰기 시작한 것도 내 안에서 뿜어져 나오는 감정을 주체할 수 없어 '그냥' 적기 시작한 거다. 이후로 나는 쓰기와 읽기를 통해 새로운 삶을 만났고, 두 번째 인생 근사하게 누리며 행복하게 살고 있다.


때문에, 어떤 일을 하든 '그냥'을 전부로 삼는다. 꿈과 목표가 중요하다는 말 귀가 따갑도록 들었지만, 내게는 맞지 않는 듯하다. '그냥' 하면서 주어진 오늘을 충실하게 산다. 앞으로의 목표가 있다면, 내일도 오늘처럼! 그렇게 살려면 오늘에 아쉬움과 후회가 없어야 한다. 매일 만나는 하루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 내 삶을 바르게 만들어가는 유일한 길임을 알았다.


쓸 수 있고 읽을 수 있다면 내가 처한 환경이나 조건이나 서 있는 자리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자연스럽게 불평과 불만이 줄었고, 고요한 시간을 즐기게 되었다. 일상의 밀도가 높아졌고, 삶이 충만하다는 말의 의미도 깨달을 수 있었다.


'나'란 존재와 '나의 인생'에 세상에서 가장 소중하다는 사실을 쓰기와 읽기를 통해 배웠으니, 더 바랄 것이 없다. 유일하게 온전한 내가 되는 시간이라 행복하기 더 없다.


지금 행복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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