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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장이 Sep 06. 2023

삶이 나빠져도 무너지지 않을 용기

의연하고 초연하게


사람 때문에 상처 받았을 때 글을 씁니다. 그 사람 험담을 하거나 욕설로 채우지 않습니다. 있었던 일을 그대로 쓰고, 또 나와 그의 입장을 바꾸어 보기도 합니다. 좋은 마음으로 이해가 될 때도 있고, 글을 쓰면서도 계속 화가 날 때도 많습니다. 어쨌든, 머릿속으로 부정적인 생각만 할 때보다는 글을 쓰는 것이 훨씬 낫습니다. 상처가 지워지기도 하고, 빨리 잊기도 하고, 용서가 되기도 하고, 오해가 풀리기도 합니다.


피곤하고 지칠 때 글을 씁니다. 몸이 극도로 힘들 때는 거의 없습니다. 저는 피로도 감정이라 생각합니다. 실제로 피곤한 경우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피곤함을 '느끼는' 상태입니다. 글을 쓰다 보면, 제 감정이 피로를 벗어나 다른 세계로 들어가는 걸 느낍니다. 쉽게 표현하자면, 잠시나마 피로를 잊는다고 할 수 있겠지요.


일이 뜻대로 풀리지 않아 괴롭고 힘들 때도 글을 씁니다. 내 능력 밖의 일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일 때도 있고요. 현실을 직시하며 무엇이 문제이고 그 원인은 무엇인가 냉철하게 판단하기도 합니다. 더 욕심 부리지 말야야겠다는 다짐을 할 때도 있고, 용기 내어 다시 도전해 보자 각오를 다질 때도 많습니다.


왜 글을 쓰냐고 묻는 사람 많습니다. 글을 쓰면 무엇이 좋은가 질문하는 것이죠. 그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조금은 난감합니다. 짧고 명확하게 대답할 한 마디를 아직 찾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10년째 매일 글을 쓰고 있는데도 말이죠. 머리가 나쁜 건지, 아니면 글쓰기 효과가 우주와도 같아서 도저히 말로 담기 힘든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그럼에도 제 입장에서 글쓰기 효과를 정리해 보자면 이렇습니다. 살다 보면 별일 다 생기잖아요. 기쁘고 행복한 일도 많고 슬프고 아픈 일도 적지 않습니다. 유쾌한 일이야 그냥 즐기면 그뿐이겠지만, 문제는 불편하고 불행한 일이 생길 때입니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도무지 갈피를 잡을 수 없고,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그런 암담한 상황을 맞딱뜨렸을 때요.


글쓰기는 그런 순간을 견디게 해줍니다. 문제를 무조건 해결해준다는 말이 아니라, 그 문제를 마주하면서도 쓰러지지 않도록 나 자신을 붙잡아준다는 소리입니다. 단순히 버티거나 참기만 하는 게 아닙니다. 문제를 바라보는 관점을 다르게 하고, 생각보다 큰 문제는 아니라는 생각도 하게 되고, 내 삶이 이런 문제들과 함께 해왔다는 사실도 돌이키게 됩니다.


글을 쓴다고 해서 천지가 개벽하는 일은 없습니다. 책을 출간한다고 해서 하늘에서 돈벼락이 떨어지는 일도 없습니다. 돈 되는 글쓰기? 팔리는 책쓰기? 모두가 장사꾼들의 약 파는 소리입니다. 설령 그런 글과 책을 쓰는 방법이 따로 있다 하더라도, 글과 책을 돈에 붙여 접근하는 방식 자체가 틀렸습니다. 제가 다소 고리타분한 사고방식을 가진 건지는 모르겠지만, 글과 책마저 돈으로 보면 이제 우리는 무엇에 기대어 마음을 보듬어야 하겠습니까.


선한 마음으로 글을 쓰고 책을 냈는데 마침 많은 독자들로부터 사랑 받아 잘 된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요. '방법'에 초점 맞춰 끼워맞추기식 글을 쓰기보다는, 자신의 경험과 생각을 있는 그대로 써서 누군가를 돕겠다는 마음으로 세상에 내놓는 것이 훨씬 바람직하다고 믿습니다. 사람마다 생각이 다를 테니 더 강조하지는 않겠습니다. 아무튼 저는, 글과 책이 많이 팔리지 않고 돈이 되지도 않았지만, 여전히 행복하게 글 쓰고 있으니 다행이지요.


돈도 되지 않고 팔리지도 않는데 어째서 행복할까요. 이런 게 인생이구나 느낄 수 있어서 좋습니다. 나와 같은 세상도 있고, 나와 다른 세상도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게 되어 편안합니다. 역시 세상은, 인생은 한 번쯤 살아 볼 만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기분 좋습니다. 견디는 힘도 생기고, 세상 보는 눈도 달라져서 의연하고 초연해집니다.


예전에는 지키기 위해 발버둥치며 살았습니다. 내 것 하나라도 잃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썼지요. 늘 불안하고 초조하고 불행했습니다. 신경이 곤두서서 툭하면 무너졌습니다. 이제는 다릅니다. 잃어도 상관 없고 나눠도 좋고 갖지 못해도 악쓰지 않습니다. 언제든 다시 일어설 용기가 있고, 훌훌 털어버릴 자신도 있고, 다시 시작해서 지금과 비슷한 수준의 삶에까지 이를 배짱도 충분합니다. 겁날 것이 없다는 뜻입니다.


인생 절반 살았습니다. 크게 성공도 해 보고, 크게 무너지기도 해 보았습니다. 깨달은 바가 있습니다. 성공했다고 해서 법석을 피울 것도 없고, 실패했다고 해서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질 필요도 없다는 사실입니다. 아이들은 사탕 하나를 손에 쥐면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기뻐하고, 또 사탕 하나를 빼앗기면 모든 걸 다 잃은 듯 울음을 터트립니다. 그런 아이들의 모습을 보면서 어른들은 어떤 생각을 하나요? 그저 귀엽고 웃기고 재미있을 뿐이죠.


인생도 똑같습니다. 당장은 죽을 듯이 힘들고 당장은 인생 최대 기쁨 같지만, 사흘만 지나면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살아가게 됩니다. 감정에 휘둘려 좋다 나쁘다 일일이 따지면서 사는 것이 결코 인생은 아니라는 의미입니다. 마음의 파도를 줄이면, 줄이는 만큼 평온하고 행복할 수 있습니다. 글쓰기는 이렇듯 차분하고 고요한 세상을 만들어주는 최고의 도구입니다.


번잡하고 혼란스러운 인생을 살았습니다. 후회는 하지 않습니다. 덕분에 글쓰기를 만났으니까요. 남은 인생은 고요하게 살고 싶습니다. 남들은 지우고 싶은 과거라 하지만, 저는 전과자 파산자 알코올 중독자 막노동꾼 암 환자라는 저의 삶의 기록을 하루 한 번씩 떠올립니다. 그 상처에 더 이상 눈물 흘리지 않을 용기가 생겼기 때문입니다. 글쓰기 덕분입니다.


지금 행복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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