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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장이 Aug 22. 2023

그 치열한 책 읽기 덕분에

오직 독서뿐


책이란 무엇인가요? 작가의 경험입니다. 경험은 지식, 정보, 오감의 형태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단순히 지식과 정보와 오감의 경험을 나열만 한다고 해서 책이 될 수 있을까요? 한 가지가 더 필요합니다. "사유와 인식을 통한 숙성"입니다. 이 단계를 거쳐야만 비로소 책으로서의 가치를 지닐 수 있습니다.


독서는 무엇인가요? 책을 읽는 행위입니다. 책이라는 것이 지식과 정보와 오감의 경험 따위를 사유와 인식을 통해 숙성한 물건이라 했으니, 독서 또한 단순한 텍스트 읽기에서 멈춰서는 안 되겠지요. 작가의 경험이 어떤 사유와 인식을 거쳐 어떻게 숙성되었는가 살펴야 합니다. 한 마디로 말하면, 작가의 삶을 통째로 흡수하여 내가 아닌 타인의 그것을 간접 경험하는 행위가 바로 독서라 할 수 있습니다.


책을 읽으면 어떤 현상이 일어날까요? 나의 경험 외에 다른 사람 경험을 흡수했으니 당연히 생각의 범주가 확대될 테지요. 같은 문제를 놓고도 여러 가지 다양한 풀이와 이해를 할 수가 있습니다. 또한, 선구자들의 발자취를 내 것으로 만들어 고난과 역경에 대처하는 힘을 키울 수도 있습니다. 책을 많이 읽는 사람은 문자를 인식하고 해독하여 저장하는 뇌의 기능 또한 발달함으로 마땅히 '똑똑한 두뇌'를 갖게 되기도 합니다.


독서의 효과가 어디 이뿐이겠습니까. 읽지 않는 사람은 절대 가질 수 없는 희열과 기쁨 또한 독서의 이점이겠고요. 공감, 재미, 감동, 학습, 견문, 통찰력, 요약력, 이해력, 창의력, 독창성 등 자기계발에 필요한 모든 능력을 독서를 통해 얻을 수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겁니다.


책을 읽는 것이 이토록 위대한 일이라면, 이제 글을 쓰는 작가의 어깨는 사정 없이 무거워질 수밖에 없을 겁니다. 최근 들어 치유 등의 이유로 글쓰기가 쓰는 사람 본인에게 상당한 도움을 준다고 강조하는 책이 많아졌는데요. 물론, 그런 효과가 틀린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자신을 위한 글이라면 일기만으로 충분할 테지요. 자신을 위한 글을 써 놓고 독자들의 사랑과 관심을 기대하는 것은 지나친 이기주의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일기가 아닌 이상, 글 쓰는 사람은 반드시 독자를 고려해야 합니다. 독자를 위해야 합니다. 독자가 전부라고 생각하고 글을 써야 합니다. 독자를 위한다는 말은 어떤 뜻일까요? 한 편의 글을 쓰더라도 독자가 가져갈 무엇인가를 담아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독자가 무엇을 필요로 하는가. 이것이 작가가 해야 할 가장 큰 고민이겠지요. 그들에게 필요한 내용 중에서 내가 전해줄 수 있는 이야기. 이것이 바로 내가 쓰는 글의 '주제'가 되는 겁니다.


예를 들어, 책을 읽고 싶긴 한데 도무지 집중을 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고 칩시다. 만약 내가 책을 좀 읽는 사람이라면, 그들을 위해 "집중 독서 방법"에 관한 책을 쓸 수가 있겠지요. 어떤 내용을 담으면 될까요? 집중하는 방법, 책 고르는 방법, 독서 태도, 바람직한 독서 자세, 집중 독서의 효과, 독서 습관 등등 어떤 식으로든 그들이 책 읽기에 집중하도록 도와주기만 하면 됩니다.


독자가 분명하고 내가 전할 메시지가 선명하다면, 글쓰기의 절반은 끝난 것이나 다름 없습니다. 아쉽게도, 많은 초보 작가들이 핵심 독자를 선정하고 명확한 메시지를 정리하는 일에 소홀합니다. 무턱대고 노트북부터 열어서 키보드를 두드리기 시작하는 사람이 생각보다 많지요. 글이 산으로 가거나 횡설수설하거나 자기 하소연 또는 푸념만 가득하게 되는 원인입니다.


독서는 삶에 여유가 좀 있는 사람들이나 하는 취미 생활인 줄 알았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저는 모든 것을 잃고 인생 바닥으로 추락했을 때부터 읽기 시작했지요. 사실은, 달리 할 일이 없어서 독서를 시작한 겁니다. 감옥에서 무엇을 할 수 있었겠습니까.


그런데요. 한 달 정도 책 읽고 난 후에 제가 얼마나 많이 울었는지 모르실 겁니다. 손톱으로 가슴팍을 마구 긁었습니다. 진즉에 책을 좀 읽었더라면, 그렇게까지 처참하게 무너지지는 않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과 설움이 한꺼번에 밀려든 탓이지요.


그렇다고 해서 제가 읽은 모든 책을 싹 다 이해했다는 말은 아닙니다. 어렴풋이 어떤 내용이다 정도만 알았습니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끈질기게 읽었습니다. 이해도 안 되고, 속도도 느리고, 남는 것도 없고, 완독도 힘들고, 집중하기도 힘들고, 그 말이 그 말 같고...... 그때 제가 결단을 내린 게 있습니다. 어디 배울 곳도 없고, 물어 볼 사람도 없으니, 그냥 내 방식 대로 읽자!


세상에서 가장 둔하고 느리고 어리석은 독서 방법을 선택했습니다. 당시에는 '독서법'이라는 말조차 몰랐습니다. 그냥 내 방식 대로 읽는다고 생각한 게 전부였지요. 문장 하나하나 뜯어서 삼켰습니다. 모르는 건 넘어가고, 괜찮다 싶은 건 씹어 먹었지요. 집중? 속도? 기억? 이런 건 아예 신경 쓰지도 않았습니다. 그저 읽는 동안 읽는 행위에만 몰입했습니다.


[자이언트 북 컨설팅]을 운영하면서 저와 비슷한 초보 독서가들에게 제 방식을 전했습니다. 이름하여 "문장독서"가 탄생하게 된 배경입니다.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속독에 욕심을 부리고, 또 독서를 통해 돈을 벌겠다는 이상한 야망까지 갖고 있다는 사실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지요. 자고 일어나면 바뀔 정도로 빠른 세상에서, 책마저 속독하고 책마저 돈과 연결하면 이제 우리한테는 뭐가 남는다는 말입니까.


쓰는 사람은 한 줄에 정성을 담아야 하고, 읽는 사람은 한 줄에 온 마음을 쏟아야 합니다. 쓰는 사람과 읽는 사람은 문장을 통해 시공간을 초월하는 조우를 하게 되는 것이죠. 문장이야말로 쓰는 사람의 기본이자 읽는 사람의 전부라 할 수 있습니다. 문장 하나를 내 것으로 만들 수 있다면, 까짓 속도가 무슨 의미 있겠습니까.


제가 아들에게 매일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 몇 가지 있습니다. "일생에 한 번은 크게 실패하라. 일생에 한 번은 너의 책을 써야 한다. 일생에 한 번은 책에 파묻혀야 한다. 인생 매 순간 멈추어야 한다......" 그 중에서도 책에 파묻혀야 한다는 소리를 가장 많이 합니다. 독서가 한 인간을 얼마나 다르게 만들 수 있는가 제가 겪어 보았기 때문입니다.


지금 행복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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