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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장이 Aug 23. 2023

책 읽고 영향 받은 사람이 글도 쓸 수 있는 법

얻은 만큼 나눌 수 있다


개그맨들 특징이 있습니다. 많이 웃는다는 것. 그들은 남을 웃기기 전에 먼저 많이 웃었습니다. 자신이 웃는 즐거움을 알기 때문에 그 즐거움을 남에게 선사하는 것이죠. 웃지 않는 사람이 개그맨이 될 수는 없습니다. 웃지 않는 사람이 남을 웃기며 살아야겠다는 결심을 할 리도 없습니다. 웃음의 행복을 먼저 알고, 그런 다음 남을 웃기면서 살아가는 직업을 택하는 것이죠.


다른 사람에게 감동을 전하기 위해서는, 자신이 먼저 감동하는 법을 알아야 합니다. 꽃이 피고 지는 걸 보면서도 무감각하고, 아침 해가 뜨는 것을 보고도 아무런 감흥을 느끼지 못하고, 버스에서 내리는 노모를 등에 업는 아들을 보면서도 가슴 시큰하지 않는 사람은 결코 타인에게 감동을 선사할 수 없습니다.


누군가의 아픔에 공감한다는 말은, 바로 그 누군가가 되어 실제 아픔을 느낀다는 말과 같습니다. 공감이란, 그저 쯧쯧 혀만 차면서 불쌍하다 말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내가 바로 그가 되는 것. 오롯이 그의 입장이 되어 보는 것. 지하철 통로 찬 바닥에 누워 지내는 노숙자를 보면서 안됐다 느끼는 게 공감이 아니라, 그 차가운 바닥에 누워 끼니를 걱정해야 하는 노숙자의 심정이 직접 되어 보는 것이야말로 공감이할 수 있겠지요. 아파 본 사람만이 아픔에 공감할 수 있습니다.


감옥에서 처음으로 책을 읽었습니다. 이전까지만 해도 내가 세상에서 제일 고통스럽고 처참하다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책 속에 등장하는 모든 실존 인물들의 삶이 저보다 훨씬 열악했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지요. 그들의 삶은 상상조차 하기 힘들었습니다. 나 같으면 어땠을까. 힘들고 어려웠지만, 그들의 삶을 하나하나 체험해 보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책을 읽는 과정에서 그들의 삶을 체험했고, 아주 조금 이해와 공감이란 것을 하게 되었습니다. 감옥에 앉아 있으면서 여러 개의 삶을 살아 보는 독특한 경험을 한 것이죠. 결국 저는, 다시 살아야겠다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도저히 답을 찾기가 힘들었지요. 당장 할 수 있는 일부터 찾아야 했는데, 감옥 안에서 무엇을 할 수 있었겠습니까. 내가 책 읽으면서 용기와 희망을 얻었듯이, 혹시 누군가 내 이야기를 접하게 되면 그도 나처럼 다시 살아낼 힘을 얻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이 생각을 처음 했던 날, 제 가슴이 얼마나 뛰었는지 표현조차 하기 힘듭니다.


문장은 형편 없었습니다. 글을 배운 적도 없고, 글을 써 본 적도 없었으니 당연한 결과였지요. 일단 생각 나는 대로 마구 적었습니다. 그런 다음 제가 쓴 글을 읽어 보았습니다. 아! 그때의 절망감은 최악이었습니다. 이래가지고 무슨 글을 쓰고 책을 내겠는가. 저 자신이 한심하고 초라하게 느껴졌습니다.


한 가닥 희망은 있었습니다. 제가 쓴 글을 옆 사람이 읽고는 "자네도 참 기구하네"라고 말했습니다. 잘 쓰고 못 쓰고를 떠나서, 어쨌든 제가 전하고자 하는 내용이 다른 이에게 전해졌다는 사실. 이것만으로도 계속 글을 쓸 수 있는 동력으로 충분했습니다.


그 후로는 매일 두 가지를 반복했습니다. 글을 쓰고 책을 읽고, 책을 읽고 글을 썼지요. 책 속에 나오는 문장을 베껴쓰기도 하고, 그 문장을 조금 틀어서 내 문장으로 바꿔 쓰기도 했습니다. 한 편의 글이 어떤 순서로 구성 되었는가 촘촘히 뜯어 분석하고, 그 틀에 맞춰 제 글을 써 보기도 했습니다. 제가 '문장독서'와 '템플릿'에 미쳐 있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책을 출간했습니다. 제 책을 읽은 독자 중에는, 자신도 한 번 다시 살아 봐야겠다 결심했다는 이가 많았습니다. 첫 책을 출간하고 독자들의 서평을 읽으면서, 맨 처음 글을 쓰려고 했던 제 마음이 틀리지 않았구나 확신하게 되었지요. 타인의 삶을 읽으며 자기 삶에 영향을 받는다는 것. 글 쓰고 책 읽으며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더 확고하게 갖게 되었습니다.


글을 잘 쓰고 싶다는 욕심이 갈수록 더해졌습니다. 글쓰기 공부는 이전과 같이 했고요. 대신 다른 노력을 기울였지요. 더 많이 놀라고, 더 많이 울고, 더 많이 아프고, 더 많이 감동하고, 더 많이 억울하고, 더 많이 참으며 살아가는 연습을 했습니다. 내 안에 있는 감정을 모조리 느껴 보겠다 작정을 한 것이지요.


저는 애초부터 감성적인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지금도 감성과는 거리가 멉니다. 다만, 흉내라도 내 보자 마음 먹었던 겁니다. 내가 먼저 느껴 봐야 다른 사람을 느끼게 할 수 있다는 명확한 진실. 이것을 벗어나서는 한 줄도 쓸 수 없으며, 또 억지로 쓰는 글은 별 의미도 없습니다.


감히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목숨 걸고 책 읽어야 합니다. 먼 훗날, 인류의 절반 이상이 사라지게 되는 날이 온다면, 아마도 책 읽는 자만 살아남을 겁니다. 그 만큼 지금 시대 독서는 중요한 행위입니다. 읽지 않아도 된다는 말은 먹지 않아도 된다는 말과 같습니다. 하루 세 끼 챙겨 먹지 않아도, 물과 소금과 빵쪼가리 한 입만 먹어도 살 수는 있습니다. 당장 죽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연명하는 이의 모습은 과연 어떠할지 쉽게 떠올릴 수 있겠지요.


정신과 마음도 똑같습니다. 읽지 않아도 살아갈 수는 있겠지요. 허나, 초췌하고 말라 비틀어져 눈만 쏘옥 튀어나오는, 제대로 서 있지도 못하는 정신과 마음으로 사는 것을 과연 삶이라 할 수 있을런지요.


타인의 삶을 경험함으로써 두 번, 세 번, 네 번의 인생을 살아갈 기회를 얻는다는 것. 그래서 더 많은 삶을 이해하고 공감하게 된다는 것. 내가 얻은 삶에 대한 지혜와 경험을 타인에게 다시 나눔으로써 그들의 삶도 풍성하고 탄탄하게 만들어줄 수 있다는 사실. 쓰지 않을 이유가 없고 읽지 않을 이유가 없습니다.


서울역에 도착하는 것만이 목적이라 할 수 없습니다. 왜관, 김천, 구미, 대전, 천안아산, 평택, 수원...... 매 순간 멈추고 주변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내가 살아가는 세상에는 나와 내 생각과 다른, 더 많은 다양한 삶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받아들일 때 비로소 삶은 풍요로워집니다. 글쓰기와 독서는 멈춤을 가능하게 해 주는 도구이고요.


부디 더 많은 이들이 쓰기와 읽기를 통해 하찮은 번민에서 벗어나 큰 인생 누릴 수 있기를 바라 봅니다.


지금 행복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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