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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모 Feb 09. 2024

나를 들었다 놨다 들었다 놨다

흥, 칫, 뿡

작년 봄의 끝이었던 5월.

한 통의 메일이 왔다.


"안녕하십니까 항상 평안하시고 행복하시리라 믿습니다

'문화체육관광부 선정 2023년 우수콘텐츠 잡지'인 <월간에세이>는 올해로 창간 36주년을 맞이했습니다.

-중략-

모쪼록 선생님의 따뜻한 글 한편이 독자들 가슴속 잔잔한 감동으로 오래 머물 수 있기를 기대하며 원고 청탁을 드리고자 합니다.


브런치에 통과해서 글을 쓰게 된 것도 신기한데 원고 청탁이라니...

사기가 아닐까?

월간에세이가 어떤 잡지지?

이거 그냥 아무나한테 메일 보내는 거 아니야?

왜 나 같은 아마추어에게 이런 청탁 메일을 보냈을까?

내 글은 읽어보긴 했을까?

짧은 시간에 수많은 의심이 들었다


일단, 네이버에 월간에세이를 검색했다

월. 간. 에. 세. 이. 엔터!


보내준 메일처럼 우수콘텐츠 잡지, 창간 36주년이라는 문구가 눈에 들어왔고 유명인부터 다양한 인물들의 에세이와 글이 모인 잡지였다

어릴 적 <좋은 생각>을 즐겨 읽으며 감동도 받고  <paper>만의 감성에 열광했던 시절이 떠올랐다

그런 잡지를 읽으며 한 번쯤 그런 잡지에 내 글이 나온다면 좋겠다 생각했던 적도 있었다

정말 그런 일이 일어날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콩닥거렸고 긴장하는 마음으로 편집장님에게 답장을 보냈다


어떤 글을 써서 드려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고 하자 미발표 신작으로 에세이를 보내달라고 했다

그때 나는 브런치에서 말도 안 되는 투데이 1을 올라가 본 후로 더 이상 쓸 것이 없다고 느꼈던 시기를 보내고 있었다

설레었지만 당장 어떤 글을 적어 보내려고 생각하니 부담이 됐다

그래서 사실대로 보냈다

"제가 새로운 글을 쓸만한 주제가 아직 없어서 선뜻 원고를 보내겠다는 답을 못하겠네요 일정 안에 보내드리고 싶은 글이 생긴다면 참가해 보도록 하겠습니다"라고.


뭔가 큰 제안이 왔는데 나는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라고 느꼈고 아쉬웠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고 한 달 뒤.

아이가 소풍을 가게 되면서 아이와 내 주변 지인들에게서 받은 어떤 감정을 고스란히 적어보고 싶었다

평소 일기를 쓰듯 글을 썼고 '다정한 소풍'이라는 글을 써서 편집장님께 글을 보냈다


그리고 답이 없었다

내 글이 마음이 들지 않았구나

그래도 대답이라도 해주면 얼마나 좋아라고 생각했다

좋은 경험 했다!라고 합리화하고 싶었지만 흥, 칫, 뿡이 절로 나왔다


월간에세이를 잊고 산 지 8개월 후 2024년 2월.

출근을 하기 전 분리수거를 하고 우편함을 확인하는데 처음 보는 잡지가 있었다

<월간에세이 2월호>

까맣게 잊고 있었던 그 이름을 눈으로 확인하니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이거 뭐지?

이제와 글을 보내 준 것에 감사 인사라도 하는 것일까?

일단 출근 시간이 다 되어 출근을 했다

일을 하다가 잠깐 시간이 나 비닐을 뜯고 혹시나 내 이름이 있을까 하는 기대감으로 훑어봤는데 아무리 봐도 내 이름은 보이지 않았다

그냥 인사로 보내줬구나~라고 생각하고 덮으려는 찰나

맨 마지막에 내 이름과 '다정한 소풍'이라는 제목이 적혀 있었다

회사에 누구라도 붙잡고 내 기쁜 마음을 공중에 퍼트리고 싶어 입이 간질간질했다

 

내 글을 이렇게 종이로 읽게 되니 기분이 이상했다

내가 이렇게 썼구나와 민망함이 같이 찾아왔지만 그래도 지면으로 실린 나의 첫 글이었기에 브런치와는 다른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퇴근 후 등장인물인 아이에게 보여줬더니 감동이라고 했고 지인들에게는 소소한 커피 쿠폰을 보내며 감사 인사를 전했다

어떤 글인지 궁금해해서 글도 보내줬더니 대단하다고 했다


나는 요즘 내가 하는 일과 집에 에너지를 쏟느라 글을 쓰는 일에 마음을 다하지 못하고 있다

대충 쓰는 것은 싫어서 나 스스로 검열을 하느라 키보드의 깜빡이만 보는 날도 있다

그냥 쓰면 되는 일인데, 하고 싶은 말은 편하게 하면 되는 것인데, 멋을 부리고 싶고 더 잘 쓰고 싶어 하는 마음에 더 못 쓰고 있다


그래서 이번에 나에게 도착한 <월간에세이>는 그냥 잡지가 아니다

네가 쓰고 싶은 글을 그냥 쓰면 된다고,

내가 누군가의 글을 읽을 때 느꼈던 것처럼 단 한 줄이라도 누군가에게 닿을 수 있다면 좋겠다.라는 마음이 또 누군가에게 닿을 수 있도록 그냥 쓰라고 말해주는 응원이자 위로가 되었다


나를 들었다 놨다 들었다 놨다 했던 <월간에세이>

여기저기 빈틈이 숭숭 보이는 글을 실어주어 고맙고 한 걸음 또 성장하게 해 주어 감사하다

짭짤한 원고료까지 생겨서 더욱더 고마운 건 절대 아니다

 


(전문은 올릴 수 없어 앞부분만 살짝 올려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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