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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장이 Sep 15. 2023

무엇이든 쓰면서 하면 효과 10배

끄적끄적, 메모와 낙서의 힘


글 쓰는 사람이 가장 먼저 하는 고민은 '무엇을 쓸 것인가' 주제와 소재를 정하는 겁니다. 알맹이가 있어야 뭐라도 쓸 테니까 말이죠. 생각할 때마다 쉽게 떠오르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머리가 깨질 듯 아플 정도로 고민해도 마땅한 쓸거리가 떠오르지 않습니다. 하루만 쓰고 말 것도 아니고, 평생토록 글을 써야 하는데, 주제 하나 정하는 것이 이토록 어렵고 힘드니 멘탈까지 무너질 정도입니다.


저도 처음 글을 쓸 때 그랬습니다. 대체 무엇을 써야 할지 몰랐거든요. 답답함을 풀기 위해 책을 읽었더니, "뭐라도 쓰면 된다"라는 말밖에 없었습니다. 오히려 생각이 더 복잡해졌습니다. 차라리 한두 가지 영역을 딱 정해주면 좋을 것 같았습니다. 우주에서 글감을 찾으면 된다 하니 머릿속이 텅 비어버리는 것 같았습니다.


쓸거리만 주어지면 무슨 글이라도 쓸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당시만 해도 '메시지'에 대한 개념조차 없을 때였거든요. 단순히 내 이야기를 세상 사람들에게 전한다는 생각 정도만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내 이야기'라는 게 대체 어디서 어디까지를 의미하는지 파악할 수 없었습니다. 온갖 생각이 다 들고, 글로 쓰자니 싹 다 아닌 것 같고, 그래서 매일 골치만 아팠습니다.


메모에 관한 책을 여러 권 읽었습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메모'와 '수첩'이라는 단어가 마음에 들었습니다. 글 쓰는 삶을 선택했으니 그 두 가지는 필수 도구가 아니겠습니까. 관심 가지고 메모에 관한 다양한 책을 읽었는데요. 모든 책에서 강조하는 메모 습관을 한 마디로 정리하면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닥치는 대로 끄적끄적"


별 것 아니라 여겼습니다. 어렴풋이 알고 있던 메모의 개념과 별 다를 바 없었기 때문입니다. 수첩에 뭔가 끄적거리는 행위가 뭐 그리 대수이겠는가. 책을 팔아먹기 위한 과장된 표현이 즐비하다는 다소 삐딱한 생각만 했습니다.


글을 쓰고 책을 읽기 시작한 곳이 마침 감옥이었습니다. 시간은 많고 할 일은 없었지요. 메모 한 번 해 볼까. 생각은 자연스럽게 실천으로 이어졌습니다. 맨 처음 적기 시작한 것은 일과였습니다. 몇 시에 일어났고, 가장 먼저 무엇을 했고, 또 다음에는 어떤 일을 했는가. 별 의미도 맥락도 없이 말 그대로 '끄적'거리기만 했습니다.


조금씩 시간이 지나면서, 일과 옆에 생각과 느낌을 적었습니다.


              오늘도 6시에 일어나 모두 함께 이불을 정돈했다.            

: 이 나이에 다시 고3이 된 것 같다.


메모를 시작한 후로 지금까지 10년 넘도록 글감 고민 두 번 한 적 없습니다. 노트나 수첩 펼쳐서 훑어 보기만 해도 쓸거리가 나옵니다. 하나만 나오는 게 아니라 마구 쏟아집니다. 오늘은 무엇을 쓰고 내일을 무엇을 쓸 것인지 또 메모합니다. 계속 쌓여갑니다. 지난 8년 동안 블로그 포스팅 매일 한 편 이상 발행한 것도 메모 덕분입니다. 매달 강의자료 처음부터 끝까지 새로 만들 수 있는 것도 메모 덕분입니다.


메모는 글감 찾는 데에만 도움이 되는 게 아닙니다. 그냥 인생 전체에 큰 효과를 줍니다. 지난 날에 어떻게 살았는지 수첩 보면 다 알 수 있고요. 얼마나 사소하고 보잘 것 없는 일로 머리를 싸매고 고민했던가 전부 알 수 있습니다. 마치 과거의 나 자신과 대화를 나누는 느낌이 들 정도입니다. 메모 덕분에 본격적으로 일기도 쓰기 시작했고, 또 독서노트도 작성하기 시작한 것이죠. '쓰기'에 대한 부담과 압박, 스트레스를 완전히 벗어던질 수 있었던 계기가 바로 메모입니다.


체계적인 메모를 할 수 있다면 더 좋겠지만, 저는 아직 그렇게까지는 하지 못합니다. 메모 자체가 자유로움인데, 굳이 틀에 맞춰야 하나 싶기도 하고요. 여러 권의 노트에 손 가는 대로 마구 적습니다. 본 것도 적고 들은 것도 씁니다. 생각나면 적고, 화 나면 적고, 밥 먹으면 적습니다. 이제야 조금 '끄적끄적'의 의미를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브레인 스토밍'이라는 방식이 있습니다. 생각나는 대로 다 적고, 하나씩 지우면서 핵심만 남기는 방식입니다. 메모는 최고의 브레인 스토밍 도구입니다. 선별할 것도 없고 가리지도 말아야 하며 형식이나 틀에 구애 받을 필요도 없습니다.


특별한 장비도 필요 없습니다. 천 원짜리 수첩과 볼펜 한 자루만 있으면 됩니다. 부담이 없어야 오래 지속할 수 있습니다. 글씨도 엉망으로 써도 됩니다. 메모는 어디 제출할 것도 아니고, 평가 받을 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손 가는 대로 마구, 대충, 무조건 많이 적는 게 최고입니다.


무엇이든 쓰면서 하면 효과 10배입니다. 어떤 내용으로 글을 써야 할까 주제가 고민이라면, 쓰면서 고민하시기 바랍니다. 머리로만 고민했을 때와는 차원이 다른 아이디어가 계속 떠오를 겁니다. 에세이로 쓸까 자기계발 형식으로 쓸까 편지처럼 쓸까, 글쓰기 형식이 고민이라면, 쓰면서 고민하길 바랍니다. 자신에게 어떤 형식의 글이 잘 어울리는지 금방 알 수 있을 겁니다.


혹시 무슨 걱정 있습니까? 그냥 머리로만 걱정하지 말고, 종이에 적으면서 걱정해 보세요. 손은 제 2의 뇌라고 했습니다. 머릿속 뇌와 손끝의 뇌가 동시에 작동하면 아무래도 문제 해결이 더 수월하지 않겠습니까.


혹시 누구 미운 사람 있습니까? 그냥 마음으로 말로 미워하지만 말고, 종이에 적으면서 미워해 보세요. 말로 미워하면 험담이 되지만, 쓰면서 미워하면 성찰이 됩니다.


혹시 화가 납니까? 그냥 폭발하지 말고, 종이에 쓰면서 화를 내 보세요. 속이 확 풀리는 것 같으면서도, 그렇게까지 화를 내는 자신이 조금은 민망하게 느껴질 겁니다. 이것이 백지의 힘입니다.


수첩 하나 가지고 다니면서 아무때나 끄적끄적 메모와 낙서를 일상처럼 즐기시길 바랍니다. 디지털 세상에서 '스크롤'만 하는 것보다, 손끝으로 내 이야기 적는 기쁨이 훨씬 매력 있을 겁니다.


지금 행복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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