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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장이 Oct 20. 2023

이 정도면 되었다, 내일도 오늘처럼

만족하고 감사하면 계속 좋아진다


출소 후, 뭐라도 해서 먹고 살아야 한다는 강박 때문에 힘든 시간을 보냈습니다. 취업은 애당초 불가능했고요. 아르바이트 시급제로 몇 가지 일을 했습니다. 중국집 배달을 하려니 오토바이를 탈 줄 모른다 해서 자전거로 며칠 다니다가 쫓겨났습니다. 기획 투자 권유하는 일을 해 보라는 누군가의 말을 듣고 부동산을 찾았다가 전과가 있다는 이유로 거절 당하기도 했습니다. 


결국에는 인력시장을 찾았습니다. 새벽 6시도 채 되기 전에 갔는데, 인력사무실 앞이 훤하더군요. 사람들이 꽤 많이 모여 있었습니다. 겁이 나서 돌아갔습니다. 무엇이 두려웠던 걸까요? 거친 일, 거친 사람들, 돌이킬 수 없게 될 내 인생. 아무튼 저는 그렇게 사흘을 인력사무실 앞까지 갔다가 되돌아왔습니다. 나흘째 되던 날, 겨우 용기를 내어 소장을 만났지요. 


일주일쯤 막노동을 했을 때, 문득 그런 생각이 들더군요. 몸은 부서질 정도로 힘들지만, 이 정도라면 계속할 수도 있겠다. 조금씩 일머리를 알아 가고, 같이 일하는 사람들로부터 나름 괜찮은 평을 듣기 시작했습니다. 종일 일하고 받은 9만원 일당은 다섯 식구 생계에 큰 도움이 되었고요. 이 정도면 되었다 생각했습니다. 


제가 만약, 막노동 현장에서 일하면서도 계속 다른 돈벌이를 궁리했더라면 일주일도 견디지 못했을 겁니다. 사람이 이렇게도 살 수 있구나 생각한 덕분에 견디고 적응할 수 있었던 거지요. 욕심이나 욕망이 무조건 나쁜 것만은 아니지만, 매 순간 높은 곳만 바라보면 진이 빠져 살 수가 없습니다. 이미 한 번 큰 실패를 맛보았기 때문에 욕심 부리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더 치열하게 했을 수도 있겠지요. 


현재의 삶에 만족한다는 건, 그 자리에서 대충 뭉개며 살아간다는 뜻이 아닙니다. 저는 막노동을 하면서 일당 받아 겨우 먹고 살게 되었는데, 그런 현실이 참으로 감사했거든요. 뭐라도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살아갈 힘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현실에 만족했다는 말이 도전을 멈췄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하루 열 시간의 중노동을 하면서도 저는 매일 새벽과 밤에 글을 썼습니다. 저는 막노동꾼이 아니었습니다. 저는 작가도 아니었고요. 저는, '글 쓰는 막노동꾼'이었습니다. 작가이면서 동시에 육체 노동자였던 것이죠. 그때까지는 책도 한 권 내지 못했습니다. 그럼에도 저 자신을 작가라고 생각했고, 생계를 위해 막노동도 하고 있다고 여겼습니다. 


'이 정도면 되었다'는 생각은 저로 하여금 매 순간 행복하다는 느낌을 갖게 해주었습니다. 반드시 작가가 되어 지독한 현실을 벗어나야 한다는 생각을 한 게 아니라, 지금 이렇게 글도 쓰고 일도 할 수 있는 것이 기적처럼 감사한 일이라고 생각했던 겁니다. 


하루만에, 일주일만에, 열흘만에, 한 달 만에 수천 수억을 벌었다는 이야기가 SNS에 난무하고 있지만, 그런 말들이 제 귀에는 하나도 와닿지 않습니다. 첫째, 믿기지도 않고요. 둘째, 만약 실제로 그런 일이 있다면 왜 굳이 그토록 열심히 광고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셋째, 빨리 이룬 성과는 빨리 무너진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고통과 갈등과 혼란은 이상과 현실의 차이에서 비롯됩니다. SNS를 보고 있으면, 나 빼고 다 잘 사는 것처럼 느껴지거든요. 그런 느낌이 반복 되다 보면, 나에게 무슨 문제가 있다는 생각에까지 이르게 됩니다. 충분히 만족하고 감사하며 살면서도 얼마든지 더 나은 미래를 설계할 수 있습니다. 쫓기듯 조급한 마음으로 살면, 지금 자신이 무슨 일을 하든 마음에 들지 않을 수밖에 없습니다. 


'노가다' 하면서 일당 9만원 받을 때도 이 정도면 되었다 생각했고, 첫 책을 출간했을 때도 감사한 마음 가득했고, 강의를 시작했을 때도 20만원 받으며 고속버스 타고 전국을 누볐습니다. 한 평짜리 사무실, 세 평짜리 사무실, 그리고 지금 여덟 평짜리 사무실까지 한 번도 불평이나 불만 가져 본 적 없습니다. 


'지금도 충분히 행복하고 감사하다'는 생각이 제 삶을 변곡 없는 우상향 곡선으로 만든 것이지요. 제 인생 변화를 닮고 싶다 하면서 배우고 따라하던 사람들 있었습니다. 짧게는 사흘, 길게는 일주일을 넘기지 못했습니다. 힘들어서 못 하겠다 하더군요. 이것이 바로 오늘에 감사하며 살아가는 태도입니다. 이토록 감사한 삶을 받았으니, 내 전부를 걸고 오늘을 살아가는 겁니다. 오죽하면 삶의 목표가 "내일도 오늘처럼"이겠습니까. 더 이상 열심히 살 수 없을 정도로 오늘을 살아내면, 인생이나 미래는 알아서 척척 달라집니다. 


내년 강의 계획을 짜느라 다양한 채널에서 검색을 해 보았는데요. 와! 어쩜 이리도 "돈 쉽게 빨리 버는 방법"들이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지요! SNS가 통째로 돈에 환장한 플랫폼처럼 느껴질 정도였습니다. 그야말로 돈이 인생의 전부라고 강조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 옛날, 바로 이와 같은 생각 때문에 인생을 몽땅 날린 적 있는 제 입장에서는 우려와 염려를 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글 쓰는 것도 돈이고, 책 읽는 것도 돈이고, 종이책 전자책 모두 돈입니다. 수익화, 파이프라인, 잠잘 때도 통장에 돈이 들어오는, 우리나라가 무슨 돈 공화국도 아니고, 멀쩡한 사람도 돈 욕심 부리게 만들어놓은 꼴입니다. 


그 모든 방법, 비법, 묘법들이 과연 진실로 평범한 사람을 갑부로 만들어주는 내용일까요. 돈 버는 일이 그렇게 쉽고 간단한 일일까요. 그렇다면 왜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경제적 궁핍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걸까요. 


모두 잃고 수십 억 빚도 가져 봤고, 다시 일어나 새로운 삶을 만들어 보기도 했습니다. 적어도 제 경험으로는, 돈이란 것이 그렇게 쉽고 간단하게 벌 수 있는 건 아니라고 생각하거든요. 준비가 필요하고 공부를 해야 하고 노력과 연습과 훈련도 반복해야 하며 하루가 멀다 하고 실패를 거듭해야 겨우 눈을 뜰 수 있는 게 돈입니다. 약간의 팁과 기술 정도는 배울 수 있겠지만, 근본적으로 삶의 태도를 바꾸지 않으면 남의 지갑 여는 일이 결코 수월하지 않다는 사실을 잊지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내가 슬퍼서 빵을 샀어."

MBTI 성향을 파악할 수 있는 이 질문이 온라인에 자주 등장하고 있습니다. 어떤 의미일까요? 우리네 삶이 과거보다 많이 나아졌다는 사실을 뜻합니다. 먹고 살기 힘든 시절에 누가 저런 질문을 주고 받겠습니까. 아무리 힘든 세상이라 하지만, 이런 현상을 보면 먹고 사는 데에는 별 문제가 없구나 싶은 생각이 듭니다. 


"고속버스 민폐녀"라는 제목의 영상도 자주 보입니다.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기도 하고, 잘잘못을 떠나 안타깝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 와중에, 제 눈에는 누구보다 버스 기사가 인상적으로 보였습니다. 시종일관 침착한 목소리. 사태를 악화시키지 않는 일처리. 누구의 기분도 상하게 만들지 않는 말투. 세상이 아무리 거칠고 투박해도, 우리 주변에는 버스 기사님 같은 분이 늘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에 마음 푸근해지기도 했습니다. 


이 정도면 되었습니다. 저는 지금의 삶에, 지금 세상에 만족하고 감사합니다. 혹시 어떤 시련이 다시 닥친다 하면, 저는 또 그 상황에 맞춰 이 정도면 되었다 생각할 것이고요. 운이 좋아 삶이 더 좋아진다면, 또 이 정도면 되었다 감사할 것입니다. 


더 높이 오르려는 생각만 하고 살면, 삶의 끝에 이르러 내가 뭐하고 살았나 싶을 겁니다. 이 정도면 되었다 생각하고 살면, 내일도 오늘처럼 살아갈 거라고 생각하고 살면, 내일 당장 눈 감아도 웃을 수 있지 않을까 짐작해 봅니다. 


지금 행복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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