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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모 Oct 11. 2023

도서관에 가서 책을 빌리지 않았어요

백수 일상이야기

안녕하세요.

백수 2주 차가 되었습니다.


하루 4~5시간 밖에 못 자던 잠을 10시간도 자보고 낮잠도 자며 원래의 잠이 많던 저로 슬슬 돌아가고 있는 날들을 보내고 있습니다.

가끔은 시차 적응이 덜 된 사람처럼 새벽에 깨기도 하고요 뒤척이며 날을 새기도 합니다.


백수 생활을 잠으로만 채울 수 없어서 일일 책방 체험도 해보고 4주 동안 소설 쓰기 모임도 시작했는데 그동안 소설에 손을 대지 않았던 제가 원망스러울 정도로 떠오르지 않아 막막해하고 있습니다.


새로운 것을 해보면 막 아이디어가 떠오르고 뇌가 움직인다는 얘기를 책에서 많이 봐왔던지라 걸어도 보고 스텝퍼도 부지런히 밟았는데 저에게는 그런 번뜩이는 글쓰기 천재는 빙의되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어제는 책을 반납할 겸 동네 도서관에 갔습니다.

원래는 책을 고르고 대여를 해서 집에서 읽어 왔는데 어제는 저도 모르는 사이에 연체된 책이 있었는지 대여 불가라고 뜨는 거예요. 10월 13일까지 대여 불가한 바코드라고 떠서 굉장히 당황했어요.

집었던 책을 제자리에 놓고 나가려고 '읽은 책은 이곳에 놓아주세요'라고 쓰인 카트까지 갔다가 에잇 그냥 여기서 읽고 가버리자!로 마음을 돌렸어요.

사람이 많지 않아 자리도 여유롭였고 조용했거든요.

큰 테이블에 혼자 앉아서 고른 책을 읽기 시작했어요. 둘째 꼬마가 하교하기 전까지 다 읽고 가야 해서 시간은 딱 한 시간 정도 여유가 있었어요.


첫 책은 읽은 지 얼마 안 됐지만 단편 소설을 떠올리니 다시 생각났던 임경선의 호텔이야기.

읽었던 책이라 처음과 두 번째의 에피소드만 정독을 하고 나머지는 기억으로만 대충 보고 끝냈어요. 제가 필요했던 건 작가의 문체였거든요.


두 번째는 이유리의 브로콜리 펀치라는 책이었는데요.

와~이런 상큼하고 끔찍한 소설이라니. 하면서 읽은 책인데 너무 신선하고 독특했어요. 머리로는 그만 읽고 싶은데?로 시작했다가 저도 모르게 두 편을 읽게 됐어요. 여러 개의 단편소설이 묶여 있었는데 시간이 모자라 다 읽지 못했고 눈에 들어오는 편만 읽었답니다.


그렇게 도서관에서 약 한 시간에 걸쳐 책을 읽고 원래 자리에 놓고 나왔는데 가벼운 기분이 들었어요.

텅텅 빈 가방을 메고 학교 가는 기분이랄까요.

빌려서 책을 갖고 갈 때는 읽고 싶어서 빌리긴 했지만 2주 동안 읽고 다시 돌려줘야 하니까 약간의 부담과 압박감 같은 것이 거든요. 저만 그런가요?

그런데 도서관에서 읽고 빈 손으로 나오니까 그런 기분도 안 들고 읽는 동안 집중도 더 잘 돼서 진짜 읽었다. 는 느낌마저 들었어요.


그래서 앞으로도 이 방법을 종종 써보려고요.

도서관에 가서 책을 빌리지 않고 정해놓은 시간 안에 책을 읽고 나오기!


이렇게 책을 읽고 나와서 막막했던 소설을 어떤 장르로 쓰면 좋을지 틀을 잡을 수 있게 되었답니다.

말이 4주이지 4 번가서 쓰는 모임이라서 다들 무거운 느낌은 아니라서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무언가 배우려는 것보다는 쓰기 열정을 서로 응원해 주는 모임이예요.


올해도 이제 2달 반 남았고, 가을에는 여행도 가고 싶고, 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은데(뭐 항상 그런 것 같지만요) 도서관 가서 공짜 책 읽기도 좋을 것 같아요. 


10월의 어느 멋진 날에 멋지지 않은 정간의 백수 일상 이야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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