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백의 등불
영축산 메밀꽃
김미진
바람은 산의 오래된 기도를 닮아
영축산 자락을 흰 물결로 휘감는다
메밀꽃, 그 하얀 숨결 언덕마다
누군가의 이별처럼 흔들리는 꽃잎
한때는 눈물로도 피는 꽃
잊히지 못한 이름 하나
그 위로 내려앉은 먼지 같은 햇살이
하루의 길을 포근히 감싼다
산새의 울음과 바람의 숲 사이
삶의 주름 매만지며
손끝에 닿는 흙의 온기 속
사람의 생은 얼마나 부드럽게 흩어지는가
가을날 메밀꽃 다시 흩날리고
능선 따라 피어나는 오래된 기도
누군가의 애타는 그리움이
이토록 눈부신 흰빛으로 환생했던가
성파 대종사의 선과 예
그 무심의 기도도량 위에
대지를 품은 순백의 등불이 일렁이고 있다,