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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모 Mar 22. 2024

우리 형이 내 잘생김을 몰라줘서 억울하다

공개수업 9년차

매년 3월 중 하루, 9년째 하고 있는 일이 있다

바로 딸아이들의 공개수업을 가는 것이다


왜 공개 수업이라는 것이 있는 것인지, 언제부터, 누구에 의해서 시작된 것인지

교사를 위한 것인지, 아이들을 위한 것인지, 부모를 위한 것인지

아직도 알 수 없는 의문들을 한편에 심은 채로 "엄마 꼭 와야 돼 아라찌?"라는 말에 학교에 간다


올 해는 중학교 2학년이 된 큰 아이는 오지 말라고 했고 초등학교 3학년이 된 둘째는 기가 막히게 엄마 쉬는 날에 잡힌 공개수업을 당연히 와야 한다며 신신당부를 했다

 "엄마 가서 뒤에 서 있기만 하다 오는데 이제 안 가고 싶어. oo이 엄마가 있든 없든 잘하고 있는 거 알고 있는데 꼭 가야 할까?

"엄마 올까 봐 시도 예쁘게 꾸며놨고 버킷리스트도 만들어 놨단 말이야 꼭 와 응?

아이에게 공개 수업이 너무 형식적이며 누구를 위한 행사인지 모르겠다고 이해시키기보다 아이가 느낄 서운함이 싫어서 내가 느꼈던 쓸쓸함이 겹쳐서 가겠다고 했다


"엄마 이따 봐~"

그렇게 아이들이 등교를 하고 집안일을 마무리하고 옷을 골라 입고 화장도 했다

꽃샘추위가 왔는지 두꺼운 옷을 입고 나오지 않은 것이 후회가 되는 날이었다

학교로 가는 신호등에는 이 시간에는 볼 수 없는 사람들이 모여있었고 나도 그중 한 명이었다

아는 언니와 오랜만에 만나 안부를 물으며 학교에 도착해 신발 위로 파란색 부직포 덧신을 신고 계단을 올라갔다

3-2를 찾아 3층으로 올라갔더니 복도에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각 반마다 줄을 서 있었다

출석부에 아이 이름과 부모 이름을 적고 반으로 들어갔다

선생님을 바라보던 아이들이 일제히 고개를 돌려 엄마, 아빠의 얼굴을 찾아 손을 흔들었다

우리도 서로의 얼굴을 확인하고 손을 흔들었다


수업은 '감정'에 대해 알고 표현하는 수업이었다

긍정적인 감정과 부정적인 감정은 모두 소중하다는 것을 알려주는 수업

발표를 권유하는 선생님도 손을 번쩍 드는 아이들도 어쩐지 우리 시대의 짜고 치는 연극이라는 느낌은 들지 않았지만 모두가 긴장하는 수업이라는 것은 확실했다

내가 지금 저 앞에 서 있는 선생님이었다면? 생각하니 아찔했다


마지막으로 감정이 담긴 단어를 배우고 선택해서 문장을 만드는 발표를 했다

맨 앞부터 끝에 앉은 아이까지 모두 발표를 했는데 생각지도 못한 문장에 놀랐다

"엄마가 납치될까 봐 불안하다"는 아이

"엄마가 해외에 가서 공개수업에 오지 못해 슬프다"는 아이

"침대 밑에 귀신이 있을까 봐 두렵다"는 아이의 소중한 감정들


그중 긴장한 선생님과 뒤에 서있는 우리들을 웃게 만든 한 아이의 문장이 있었다

우리 형이 내 잘생김을 몰라줘서 억울하다

아이는 씩씩하게 뒤를 돌아보며 함박웃음을 지었다


긴장된 수업 공기가 조금은 부드러워졌고 곧이어 수업이 끝났다는 종이 올렸다

아이들은 엄마, 아빠에게로 달려가 인사를 하고 만들어 놓은 작품들을 자랑했다

선생님은 부모님들과 인사를 하느라 바빴다

그렇게 올 해의 공개 수업이 끝났고 이번에도 같은 생각이 들었다


공개 수업이 꼭 필요한 수업이라면 긴장과 어색이 감도는 수업 대신 웃음을 주었던 그 아이의 유쾌한 한 마디처럼 유쾌하고 다 같이 즐기는 수업이 될 수는 없는 걸까?

아이들과 친해지기에는 턱 없이 부족한 단 2.5주 차에 수업을 공개하는 것이 아니라 학년을 마치는 시기에 한다면 조금 더 자연스러운 수업을 만날 수 있지 않을까?

9년 동안 공개수업을 가면서 품었던 생각들이 놀랍게도 똑같은 걸 보면

  "우리나라는(우리 형은) 선생님들, 아이들, 부모들의(내) 목소리가(잘생김을) 잘 들리지 않는지(몰라줘서) 참 답답하다(억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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