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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장이 Nov 28. 2023

일기 쓰기, 모닝저널의 위력

신이 내린 축복


약 6년간 알코올 중독에 걸려 살았습니다. 폐인이었죠. 매일 술을 마셨습니다. 식사하면서 반주 정도로 마시는 게 아니라 앉은 자리에서 서너 병을 퍼붓고 정신을 잃어버리는, 그야말로 최악의 술주정뱅이였습니다. 가족 포함 누구도 제가 술을 끊을 거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습니다. 


2019년 9월 8일. 자이언트 작가 탄생 300호를 기념하는 자리에서, 수많은 작가님들 앞에서 금주를 선언했습니다. 박수를 치고 환호를 보내고 응원하는 사람 많았지만, 그들조차도 반신반의하면서 제가 술을 계속 마실 거라고 생각했었지요. 이후에 많은 이들로부터 믿지 못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술을 끊은지 만 4년이 지났습니다. 그 동안 술 한 방울도 입에 대지 않았습니다. 못 믿는 사람도 있지만, 그런 건 중요하지 않습니다. 제가 술을 끊었다는 사실 자체가 의미 있는 팩트니까요. 중요한 것은, 그토록 오랜 시간 매일 술을 마셨던 제가 어떻게 해서 단번에 술을 끊을 수 있었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뭐가 됐든 중독은 현실 회피의 수단입니다. 도박 중독, 알코올 중독, 마약 중독, 스마트폰 중독, 쇼핑 중독. 종류는 다양하지만, 모두가 자신이 처한 현실을 외면하고 또 다른 공간과 시간으로 도망치고자 하는 심리에서 비롯된 현상입니다. 


현실을 직시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용기가 필요합니다. 직시하고 나면 행동으로 옮겨야 하고요. 그럴려면 실행력과 인내와 끈기와 근면과 성실 등 최선을 다하는 노력도 뒤따라야 하지요. 연약한 사람들은 이런 현실을 두려워하는 겁니다. 피하고 도망다니는 게 차라리 쉽거든요. 


저도 그랬습니다. 눈앞에 캄캄했습니다. 돈은 다 잃었고, 사람들은 전부 떠나가고, 가정도 엉망이고, 희망이라곤 눈꼽만큼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런 현실을 딛고 일어나 새로운 삶으로 도전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용기와 기백과 실행력이 필요했었지요. 도저히 감당하기가 힘들었습니다. 당시의 저는 몸도 마음도 연약했으니까요. 


처음부터 술을 끊어야겠다고 작심했던 건 아닙니다. 그럴 만한 용기도 없었고요. 일기를 썼습니다. 이것도 쓰고 싶어서 쓴 건 아닙니다. 수강생들한테 뭔가 아날로그식 가시적 성과물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맨날 말로만 떠드는 강의는 하기 싫었거든요. 이미 매일 블로그를 발행하고 있었고, 개인 저서 습작과 집필도 하고 있던 중이었습니다. 일기까지 쓰게 되면 더 바쁜 일정을 소화해야 한다는 사실에 망설이기도 했었지요. 어쨌든 저는 과감히 결단하고 매일 일기를 쓰기로 했습니다. 


두 가지 특별한 방식을 선택했습니다. 첫째, A5 크기의 일기장을 구해 매일 첫 줄부터 마지막 줄까지 무조건 채우기로 했습니다. 둘째, 밤에 쓰지 않고 아침에 쓰기로 했습니다. 매일 일정한 양의 글을 쓰기로 한 것은, 그것이 필력을 키우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아침에 쓰기로 한 것은, 밤에 쓰니까 자꾸 반성과 우울 모드로 접근하게 되어 일기 쓰는 것이 신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름도 '일기 쓰기'라 하지 않고 '모닝저널'이라고 붙인 겁니다.


이전에도 일기를 쓰고 있었지만, 두 가지 원칙을 정하고 쓴 것은 5년 전부터였습니다. 지금까지 만 5년 동안 하루도 빠짐 없이 일기를 쓰고 있지요. 일기를 쓰고 난 후로 가장 크게 변화한 것은, 내게 닥치는 인생 모든 사건과 사람을 똑바로 마주할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있는 그대로' 본다는 것은 참으로 위대한 행위였습니다. 


피하고 도망다닐 때는 어느 곳에서도 답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일기를 쓰면서 현실을 직시한 후부터는 회피하고 도망다닐 이유 자체가 사라져버렸지요. 좋은 일도 나쁜 일도 모두 내 인생이라는 확고한 신념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무슨 일이든 내가 책임지기만 하면 된다는 자신감도 생겼고요. 


일기를 쓰기 시작한 지 일 년쯤 지났을 때, 술을 끊기로 결심했습니다. 삶을 직시하는 순간 모든 문제가 풀린다는 걸 알았는데, 자꾸 술을 마시니까 인생을 똑바로 마주할 수가 없었거든요. 특히 저는 매번 과음을 했으니, 다음 날 멍한 상태로 보내기 일쑤였습니다. 하루하루를 그렇게 날려버리는 저 자신이 너무나 한심했고, 실수도 많이 했고, 건강도 나빠졌고, 신뢰도 무너졌습니다. 무엇보다 아들에게 미안한 마음 감출 길이 없었지요. 


술을 끊는다고 했을 때, 아무도 믿어주지 않았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그런 건 중요하지 않습니다. 남들이 믿든 말든 저 스스로 실천하는 게 훨씬 중요하니까요. 일부러 술자리에 적극 참석했습니다. 술을 끊기 위해 술자리를 피하는 것도 일종의 회피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술자리에 가서도 사이다와 콜라만 마시면서 충분히 즐기고 대화할 수 있었습니다. 저 자신을 시험했고, 그 시험에 당당히 통과했던 것이지요. 


술을 끊고 새로운 인생 만났습니다. 감옥에 갔다가 출소해서 만난 인생보다 훨씬 아름답고 신비로왔습니다. 세상에! 아침에 일어나는데 머리가 안 아픈 겁니다. 무슨 이런 일이 다 있나! 너무나 신기하고, 저한테 무슨 이상이 생긴 건 아닌가 의심까지 했습니다. 알고 봤더니, 원래 아침에 일어날 때마다 머리가 아프지 않은 것이 정상이더군요. 


몸도 이렇게 가벼울 수가 없습니다. 여차하면 훨훨 날아 올랐을지도 모릅니다. 일은 두 배로 늘였습니다. 모두 이상 없이 진행합니다. 아무 문제도 없고, 피곤하지도 않습니다. 하루 네 시간 잡니다. 끄덕 없습니다. 술을 마실 때는 상상도 못했던 인생이, 지금 제 앞에 펼쳐져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이 '모닝 저널'의 위력입니다. 아침마다 일기를 씁니다. 어제 있었던 일도 적고, 내 감정도 쓰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기록도 합니다. 에세이처럼 쓰기도 하고, 자기계발식으로 쓰기도 하고, 인문학 흉내를 내기도 합니다. 양식도 따로 없습니다. 기준도 없습니다. 쓰고 싶은 대로 마음껏 씁니다. 분량을 지키고 매일 쓰는 것. 이 두 가지만 확실히 유지합니다. 


사람들에게 일기를 쓰라고 권합니다. 일기는 신이 내린 축복이라고까지 강조합니다. 그럼에도 많은 이들이 처음에만 반짝했다가 작심삼일로 끝내곤 하는데요. 이것은 일기 쓰는 일이 어렵고 힘들기 때문이 아니라, 습관이 되지 않은 탓일 뿐입니다. 처음부터 무리할 필요 없습니다. 매일 세 줄씩만이라도 쓰는 습관을 들인 후, 천천히 분량을 늘여 가면 됩니다.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의견입니다만, 저는 감사일기는 반대합니다. 주변에 감사일기 쓰는 사람 몇 본 적 있는데요. 가식과 위선과 억지. 쓰기 위해 쓰는 감사. 삶의 모습과는 너무나 다른 일기 내용. 이런 식의 일기가 과연 무슨 의미가 있는가 의문입니다. 차라리 수고 일기를 쓰는 게 낫습니다. 차라리 속상했던 일을 있는 그대로 적는 편이 좋겠습니다. 저 개인의 의견이니까 각자 알아서 선택하면 되겠지요. 


아무튼 저는, 세상 사람 모두가 일기를 썼으면 좋겠습니다. 이왕이면 모닝 저널을 쓰면 더 좋겠습니다. 하루를 시작하는 시간에 차분하게 앉아 자신을 돌아보고 과거를 성찰하며 미래를 내다보는 일. 술을 끊고 새로운 삶을 만났다는 단편적인 이야기만을 전해드렸습니다만, 일기를 쓰는 행위는 더 많은 이익을 가져다준다는 사실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첫째, 행동하게 만듭니다. 하루 동안 생각만 많이 했는지 아니면 실천으로 옮긴 것이 많은지 선명하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누가 보는 것도 아니니까, 자신에게 솔직해질 수 있다는 뜻이죠. 


둘째, 생각과 말과 행동을 돌아볼 수 있습니다. 많은 이들이 '긍정적으로 살아야 한다'는 사실을 뻔히 알면서도 '부정적인 생각과 말과 행동'을 습관적으로 합니다. 직시하고 바꾸지 않으면 삶은 결코 달라지지 않습니다. 


셋째, 멈출 수 있습니다. 지금을 살아가는 수많은 이들이 '질주'하고 있습니다. 목표도 없고 방향성도 없이 남들이 뛰니까 나도 뛴다는 식이죠. 이런 허망한 삶을 바꾸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이 바로 멈춤입니다. 일기는 하루 한 번 멈추는 시간입니다. 


넷째, 자기 감정을 읽을 수 있습니다. 분노, 짜증, 원망, 불안, 초조, 걱정, 근심, 질투, 시기, 비난 등 불행한 인생의 원인이 되는 수많은 부정적 감정들. 감정은 인간의 본성이기에 억지로 없애거나 자유롭게 조절하기가 어렵습니다. 일기는 쓰면 지금 자신의 감정이 어떠한지 분명하게 느낄 수 있지요. 감정을 다루는 최고의 방법은 감정을 읽어주는 겁니다. 일기가 바로 그 역할을 하는 셈이죠. 


다섯째, 일기는 원하는 삶으로 향하게 만들어주는 나침반입니다. 열정과 의지는 한계가 있습니다. 순간적인 뜨거움과 자신을 몰아붙이는 힘만 가지고는 뭔가를 꾸준히 지속하기가 힘듭니다. 큰 그림을 그릴 수 있어야 합니다. 다른 사람 인생에 관심 갖는 습성을 딱 끊어버리고, 오직 자신과 자신의 인생에만 정성을 쏟아야 합니다. 일기는 이렇게 스스로 집중하고 몰입하는 데 큰 도움이 됩니다. 


전과자 파산자 알코올 중독자 막노동꾼이 인생 바꾸기 쉬웠겠습니까. 독서와 글쓰기 및 강연을 통해 새로운 인생 만난 게 사실이지만, 그 과정에서 일기는 저를 지속하게 만들어준 가장 큰 동력입니다. 아울러, 수시로 스물거리며 올라오는 온갖 부정적인 감정을 직시하고 내게 유리한 감정이 어떤 것인지 분별하여 선택하고 판단할 수 있도록 도움 준 것도 일기입니다.


인생이 잘 풀리지 않나요? 뭔가 이루고 싶나요? 변화와 성장을 원합니까? 그렇다면, 오늘부터 당장 일기를 쓰세요. 어떠한 거짓도 과장도 허풍도 위선도 떨지 말고, 오직 있는 그대로 자신을 적어 나가시길 바랍니다. 언젠가 일기장을 펼쳐 읽으며 흐뭇한 미소를 지을 날이 올 겁니다. 


지금 행복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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